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30 12:54최종 업데이트 21.08.30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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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하고 결혼하고 엄마가 되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여전히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어지러울 때,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워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면 뿌옇던 세상이 조금은 선명해졌습니다. 나를 키운 여자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오늘만 무사히 넘기면 돼. 당분간 안 볼 거니까.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여름, 료타(아베 히로시)는 아내 그리고 아들과 함께 고향집에 가는 길이다. 형의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오랜만에 본가에 가는 료타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다. 집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빨리 돌아올 궁리를 한다. 고향집에서 딸의 가족과 함께 음식을 준비하는 어머니 도시코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료타에게 고향집은 보통의 세계다. 보통의 기준은 의사인 형 준페이다. 형은 10여 년 전 바다에 빠진 소년을 구하다 죽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대부분이 그렇듯 형은 죽어도 사라지지 않고 일상 곳곳에 살아 있다. 가족들은 죽은 장남과 료타를 비교하고 료타 스스로도 끊임없이 자격지심을 느낀다. 하얀 가운을 입고 영정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형은 아무 말이 없다.

동네 의원을 운영하는 아버지처럼 한때 의사가 되고 싶었던 료타는 유화 복원하는 일을 한다. '그림의 의사'라 평가받는 직업이지만 현재는 실직 상태다. 아내 유카리는 전 남편과 사별 후 아들 아츠시를 데리고 료타와 재혼했다. 애 딸린 과부와 결혼한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시선은 그리 탐탁지 않다. 료타를 기다리던 어머니는 딸에게 말한다. 
 
고르다 고른 게 하필이면 중고라니. 사별은 죽은 남편과 비교 당해서 힘들어. 차라리 이혼이 낫지.

어머니의 말투는 표독스럽지 않지만 뼈가 있다. 그러자 딸의 한 마디.
 
아무렇지도 않게 무서운 소리 하시네.

'보통'과 '세속'의 세계 
 

영화 <걸어도 걸어도> 포스터 ⓒ 영화사 진진

 
<걸어도 걸어도>의 어머니는 겉으로는 그저 평범한 할머니처럼 보인다. 냉장고를 가득 채워야 안심이 되는 어머니는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고 쓸고 닦으며 온 가족을 챙긴다. 그러다 툭, 농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무서운 소리를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어머니 이야기를 찍어두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겠다는 기분"(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들>)으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어머니가 죽음을 향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삶의 한순간을 잘라내", "우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다면 (영화를 보면서)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책 <걷는 듯 천천히>). 집필 단계부터 어머니 역할로는 키키 키린을 염두에 뒀다. 키키 키린은 일본의 국민 어머니 배우라 불린다. 

두 사람은 2008년 이 영화를 시작으로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어느 가족>까지 10년간 총 6편의 작품을 함께 찍었다. 키키 키린의 추도사에서 고레에다는 어머니를 두 번 잃은 것 같다고 썼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시나리오 집필 단계부터 키키 키린을 염두에 뒀다. ⓒ 영화사 진진

 
고레에다 감독은 자신의 어머니가 상냥하거나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독설가였고 "욕지거리를 아주 재미있게 하는 독특한 사람"이자 "속된 면이 있는, 어떤 의미로는 '세속' 그 자체인 분"이었다고. 

고향집은 세속의 세계이기도 하다. 료타에게 가족들은 먹고 살 만하냐고, 그림 한 장 복원해서 얼마나 버냐고 대놓고 묻는다. 료타는 실직 상태를 숨긴 채 잘나가는 척 허세를 부린다.

어머니는 매년 아들의 기일에 준페이가 목숨을 구해준 소년 요시오를 초대한다. 취업도 제대로 못한 채 알바를 전전하는 요시오의 미래는 암울해 보인다. 어머니는 그런 요시오에게 내년에도 얼굴을 보여 달라고, 기다리겠다고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말한다. 요시오가 다녀간 후,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며 탄식한다. 
 
저런 하찮은 놈 때문에 하필 우리 애가! 쓸모없이 덩치만 큰 놈!

료타는 아버지에게 소리친다. 제발 사람 인생 비교하지 말라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지만 마음대로 안 될 때도 있을 거라고. 의사가 그렇게 대단하냐고. 요시오를 대변하는 것 같지만 사실 본인이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정작 세속의 세계를 자꾸만 의식하는 건 료타 자신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보통과 세속의 세계에서 자유롭고 싶지만 그렇다고 지금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에 충분히 만족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한 료타의 모습이 남일 같지 않았다. 부모님 앞에만 서면 자꾸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날선 말을 하는 모습도. 료타는 자신이 이런 어른이 될 줄 알았을까.

둘도 없이 소중하지만 성가신 관계
 

영화 후반부, 어머니가 마음 속에 품어왔던 비밀이 하나둘 드러난다. ⓒ 영화사 진진

 
영화 후반부, 어머니가 마음속에 품어왔던 비밀이 하나둘 드러난다. 형의 기일에 요시오를 이제 그만 불러도 되지 않느냐는 료타의 말에 어머니는 되묻는다. 왜 그래야 하냐고. 
 
료타 : 왠지 불쌍해서요. 우리 보는 거 괴로워하는 것 같고.
도시코 : 그래서 부르는 거야. 겨우 10년 정도로 잊으면 곤란해. 그 아이 때문에 준페이가 죽었으니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요시오군을 꼭 오게 만들 거라는 어머니의 옆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하다. 아이처럼 장난스러운 얼굴을 하며 스모 선수 흉내를 내고 농담 섞인 독설을 던지던 어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낯설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손은 계속 뜨개질을 하고 있다. 곧이어 아버지가 목욕을 끝낸 소리가 난다. 어머니는 료타가 목욕을 할 수 있도록 챙기며 며느리의 이름을 부른다. 어머니의 몸은 다시 분주해진다.  

이 장면에서 뜨개질을 한 건 키키 키린의 제안이었다고 한다. "그런 살벌한 대사를 칠 때는 뭔가를 좀 하면서 말하고 싶"었다고. 고레에다 감독은 "가장 무거운 대사를 한 뒤에 훌쩍 일상으로 돌아와 엄마의 동작과 감정이 두둥실 움직이기 시작"한다면서 "일상에서 붕 뜨는 방식과 다시 돌아오는 방식이 실로 훌륭"했다고 키키 키린의 연기를 평가했다(책 <키키 키린의 말>).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는 나도 료타처럼 어머니가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그리고 여러 번 영화를 다시 보면서 이 장면이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훌륭한 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니까 서로 이해할 수 있다거나 가족이니까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를테면 '가족이니까 들키기 싫다'거나 '가족이니까 모른다' 같은 경우가 실제 생활에서는 압도적으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한마디로 말해 '둘도 없이 소중하지만 성가시다'. 홈드라마는 이러한 양면을 그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들>

가족의 비극은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데서 시작한다.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마음대로 평가하고 기대한다. 하지만 자식의 세계는 부모의 생각만큼 그리 단순하지도 납작하지도 않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여름밤, 료타가 어머니라는 낯선 세계를 10년 만에 처음으로 마주한 것처럼 말이다. 

걸출한 배우 키키 키린은 현실에 발을 딛고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어머니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감독은 키키 키린을 통해 말하는 것 같다. 죽음도 삶의 일부이듯 우스꽝스러운 얼굴도 으스스한 얼굴도 모두 어머니이며 우리는 모두 양면성을 갖고 살아간다고.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그러면서 잘 안다고 착각하는) 부모와 자식은, 필연적으로 조금씩 어긋날 수밖에 없다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미화하지도, "그때 좀 더 잘할 걸"이라는 회한에 젖어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않는 것. 고레에다 감독의 애도 방식이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의 제목은 영화 속 또 다른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인 노래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의 후렴 중 한 구절에서 따왔다. 혼자 집에서 레코드판을 틀어놓고 노래 듣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쩐지 오싹하다는 료타에게 아내 유카리는 말한다. 숨어서 듣는 노래 하나쯤 누구나 하나 있기 마련이라고. 이어지는 대사.  
 
료타 : 무섭구나. 여자는.
유카리 : 무섭죠. 사람이. 모두가요.

누구나 숨어서 혼자 듣는 노래 하나쯤은 있으며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른다. 설사 가족이라도. 어쩌면 가족이라서 더. '가족'이라는 글자가 조금은 가볍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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