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06 20:35최종 업데이트 21.08.0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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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학살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앞에서 집회 여는 일본극우들 1일 일본 도쿄 스미다(墨田)구 요코아미초(橫網町) 공원에서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이 열린 가운데, 추도식장에서 불과 40m 떨어진 곳에서 일본 극우 인사들이 집회를 열어 방해하고 있다. 2019.9.1 ⓒ 연합뉴스

 
일본인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위안부 소녀상을 없애려 한다는 소식에 더해, 간토대지진(관동대지진) 한국인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까지 없애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목요일인 지난 5일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이 주최한 국제학술대회 자리에서다. 화상으로 열린 이 세미나에서 일본인 학자 니시자키 마사오(西崎雅夫)는 "대단히 위험한 일", "어떤 큰 흐름이 있는 것"이라며 위험성을 경고했다.

한국연구재단이 후원하고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가 주관한 이 학술대회는 '만보산·조선화교 배척 사건 90주년 웨비나'라는 주제로 열렸다. 웹 세미나인 웨비나(webinar) 형식으로 열린 이 행사에서는 17명의 한국·베트남·타이완·중국·일본 학자들이 일제강점기 때 동아시아 각지에서 발생한 외국인 혐오 사건들을 소재로 연구 성과들을 발표했다.


'관동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의 실태(關東大地震時の朝鮮人虐殺の實態)'라는 주제로 발표한 니시자키 마사오의 발표에서는 관동대지진이 과거지사가 아니라 현재의 사건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시민운동가를 겸하는 그는 관동대지진과 관련한 극우세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며 위험성을 알렸다.

1923년 9월 1일 도쿄와 그 부근에서 발생한 관동대지진은 일본인들에게도 큰 피해를 안겼지만, 조선인으로 불리던 재일한국인들에게도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사람들이 희생되고 건물이 무너지고 화재가 발생하며 도시가 불에 타버린 이때, 일본인들이 입은 희생은 자연재해였지만 한국인들이 입은 그것은 '일본인에 의한 살상'이었다.

김인덕 청암대학교 재일코리안연구소 연구실장은 2013년에 펴낸 <극우에서 분단을 넘은 박애주의자 박열>에서 "적어도 6000명 이상의 조선인이 학살당한 관동대지진은 유언비어가 발단이 되었다"고 말한다. 지진 때문이 아니라 유언비어 때문에 발생한 일본인들의 학살 행위로 6000명 이상의 한국인이 희생됐던 것이다.

"조선 사람들이 지진의 혼란을 이용해서 폭행, 약탈, 방화, 여성 능욕, 폭탄 투척, 집단 습격, 우물에 의한 독극물 투약 등의 만행을 자행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퍼져나가면서 그 같은 대규모 학살이 벌어졌다.

한국인 향한 집단 테러
 

트위터에 검색된 니시자키 마사오의 사진. ⓒ 트위터

 
대학생 때인 1982년에 관동대지진의 실상을 접한 뒤로 진상조사와 희생자 추모 활동을 40년째 벌이고 있는 니시자키 마사오는 5일의 학술대회에서 그 같은 유언비어가 너무도 빠른 시점에 생겨나 신속히 퍼져나갔다고 말한다. 어찌나 빠르고 신속했던지, 지진 발생 당일부터 한국인 학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유언비어 확산과 함께 나타난 현상에 관해 니시자키는 "이것을 듣고 일반 민중들이 자경단을 결성합니다"라며 "조선인을 학살하는 일이 9월 1일 밤부터 벌어지게 됩니다"라고 설명한다.

지진에 뒤이은 화재 등으로 인해 통신 체계가 마비된 상태였다. 전화도 안 되고 신문 발행도 안 되고 있었다. 유언비어가 확산되기 좋은 환경이 조성돼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언비어가 너무나 빠른 속도로 전파되면서 지진 당일부터 한국인 학살이 시작했다는 사실은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마비됐기 때문에 유언비어가 퍼지기 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체계가 붕괴됐기 때문에 유언비어가 퍼지는 데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가짜 뉴스가 신속히 형성돼 급격히 퍼져나갔다. 그 결과, 지진 피해로 충격을 받은 일본 민중들이 너무도 빨리 한국인들을 상대로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지진으로 인한 민심이반 때문에 민중들이 정부를 욕할 겨를도 없이 한국인들을 향한 집단적 테러가 벌어졌던 것이다.
 

관동대지진 당시를 그린 그림. 니시자키가 발표 때 사용한 파워포인트의 한 장면. ⓒ 니시자키 마사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 혼란 속에서도 일본 정부의 행정력은 와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니시자키는 "유언비어를 뒷받침해준 것이 정부였습니다"라며 일본 경찰이 유언비어 유포의 장본인이었다고 설명한다.

경찰을 지휘하는 내무성이 전국 경찰에 긴급 연락을 띄워 한국인들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보냈고, 소식을 접한 민중들이 자경단을 결성해 한국인 살해에 나섰다. 자경단은 심지어 검문소까지 차려놓고 한국인들을 색출해냈다. 민중과 공권력이 혼연일체가 돼 집단 학살을 자행했던 것이다.

그 실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을 뛰어넘는다. 니시자키는 일본인 목격자들의 증언과 당시 실상을 묘사한 그림 등을 근거로 "일본도로 베고 죽창으로 찌르고 쇠막대로 찔러서 죽였습니다", "여자들 중에는 배가 부른 사람도 있었는데, 찔러 죽였습니다", "10명 정도씩 조선인을 묶어서 세워놓고 군대가 기관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불타는 석탄 속에 조선인을 던져 넣었습니다" 등등의 보고를 했다.
 

포박된 재일한국인들. 파워포인트의 한 장면. ⓒ 니시자키 마사오

  
그 같은 참상이 벌어졌는데도 일본 정부는 진상 규명을 허용하지 않았다. 도리어 진상 은폐에 열을 올렸다. 한국인들이 희생된 사실을 감추라는 지시까지 내렸을 정도다.

니시자키는 조선총독부 경무국 자료를 근거로 일본 정부가 '일본인 시신인지 조선인 시신인지 구분되지 않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한국인 피해자들의 신원이 불명확하게 됐다고 그는 안타까워한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중국인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희생자 667명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그들의 신원까지 밝혀주었다. 그리고 일본 정부 차원에서 사죄 표명까지 했다. 한국인들에게 보여준 모습과 너무도 판이했던 것이다.

니시자키는 그 만행이 과거지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98년 전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말한 것은 극우세력이 한국인 학살을 정당화하면서 한국인들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둔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지진을 이용해 먼저 공격을 가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정당방위 차원에서 대응했을 뿐이라고 극우세력들은 재일한국인과 한국을 공격한다. 이러니 관동대학살은 현재진행형인 사건이다.

뒤바뀐 가해자와 피해자
 

희생자 추모비가 담긴 파워포인트의 한 장면. ⓒ 니시자키 마사오

 
그런 뒤에 나온 것이, 서두에서 소개한 추모비에 관한 언급이다. 1973년에 도쿄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 공원에 세워진 희생자 추모비를 상대로 일본 극우세력이 철거를 시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본 공권력마저 그런 움직임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니시자키는 말한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도쿄 스미다구의 요코아미초 공원에 있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입니다. 지진 50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것인데요. 이것을 철거하라는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 공격을 하는가. 지금 말씀드린 (극우 인사가 쓴) 책을 읽은 사람들, 넷우익들(인터넷과 SNS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극우세력), 이런 사람들이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견을 듣고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쿄도의회에서 자민당 의원이 2017년에 '추도비를 철거하라'고 말하기도 했고, 2018년과 2021년 6월에 스미다구 의회에서 자민당 의원이 '비석을 철거하라'고 말했습니다. (중략) 의원들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끝나면 괜찮은데, 도쿄도지사인 고이코 유리케가 매년 9월 1일 추도식 때마다 보내왔던 추도문을 2017년부터 지금까지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스미다구 구청장도 추도문을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일본은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추모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위안부·강제동원에 대한 지금 일본의 태도는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관동대지진과 관련해서는 1970년대부터 추모의 뜻을 표시했다. 도쿄에 추모비가 세워지고 그 비석이 50년 가까이 존속했다. 이는 용서를 구하려는 움직임이 진상을 숨기려는 움직임에 맞서 버틸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지금 진상을 숨기려는 움직임이 더 강해지고 있다. 구청장과 도쿄도지사도 그런 움직임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관동대지진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위안부·강제동원에 대한 태도 못지않게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인들이 사과와 반성을 표시하면서 희생자들을 추모한다면, 이 일은 과거지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50년 가까이 서 있던 추모비마저 철거하려 한다면, 이 문제는 절대로 과거의 세계로 넘어갈 수 없다.

이를 과거지사로 만들려 하지 않고 현재진행형으로 만들려 하고 있으니, 일본 극우세력이 불순한 의도를 품고 있지 않나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을 스스로 반성할 계기로 삼지 않고 재일한국인과 한국을 공격할 빌미로 삼으려 하지 않을지 염려하게 된다.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어떤 큰 흐름이 있다"는 니시자키 마사오의 경고가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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