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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윤의 <고사탁족도>
 이경윤의 <고사탁족도>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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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비가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바위에 앉아 물에 발을 담그고 쉬고 있습니다. 옷을 풀어헤치고 배와 가슴을 드러낸 것으로 보아 발을 담근 지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선비의 시선은 옆의 동자가 들고 있는 술병에 가 있습니다.

더위가 조금 가시면 저 술을 마실 것 같습니다. 술을 마신 후 낮잠도 잘 것 같은 한가한 오후입니다.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은 신분과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피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의 주제는 '조선 선비의 한가로운 여름 일상'일까요?

이 그림은 중국 초나라 시인 굴원이 쓴 <어부사>라는 글과 관련이 있습니다. 굴원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강직한 선비였습니다. 왕에게 옳은 이야기를 했다가 벼슬 자리에서 쫓겨나 세상을 방랑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굴원은 배에서 만난 어부와 대화를 하게 됩니다. 어부는 굴원에게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것이오,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을 것이다'라는 노래를 합니다.

여기서 '창랑의 물이 맑다'라는 것은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뜻이니, '갓끈을 씻는다'는 것은 벼슬길에 나아가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마음껏 펼친다는 것을 말합니다. '창랑의 물이 흐리다'라는 것은 정치가 어지러워 부정부패가 심한 세상이라는 뜻이니 '발을 씻는다'라는 뜻은 벼슬길을 버리고 학문을 닦으며 제자를 키우고 자연에 귀의하여 고고함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어부는 굴원에게 정치가 어지러우면 자신의 신념을 굽히거나 벼슬을 스스로 그만두면 될 것을 왜 어리석게 왕에게 정의를 주장하다가 쫓겨나는 어려움을 겪느냐는 말을 한 것입니다.

선비의 고고함이란 무엇일까요? 정치가 어지러울 때 스스로 물러나 책을 읽고, 제자를 가르치며 자신의 깨끗함을 지키는 것 또한 선비의 역할이지만, 그 진흙탕 같은 현실에 뛰어들어 깨끗한 정치를 이루어내는 것도 사회적 지도자로서 선비의 역할이며, 선비의 고고함일 것입니다.

이 그림을 그린 이경윤이 살았던 시기는 문종왕후의 동생이자 명종의 삼촌인 윤원형이 큰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러 나라가 어지러울 때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윤원형에 대해 '윤원형의 권세는 임금보다 컸고, 사방에서 보내오는 뇌물을 모아 진기한 보화가 넘쳤으며 부유함은 왕실과 같았다. 관리들은 대부분 윤원형에게 뇌물을 바친 사람들이며, 죄를 지어도 뇌물을 바치면 벌을 받지 않았으며, 백성들을 땅과 집을 빼앗고 세금을 과하게 걷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그림을 볼까요? 그림 속의 선비는 물에 발 끝만 살짝 담그고 있습니다. 술을 그윽이 바라볼 뿐 아직 술잔을 들거나 마시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지러운 정치판을 피할 것이냐, 아니면 뛰어들어 바꿀 것이냐 고민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여러분이 이 선비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삶이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겪는 선택의 과정입니다. 어떨 땐 이상을 선택하고 어떨 때는 현실을 선택합니다. 한여름 폭염과도 같은 어려움이 닥치면 망설임과 두려움에 피하고 싶은 마음만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땐 피하는 것도 올바른 선택일 수 있습니다.

언제나 이것만 잊지 않으면 됩니다. 깊게 생각하고 용기 있게 실천하세요! 그리고 자신의 선택을 믿고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가세요! 삶이란 정해진 정답이 없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태그:#고사탁족도, #폭염주의보, #조상들의여름나기, #이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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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삶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쓰는 초등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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