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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광쟁이를 다문다문 안체야 제맛!"

지역말에 '광쟁이'가 있다. 낱말 하나만 뚝 떼놓고 보면 봉급쟁이, 글쟁이, 손금쟁이, 구두쟁이, 풍각쟁이처럼 그릇이나 구두 따위를 반짝반짝하게 광내는 사람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그래서 광쟁이가 들어간 지역말 한 대목을 들어본다.

"여름에는 감재와 광쟁이를 다문다문 안체야 제맛이다와."

이제 광쟁이가 무엇인지 짐작이 가는가. '감재, 안체야, 제맛' 같은 말로 보면 음식 재료를 가리키는 말일텐데 처음 듣는 사람은 짐작조차 어렵다. '우리말샘'을 보면 광쟁이는 '강낭콩의 방언'으로 나온다. '우리말샘'에는 '광쟁이'라고 했지만, 지역 사람은 '광지이, 강쟁이, 강지이, 앉은뱅이(콩), 양대' 같은 말로도 쓴다.

같은 물건을 놓고도 지역에 따라 다르게 이름 붙이는 일이야 얼마든지 있는 일. 다만 강낭콩은 어쩌다 태백산맥 동쪽에 와서 광쟁이가 되었을까? 한 걸음 더 나아가 강낭콩과 광쟁이는 같은 콩인지 궁금하다.

양쯔강 남쪽에서 온 콩이라고 '강낭콩'

강낭콩부터 말밑을 톺아본다. 강낭콩은 중국 양쯔강 남쪽인 강남에서 온 콩이라는 뜻이다. '강남콩' 하던 게 세월이 흘러 '강낭콩'이 되었다고. 강낭콩을 중국에서 건너온 콩이라고 지금도 호콩(胡콩), 당콩(唐콩)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같은 강남에서 온 강냉이도 이름이 붙은 유래는 비슷하다. 조선 선조 때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쳐들어온다. 명나라에서는 이여송이 이끄는 군대를 조선에 보낸다. 이때 강남이 고향인 군사가 식량으로 가져온 게 '촉서'(蜀黍)다. '촉서'를 명나라 군사들은 '슈우슈우'라고 했는데 그 말을 그대로 따라서 '수수'라고 했다고 한다.

옥수수는 알갱이가 마치 옥(玉) 같다고 '옥수수'라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옥수수를 달리 '강냉이'라고도 하는데, '강남+-이→강남이→강냉이'가 되었다. 이때 '-이'는 이름씨로 만드는 뒷가지다. 그런 눈으로 보면, 광쟁이는 '강남+쟁이(?)'처럼 생겨난 말이 소리가 달라지면서 '광쟁이, 강쟁이' 같은 말로 된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볼 수도 있겠다.

광쟁이는 강낭콩이 아니다
 
 '훈몽자회'에서 보듯 우리 조상들은 강낭콩과 광쟁이를 다른 콩으로 알았다.
  "훈몽자회"에서 보듯 우리 조상들은 강낭콩과 광쟁이를 다른 콩으로 알았다.
ⓒ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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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광쟁이'는 중국하고는 조금도 관련이 없다. 광쟁이는 '광쟝이'에서 온 말로 보인다. <훈몽자회> '화곡'(禾穀) 편을 보면 '豇(강)'은 '광쟝이 강 俗呼ㅡ豆又長ㅡ(흔히 콩이나 장이라고 함)'이라고 했고, '豌(완)'을 "ᄎᆞᆯ콩완一云강남콩완(찰콩이라고 하나 달리 강낭콩이라고 함)"이라고 했다. 이는 강낭콩(ᄎᆞᆯ콩)과 광쟝이를 아주 다른 콩으로 구분했다는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자 '강'(豇)을 찾으면, "광저기 강"으로 훈을 달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광저기'를 찾으면 다음과 같다.
 
 [식물] 콩과의 한해살이 덩굴성 식물. 잎은 세 번 갈라지고 자주색, 흰색 따위의 나비 모양의 꽃이 총상(總狀) 화서로 핀다. 종자는 팥과 비슷하나 약간 길고 식용한다. 사료, 녹비(綠肥)로 쓰인다. 한국, 동남아시아, 중앙아프리카, 미국 등지에서 재배한다. =동부.

동부(콩), 돔부, 돈부, 돔비, 줄돔비, 광저기, 강정이, 강두(豇豆), 장두라고 하는데, 콩 몸통에 눈동자처럼 까만 점이 있어서 영어로는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라고 한다.

한편 '강낭콩'을 찾으면 다음과 같이 뜻매김해놓았다. 
 
[식물] 콩과의 한해살이풀. 줄기가 덩굴을 이루고 여름에 흰색 또는 자주색 꽃이 총상(總狀) 화서로 핀다. 열매는 꼬투리로 맺히는데 그 안의 종자는 식용한다. 남아메리카 원산의 재배 식물이다. ≒강남두. (Phaseolus vulgaris var. humilis)

요컨대 '광쟁이'는 강낭콩이 아니라 '광저기'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풀이가 잘못된 셈이다. 광저기를 옛말로는 '광쟝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동해·삼척에서는 '광쟁이, 광지이, 강지이, 강쟁이, 강지이, 앉은뱅이(콩)' 따위 말로 살아남은 것이다.

광쟁이는 덩굴을 길게 뻗어 한갓진 곳에 심는다. 거기서 덩굴손을 뻗어 자라면 여름에 자줏빛 꽃이 다발져서 핀다. 꽃이 진 뒤에 꼬투리가 달리는데 오다가다 따다가 처마 밑이나 마루 가에 놓았다가 잘 마르면 한꺼번에 떨어서 밥에 안칠 때 넣어 먹거나 떡의 소를 만들었다.

태그:#광쟁이, #강낭콩, #동해삼척말, #강원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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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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