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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광역시 서구 8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만귀정에 여름의 꽃 백일홍이 만발했다
 광주광역시 서구 8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만귀정에 여름의 꽃 백일홍이 만발했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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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살이에 비하면 고향의 자연은 넉넉하고 너무나 고분고분했다. 16세기 초 전라도 담양 땅에 살고 있던 소년 양산보(梁山甫 1503∼1557)는 열다섯 살 어린 나이에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으로 올라갔다. 아버지 양사원은 당대 최고의 석학이자 개혁의 아이콘이었던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 1482~1519)를 찾아가 어린 아들을 맡겼다.

조광조는 소년 양산보의 총명함을 알아차리고 문하로 받아들였다. 양산보는 '시골뜨기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독하게 공부했다. 그 결과 2년 만에 현량과(賢良科)에 당당히 합격했다. 하지만 관직에 나가지는 못했다. 벼슬 자리에 비해 합격자가 너무 많았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였다. 국왕 중종은 양산보에게 지필묵을 하사하며 위로했다.

열일곱 살이 되던 1519년 기묘년 그해 겨울, 성리학적 이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세상에 나온 수많은 개혁적 인사들이 죽임을 당하는 '사화(士禍)'가 일어났다. 기묘사화(己卯士禍)다. 그 중심에 양산보의 스승 조광조가 있었다.

하루아침에 역적으로 몰린 조광조는 전라도 화순 능주로 유배를 가게 된다. 유배 온 지 한 달 만에 중종으로부터 사약이 내려온다. 조광조는 억울한 심정을 밝히는 한 편의 절명시를 남기고 짧은 생을 마감한다.
 
임금 사랑하기를 어버이 사랑하듯이 하였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이 하였네/ 밝은 해가 이 세상을 내려다보니/ 일편단심 내 충심을 더욱 밝게 비추네
 
 
 우리나라 별서 원림의 백미로 꼽히는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살이에 비해 고분고분한 고향의 자연은 양산보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별서 원림의 백미로 꼽히는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살이에 비해 고분고분한 고향의 자연은 양산보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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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목도한 양산보는 눈물을 머금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스승의 시신을 거뒀다. 원통함과 억울함은 청년 양산보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화인(火印)과도 같은 깊은 상처를 남겼다.

양산보는 속세의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스스로를 '소쇄처사(瀟灑處士)'라 자처하며 평생을 무등산 자락에서 정원을 가꾸고 은거하며 살아간다.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살이에 비해 고분고분한 고향의 자연은 양산보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다들 알고 있듯이 이 정원이 우리나라 별서 원림의 백미로 꼽히는 '담양 소쇄원'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담양의 소쇄원이 자연 상태의 지형에 꾸민 듯 꾸미지 않게 최소한의 인공을 가미한 '원림(園林)'이라면 그와는 결이 많이 다른 옛 정원이 있다. 광주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5호로 지정돼있는 '만귀정(晩歸亭)'이다.
 
 광주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5호 만귀정, 세 개의 정자중 맏형 격이다
 광주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5호 만귀정, 세 개의 정자중 맏형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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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에 ‘만귀정시회’라는 선비들의 시모임이 있어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던 시인묵객들의 시문이 즐비하다
 일제강점기에 ‘만귀정시회’라는 선비들의 시모임이 있어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던 시인묵객들의 시문이 즐비하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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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송정리로 가는 광송 간 도로를 달리다 보면 극락 교차로가 나온다. 좌회전하여 순환도로 옆길로 빠져나오면 송정 평야의 넓은 들이 펼쳐진다. 영산강의 지류인 극락강이 들판 한가운데를 흥건히 적시며 흐른다.

옛날 이 강에 배들이 드나들며 세곡을 운반하고 보관했던 큰 창고가 있었다. 광주의 서쪽에 있는 창고라 하여 지금도 '서창(西倉)'이라 부른다. 이곳 세하동 동하 마을 입구에 세 개의 정자가 붉은 자미화에 둘러싸인 채 천상의 연못에서 유영하듯 나란히 떠 있다. 주변에 현대식 전원주택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지만 만귀정의 아름다움은 감히 그들과 견주어지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약 270여 년 전의 이야기다. 전라북도 남원에 살던 흥성장씨(興城張氏) 장창우(張昌雨 1704~1774)는 물산이 풍요롭고 자연경관이 빼어난 이곳 동하마을로 이주한다.
 
 꽃향기가 엄습해온다는 습향각
 꽃향기가 엄습해온다는 습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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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향각에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기록된 신철균과 남계룡의 시문이 걸려 있다, 이들의 친일행위를 기록한 단죄문도 세워져 있다
 습향각에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기록된 신철균과 남계룡의 시문이 걸려 있다, 이들의 친일행위를 기록한 단죄문도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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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정착한 장창우는 후학을 가르치고 마을의 쉼터로 사용하기 위해 초가 정자를 지었다. 정자의 이름은 자신의 호를 따서 '만귀정(晩歸亭)'이라 붙였고 늦었지만 남은 삶은 이곳에서 자연과 함께 살리라 마음먹는다. 세월이 흘러 만귀 장창우는 자연과 더불어 살다가 자연의 일부가 됐고 초가 정자도 사라졌다.

1934년 7대 후손 묵암 장안섭 등이 나섰다. 만귀정의 옛터에 인공적으로 땅을 파 네모난 연못을 만들고 둥근 동산을 만들어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대부분 옛 정원들이 그러하듯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라는 옛사람들의 우주관, 즉 '천원지방(天圓地方)'설을 반영해 놓은 것이다.

만귀정의 숨겨진 비밀코드, 취석과 성석

만귀정은 하나의 큰 연못에 세 개의 수중(水中) 정자가 일렬로 나란히 서 있는 보기 드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세 개의 정자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각각 별도의 이름을 갖고 있다. 만귀정을 맏형으로 '습향각(襲香閣)'과 '묵암정사(黙闇精舍)'가 순서대로 지어졌다.
 
 만귀정에 숨겨진 비밀코드 취석과 성석
 만귀정에 숨겨진 비밀코드 취석과 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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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 옆면 모두 두 칸으로 팔작지붕을 얹힌 만귀정을 지나면 연못 한가운데 자리한 습향각이 나온다. 습향각은 주변의 '꽃 향기가 엄습해온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말대로 붉은 배롱꽃 향기에 취한 벌들의 웅웅거림이 엄습해 온다.

꽃향기가 엄습해 온다는 습향각에는 '친일의 냄새'도 배어 있다. 1940년에 후손 장안섭이 지은 1칸짜리 정사각형의 아담한 정자 서까래 밑에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기록된 신철균과 남계룡의 시문이 걸려 있다. 아래에는 그들의 친일행위를 알리는 단죄문이 세워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만귀정시회'라는 선비들의 시모임이 있어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던 시인묵객들 중에 이들 친일인사들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모든 문화유산에는 그 문화재가 갖고 있는 고유한 비밀코드가 숨겨져 있다. 문화재의 외형 못지않게 중요한 내면에 숨겨진 원형의 가치를 알아보는 것 또한 문화재를 관람하는 묘미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만귀정에도 그런 게 있다.

만귀정에서 습향각으로 가는 길 축대 밑에 네모 반듯한 직사각형의 돌 하나가 마치 제단처럼 놓여 있다. 이 돌 앞면에는 취석(醉石), 반대편에는 성석(醒石)이라 새겨져 있다. 뜻을 헤아려 보자면 다리를 건너갈 때는 꽃 향기에 취해 '신선의 세계'로 가고 나올 때는 향기에서 깨어나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라는 의미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직시하고 인정하라는 선조의 가르침이 아닐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나무다리가 세 개의 정자를 연결해주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나무다리가 세 개의 정자를 연결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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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치가 있던 나무다리 대신 허여멀건 하고 우악스러운 화강암 다리로 싹 바뀌었다
 운치가 있던 나무다리 대신 허여멀건 하고 우악스러운 화강암 다리로 싹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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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향각을 지나 가장 안쪽에 있는 묵암정사로 향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세 개의 정자를 수중 나무다리가 연결해주고 있었다. 고개를 수그리고 조심조심 자세 낮춰 나무다리를 건너던 그때는 제법 운치가 있었다. 언젠가부터 허여멀건 하고 우악스러운 화강암 다리로 싹 바뀌어 운치도 덜하고 주변 환경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아쉬운 부분이다.

묵암정사는 세 곳 중에서 가장 늦게 지어진 막내 정자다. 송정 읍장을 지낸 묵암 장안섭의 선정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광산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서 지어준 것으로 사방 한 칸으로 머리에는 팔작지붕을 이고 있다.
 
 송정 읍장을 지낸 묵암 장안섭의 선정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광산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서 지어준 묵암정사
 송정 읍장을 지낸 묵암 장안섭의 선정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광산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서 지어준 묵암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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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귀정은 사시사철 꽃대궐을 이룬다. 봄에는 하얀 벚꽃, 여름에는 붉은 백일홍과 보랏빛 맥문동, 가을에는 붉은 상사화, 겨울에는 하얀 눈꽃이 만발한다. 오죽하면 이곳에 '들어올 때 꽃향기에 취하더라도 나갈 때는 깨어서 나가라' 했겠는가. 광주광역시 서구 8경 중 제1경으로 꼽힐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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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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