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17 06:47최종 업데이트 21.09.17 10:07
  • 본문듣기
전 세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가 2억 2700만을 넘었다. 이번 가을이 지나고 나면 중국 우한에서의 첫 발생 보고 이후 코로나19와의 싸움이 만 2년을 맞게 된다. 그 사이 유례없는 속도의 백신 개발과 보급으로 가시적 방역 성과도 있었지만 바이러스는 다양한 변이를 복제하면서 우리에게 저항해 왔다.

2년 가까이 바이러스와 공방을 벌인 인류는 이 시점에 이르러 쉽지 않은 결정을 앞두고 고심 중이다. '과연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공존을 준비해야 하는가.' 많은 국가의 정부가 이 질문 앞에서 전문가 의견과 여론의 동향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효과적인 방역 전략 방향이 국민 정서와 일치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흔히 '위드 코로나'로 불리는 방역 전략은 한국 국민들에게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우선 '위드'(with, 함께)라는 용어가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한다. '질병과 함께' 살라는 주문으로 들리니 불쾌할 수 있다. 그럼 지금까지 우리가 감내하며 따라온 건 뭐냐는 불평도 나온다.

그 때문일까, 정부도 용어 사용에 부담을 가지는 눈치다. 코로나에 대한 긴장감이 늦춰질 것을 우려, '단계적 일상 회복'이라는 용어를 권장하고 있다.

늘 앞서갔던 K방역

사실 '위드 코로나'는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쓰인 표현이다. 물론 우리가 낯설어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세계의 동향에 뒤처졌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너무 선두에서 앞서왔기 때문이다. 앞서가다 뒤를 돌아보니 새삼 느껴지는 거리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케이방역으로 불리는 역동적 방식으로 코로나 방역에 성과를 올리는 동안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항바이러스 전략을 놓고 고심해 왔다. 케이방역은 국민의 주도적 참여와 방역요원들의 헌신적 노력, 우수한 정보통신 기술의 상용화라는 삼박자가 빚어낸 새로운 방역모델이었다. 한발 먼저 움직이는 정부의 발 빠른 조치들도 물론 역동성에 시너지를 더했다.
 

코로나19 선별검사소에서 의료진이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 이희훈

 
대유행에 대처하는 모든 방역 모델은 세 가지의 보호 원칙을 가진다. 국민 건강, 국가 경제, 인권이 그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방역 모델은 이 세 원칙을 동시에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과거 인류가 시행하던 모든 방역 대책은 대체로 앞의 둘 중 하나에 중점을 두고 고심하던 대책들이었다. 코로나19는 인권보호가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은 인류 최초의 대유행으로 기록될 것이다. 인권 의식의 성장 덕분이지만 조건이 늘어나는 만큼 방역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가치가 등장한 만큼 인류는 새로운 도전 앞에 놓였고 코로나19는 그만큼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응이 필요한 대유행이었다.

이 상황에서 한국은 주권민주주의라는 국민의식을 통해 인권침해의 덫을 피할 수 있었다. 주권 국민은 권리 청구의 주인일 뿐 아니라 위기 대응의 주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유럽의 대부분 국가에서 방역의 장애물로 작용한 인권 침해 논란이 한국에서 커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방역의 주체와 대상을 동시에 자임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후발 주자 한국이 대유행을 겪으면서 서구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과 달랐던 점은 이처럼 주체와 대상의 재귀적 순환구조(이는 인문학적 필연성이다)를 주권민주주의 실현에 성공적으로 적용했다는 사실이다. 카드 사용 내역과 이동 내역 추적 허용이 대표적이다. 한국인들은 공공성을 신뢰하고 자신의 사적 영역의 일부를 기꺼이 방역을 위한 자료로 제공함으로써 방역 당국의 '핀셋 방역'(극도로 세밀한 규모의 제한적 방역)이 성공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인권침해의 논란을 넘어서 이뤄낸 핀셋 방역은 국민 건강을 최대한 지키면서 동시에 기본적 경제 순환을 가능하게 했다. 전 세계가 케이방역에 내린 찬사는 이처럼 세 원칙을 모두 지킬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치명적 오류

물론 한국 정부는 케이방역을 좀먹는 치명적 오류도 함께 범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코로나 위기를 전시(戰時)로 인정하고 자영업자와 영세민의 운명을 국가의 운명과 동일시했다. 위기 상황에 선 서민의 운명을 국가의 운명으로 삼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서방 선진 민주국가들이 천문학적 규모의 서민 지원책들을 내놓는 동안 한국의 관련 대책은 이에 크게 못 미쳤다. 코로나 위기에 맞선 선진국 가운데 한국은 국가 재정 관리를 위해 민생을 희생시킨 사실상 유일한 국가였다.
 

음식점, 호프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른 정부의 영업시간 제한에 항의하며 형평성 있고 합리적인 방역기준 수립해 달라고 요구했다. 2021.1.15 ⓒ 유성호

 
2020년 기준 한국보다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총 7개국이다. 이들 중 어느 국가도 한국보다 국가채무 비율이 낮은 곳은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국가부채는 41.9%인 반면 미국은 108.7%, 일본은 238%, 프랑스는 98.1%다. 비교적 재정 건전성이 양호한 독일의 경우도 59.5%의 국가부채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가운데 어느 곳도 한국보다 코로나19 지원을 낮게 내놓은 국가는 없었다. 지난 3월 주간지 <시사IN>이 밝힌 한 조사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국내총생산 대비 한국의 코로나19 대비 정부지출은 재정 지원, 유동성 지원을 합쳐 13.6%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일본의 지출은 44%, 독일은 38.9%, 영국은 32.4%였다. GDP 규모가 큰 미국도 한국보다 높은 19.2%를 기록했다.

이것은 국가부채 관리라는 기획재정부의 편집증적 집착이 만들어낸 결과다. 정부가 자신의 부채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동안 한국의 가계 빚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국제통화기금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국내총생산 대비 한국의 총 가계 부채는 97.9%였다. 같은 기간 미국은 75.6%, 일본은 57.2%, 영국은 84.4%의 가계 부채 비율을 기록했다.

정부가 국가의 위기와 서민의 위기를 별개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지 국회는 반드시 물어야 하며, 코로나19 위기가 끝나더라도 이 문제는 철저히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케이방역은 국민의 자발적 협조로 만들어져야지 결코 국민의 끝 모를 희생으로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K방역의 다음 단계는?

지난 4월 프랑스 파리도핀대학(Université Paris Dauphine)의 미켈 올리우 바르통(Miquel Oliu-Barton) 교수와 국립과학연구소(CNRS)의 바리 프라델스키(Bary Pradelski) 연구원이 이끄는 한 연구팀이 영국의 의학전문지 <란셋>(The Lancet)에 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 37개 회원국에는 두 개의 코로나19 대응 전략이 공존했다. 그 중 하나는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가 시행하고 있는 코로나 박멸 전략(제로 코로나, Zero Covid)이었다. 이것은 공격적인 방식으로 바이러스를 찾아내고 격리해서 완전히 청정 상태까지 이르게 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이 선호했던 방식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활동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위드 코로나, With Covid)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그 이전 버전인 스톱앤고(Stop and go, 격리와 해제를 번갈아 반복하면서 보건과 경제 피해를 최소화 하려는 전략)를 보완한 것이다.

이 논문의 저자들이 조사 끝에 얻은 결론은 제로 코로나를 목표로 삼았던 국가들이 위드 코로나를 전략으로 취한 국가들보다 결과적으로 우수한 방역 성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케이 방역의 우수성이 다시 과학자들에 의해 증명된 논문 결과였다.
 

9월 7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동구 고양꽃전시관에 임시설치된 얀센백신거점접종센터에서 만 30세 내외국인이 접종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그리고 다시 5개월이 흘렀다. 이제 방역당국은 '위드 코로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몇 가지 이유 때문인데 부정적 이유와 긍정적 이유가 함께 있다. 첫 번째 (부정적) 이유는 변이 바이러스의 출몰 이후 좀처럼 확진자 규모가 감소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누구도 짐작하기 어렵다. 여러 경우의 수가 방역 당국의 예측과 예비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두 번째 (긍정적) 이유는 백신 접종자가 늘어갈수록 중증환자와 사망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백신접종이 상대적으로 늦었던 한국은 빠른 속도로 따라잡아 14일 기준 1차 접종자가 전체 인구의 67.4%를 넘었다. 이는 5천만 이상 인구 국가 가운데 중국,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에 이어 다섯 번째에 해당한다.

신규 확진자 규모가 두 자리일 때도 1.00%를 넘기던 한국의 치명률(전체 질환자 대비 사망자 수)은 백신의 대대적 보급과 함께 점점 줄어 15일 기준 0.86%까지 떨어졌다(같은 시간 전 세계 치명률은 2.06%). 중증 환자와 사망자가 줄고 있다는 것은 공중보건 체계의 안정적 유지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완치자 비율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지난해 3월 6일 누적 환자수 대비 누적 완치자 수의 비율은 52.6%였다. 3개월 후인 지난해 6월 6일에는 49.4%로 떨어졌다. 상황이 심각해진 결과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8일에는 70.9%로 크게 오르더니 3개월 후 12월 8일에는 72.8%로 더 상승했다.

이 리듬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3월 6일에는 80.6% 그리고 6월 6일에는 89.3%로 완치자 비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지난 9월 8일에는 88.7%로 약간 낮아졌지만 큰 추세를 바꿀 정도는 아니다.

세 번째 이유는 세계적 추세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경제 활동과 국민 이동 지침을 정상화로 이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제한 조치들을 고수할수록 고립될 수 있다는 현실적 이유다. 유럽인들은 지금의 성적으로도 일상 회복이 충분하다는 여론이 강하다. 물론 유럽의 중증 환자 이행률과 사망률도 빠르게 줄고 있다.
 

마스크 착용 의무 종료…'자유의 날' 맞은 영국 시민들 영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규제를 대거 푼 '자유의 날'인 19일(현지시간) 오전 출근 시간대에 대부분의 시민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런던브리지 위를 걸어가고 있다. 영국 정부는 이날부터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모든 규제를 해제했다. ⓒ 연합뉴스

 
물론 한국 방역 당국과 국민 정서가 생각하는 위드 코로나는 서유럽과 미국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서구 사회가 생각하는 위드 코로나는 현재의 신규 확진자 규모(서유럽의 경우 1만~4만 명, 미국의 경우 10만~20만)를 감수하고 정상화를 강행하는 것을 말하는 반면, 한국의 경우 신규 확진자 규모 100명 미만을 달성할 경우 일상 회복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다수다.

이러한 추세로 볼 때 올해 안에 제한적이나마 일상 회복의 길로 이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상화와 함께 과연 케이방역의 연착륙은 가능할 것인가. 지금까지 살펴본 여러 지표와 정황을 볼 때 한 가지를 제외하면 긍정적 신호가 보인다.

그렇지 않은 한 가지는 바로 기재부의 편집증적 곳간 틀어막기다. 국민의 감내와 성숙한 주권 의식, 성공적 방역 모델, 꾸준한 백신 보급으로 팬데믹 피해를 최소화했지만 보이지 않은 곳의 중소 상공인들은 그러는 동안 피를 말리며 버텨왔다. 그들을 외면하면서 케이방역의 성공을 말할 수 있을까?
 

업종별 자영업자 단체들이 모인 코로나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아래 비대위)는 이날 오후 11시부터 9일 오전 1시경까지 전국 9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차량 시위를 진행했다. ⓒ 비대위제공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