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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에는 네 명의 장애인이 있다. 사십 명이 채 안 되는 회사이니 일 할의 직원이 장애인인 셈이다. 물론 건축물에 들어가는 온갖 인테리어 가구나 설치품을 만드는 노동을 하는 업종이다 보니 신체적인 장애를 지닌 직원을 고용할 수는 없다. 대신에 말 못 하는 직원이 네 명이다.

20년 정도 이 업종에서 일을 한 멕시코 출신의 로베르토는 선천적으로 전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를 지니고 있다. 동료들은 손짓 몸짓으로 대충의 의미를 교환하고, 수퍼바이저는 전체 미팅 후에 항상 별도로 필답을 통해 로베르토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고 보고를 받는다.

나의 입사 동기 세바스찬은 말을 심하게 더듬어 일상적인 소통이 어려운 편이다. 보통은 꼭 해야 할 말 이외엔 하루 종일 함구하고 지낸다. 온두라스 출신인데 개인적으로는 캐나다 부모에게 입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한 명의 직원은 내가 아직 이름도 알지 못하는 친구이지만 그가 수어로 대화하거나 의사를 표시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본 적이 있다. 아마도 본인이 장애를 지녔거나 적어도 가까운 사람에게 장애가 있다고 추측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장애인은 바로 나다. 나는 입사 7개월 만에 순간의 부주의로 인해 오른쪽 팔꿈치를 25센티미터가량 테이블 쏘에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직후 오른팔 절단이나 적어도 불구를 예상하고 수술실에 들어갔지만 다행히도 수술과 재활을 통해 기적처럼 장애등급 없이 팔을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팔의 움직임이나 근력에 있어서 예전처럼 사용할 수는 없게 되었다. 더 이상 원래의 업무로 근무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회사는 컬리지에서 프로그램을 배웠다는 이력서 내용을 참고하여 오토캐드를 이용한 설계업무를 맡겼다. 프로그램 활용 능력이야 얼마든지 계발이 가능한 부분이지만 나에게는 또 하나의 장애가 있었으니 바로 언어 문제였다. 캐나다에서 수 년을 살고 있지만 영어가 전혀 늘지 않는 축에 드는 나에게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인 설계-엔지니어링 업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분야였다. 그래서 산재 기관에서도 우려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나에게 이 일을 맡겼다. 이러한 결정을 내린 다이앤 부사장은 '내가 너라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를 생각해 봤다고 했다.

회사의 사정을 이렇게 장황하게 기술하는 이유는 장애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따져보고 싶기 때문이다. 업무의 효율과 회사의 성과 만을 생각한다면 분명 이러한 고용이 일어나서는 안될 것이다. 로베르토를 위한 별도의 업무 배려는 일사불란한 업무 진행에도 효율성에도 유리하지는 않고, 나의 업무 전환 역시 생산성에도 크게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회사는 왜 이러한 경영상의 부담을 떠안을까?

아마도 캐나다에서는 장애인 고용의무가 강하게 시행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장애인 고용의무 제도에 의해 우리나라도 사업장 내 장애인 고용률이 곧 3%대에 진입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캐나다의 장애인 고용은 의무가 아니다. 여성, 장애인, 원주민 및 소수자에 대한 고용 장벽을 제거하고, 이들에게 평등한 고용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1986년에 제정된 '고용 형평법(Employment Equity Act)' 이상의 강제 의무조항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심지어 우리 회사처럼 작은 기업은 캐나다 고용 형평법에도 저촉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로베르토와 세바스찬, 그리고 나처럼 10%나 되는 장애인 혹은 사회적 약자를 고용하고 있다.

또 다른 사업장 얘기를 해보자. 월마트에 가면 열심히 일하는 많은 장애인을 볼 수 있다. 그들이 하는 일도 그들이 할 수 있는 능력에 맞게 다양하다. 특히 고객센터나 캐시어로도 일을 하는데, 이는 고객이 불편해한다며 눈에 띄지 않게 하는 우리 사회의 저속한 배려심에 대비되는 부분이다. 그런 만큼 장애인들도 당당한 모습으로 업무에 집중한다. 그러한 당당함은 자연스러워 여간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다.

장애인의 자연스러운 당당한 모습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물론 이들의 당당함이 비장애인에 대한 배려심의 결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길거리에서도 버스에서도 만날 수 있다. 전신이 마비되어 검지 손가락 하나에 의지해서 전동 휠체어를 모는 장애인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모든 버스에는 휠체어를 수용할 수 있도록 장치가 마련되어 있고, 장애인도 웬만해서는 타인의 도움 없이 승하차를 할 수 있다. 가히 사회적 약자를 위한 대중교통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러한 장치를 가동하려면 다소의 시간적 지체가 따르게 된다. 하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중요한 약속 시간에 늦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긴급한 볼 일이 있는 사람도 있을 텐데 단 한 번도 불평을 하거나 언짢은 표정을 짓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이 사람들이 모두 천사와 같은 마음씨를 가졌다거나, 선진국형 마음 씀씀이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호등 없는 사거리를 건너는 장애인(척추에 장애가 있어 보이는 그녀는 도와주는 사람도, 목발도 없이 이동하고 있었다)이 완전히 길을 건널 때까지 사방의 차는 멈춰 서있다. 그녀는 불편해 보이는 몸을 이끌고 나처럼 거리를 걸었고 나와 같은 방법으로 도로를 건넜다. 누구도 보기 흉하다거나 혹은 불평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아무리 바쁜 나조차도 이러한 자연스러움에 미소 짓고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사회적 환경이다.

이 글은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없었던 풍경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사회였다면 그녀 옆에는 누군가가 지키고 있어야 했을 것이며 아예 그녀를 한길로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예상컨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장애인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적 인프라가 가장 첫 번째 문제일 것이며, 두 번째는 혹시나 혼자서 당할 봉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일반론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 사회에서의 장애인이 타인에게 불편함이나 불쾌감을 주는 존재가 아닌 당당한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한낱 소시민 주제에 명쾌한 해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생각건대 바꿔야 할 한 가지는 있는 것 같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다르지 않다는 사고방식이다. 이것은 섣부른 억지이고 틀린 방법이다. 남성과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다르듯이 장애인과 비장애인도 다르다. 다만 장애인은 그냥 지금의 나와 조금 다를 뿐이고 언제든지 그가 내가 될 수도, 내가 그가 될 수도 있다는 점만 받아들이면 된다.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러한 다름과 공존하는 일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뿐이다.

얼마 전 작업을 한 토론토의 어느 대학교 기숙사는 약 500여 개의 기숙사 방 중에 10%를 웃도는 60여 개의 방이 장애인 관련 매뉴얼에 따라 설계되었다. 물론 기숙사나 숙소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 편의 시설의 건축물에는 철저하게 접근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어떤 방도 장애인이 이용하는데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설계되지만 그 많은 방에 대해 설계 자체를 달리했다는 점에 놀랐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이 방들은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방이 아니라 그냥 다른 타입의 방일 뿐이라는 공유된 사회적 태도이다. 물론 어떤 방식으로든 효율성과 생산성의 가치는 이 안에서 녹여지고, 사람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 부분을 흔쾌히 지불한다. 이것은 허투루 쓰는 비용이나 눈먼 기부가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름을 전제로 한 다양성을 내재하는 것이 사회이고, 사회는 그 다름에 반응하고 다양성을 담보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장애에 대한 내용만을 언급하지만 '다름'에 대한 차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가치이자 사회적 태도의 발현이다. 장애나 인종, 성적 소수자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불편함이나 불쾌함까지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그러한 개인의 감정이 표현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표리부동' 혹은 '겉과 속이 다른 태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개인의 태도가 사회적 태도가 되어서도 안 되고 이것이 혼동되어서도 안된다. 사회적 태도는 개인의 태도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우리 모두에 대한 배려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존에 대한 얘기다.

태그:#장애인고용, #캐나다, #사회적 태도, #고용형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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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작은 마을의 가구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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