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청년 세대의 비혼과 저출생 등과 관련하여 이보다 더 핵심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점점 더 많은 청년들이 결혼을 '주춧돌'이 아닌 건물 꼭대기에 올리는 '머릿돌'로 보고 있다. 이들에게 결혼은 어른과 부모가 되기 위한 기반이 아니라 모든 준비가 갖춰진 이후 해야 하는 일이다."

이는 미국의 프로젝트 'not yet' 연구원의 말이라고 하는데, 우리 사회 전반의 결혼 및 출산 문화와도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년 세대는 결혼과 아이를 가지는 일을 '완성 후'에 해야할 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실상 모든 걸 갖추는 '완성'은 불가능하고, 그 근처에 가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완성'은 없다
 
결혼반지
 결혼반지
ⓒ 픽사베이

관련사진보기

 
기성세대가 결혼을 일종의 시작으로 보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을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면, 청년 세대는 그 모든 걸 '완성된' 이후에 해야 할 일이라 느낀다. 그러나 취업을 하고 간신히 독립을 하더라도, 월세나 학자금 상환, 자동차 할부 등에 시달리다보면 완성은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대개의 동물들에게도 '둥지'나 '보금자리'가 새끼를 낳아 키우는 데 필수적인 것처럼, 많은 청년들이 '주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결혼이나 육아 같은 건 시도조차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특히, 주거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사실상 평생 소득으로도 온전한 집 한 채 갖기 어려워졌고, 전세를 들어가도 매번 쫓겨 다니면서 자산 격차만 늘어나는 현실에서는 결혼이나 육아 자체를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게 청년 세대의 세계관이라 봐야할 것이다.

더군다나 공동체가 와해되고 사람 사이의 단절감이 커진 시대일수록, 결혼의 상대방은 서로에게 성적인 환상과 낭만을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인생의 동반자이자 베스트 프렌드이면서 피난처인, 그야말로 '모든 것'이 된다.

그런 존재를 선택하는 일은 일생일대의 결정이자 완성에 도달하는 일이고, 인생 최대의 환상을 얻는 일이다. 과거처럼 누구나 때가 되면 동네의 적당한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게 아니라, 결혼 자체가 이 외로운 세상을 이겨낼 최후의 방주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선택은 매혹적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완성된 삶을 주리라 여겼던 그 상대방과의 삶이 어떻게 처절한 실패로 끝날지 알 수 없다. 실제로 높아지는 이혼율이나 주위에서 들려오는 온갖 결혼에 대한 이야기들은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그렇기에 이 선택은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하며, 무엇보다 위험하기에 모든 것을 갖춘 상황에서, 혹은 적어도 모든 것을 얻을 가능성이라도 있는 상태에서 선택 가능한 '머릿돌'이다.

절망은 식지 않는다

사실, 이에 대해서 결혼 또한 하나의 시작이며, 주춧돌이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고, 모두에게 결혼은 연습 같은 것이며, 육아도 다들 낯설고 생경한 경험이지만 그렇게 배워나가는 것, 이라는 식의 기성세대적인 관념은 거의 의미가 없다. 당장 인생 전체가 각종 할부, 빚, 이자, 온갖 리스크, 집을 얻는 건 점점 더 불가능해지는 일들로 점철되어 있는 이 시대에, 청년 세대는 그런 '위험'을 굳이 감수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소소한 행복이나 쾌락마저 빼앗길 것을 더 두려워한다. 누구도 삶의 위험을 보장해주지 않는 각자도생의 시대에는 저마다 자기 안전을 스스로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결혼은 적어도 그런 위험이 최소화되거나 극복된 상태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대신 청년 세대가 택하는 것은 '완성'을 지연시키고 '과정'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 가운데 '(결혼)해? 하지마?' 같은 밈이 유행하는데, 이러한 '밈'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비혼'을 신념으로 확정짓는 표현이 아니다.

흔히 유부남 등의 한탄 아래 달리는 댓글로서의 '하지마?' 혹은 '해?' 같은 밈은 그 자체로 결정을 '지연'시키면서 계속 '묻고' 있다. 결혼이라는 완성의 불가능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에 대한 도달을 미래로 미루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청년들이 끝내 어느 쪽으로든 '머릿돌'을 올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청년 세대의 결혼관과 현실이라는 그 간극 사이에 남은 것은 끊임없이 완성될 미래를 기다리며 '도착'을 지연시키는 삶이나, 애초에 도착을 포기한 삶이다. 실제로 1천명당 혼인건수인 '결혼율'(2011년 6.6%→2020년 4.2%)은 매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고, 합계출산율은 '폭락'(2011년 1.24명→0.92명)하고 있다는 말이 크게 틀리지 않다.

물론, 그 자리에 피어오르는 '새로운 도착들'도 있을 것이다. 싱글, 비혼, 딩크의 삶이 주는 가치에 몰입하는 것은 일종의 '새로운 도착'이다. 그러나 그 중 얼마나 많은 경우가 의미 있는 도착인지, 혹은 강요된 표류나 난파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청년들의 절망이 식지 않으며 더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뜨거운 표류나 난파가 이 시대의 한 축을 드높이 쌓아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덧붙이는 글 | 정지우 문화평론가(jiwoo9217@gmail.com). 이 글은 정지우 작가의 페이스북(http://facebook.com/writerjiwoo)에도 게재한 글입니다


태그:#저출산, #저출생, #비혼, #청년세대, #MZ세대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평론가 겸 변호사. <청춘인문학>,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너는 나의 시절이다> 등을 썼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