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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15미터 화폭에 '여순사건'을 그리고 있는 강종열 화백
 초대형 15미터 화폭에 "여순사건"을 그리고 있는 강종열 화백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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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열은 동백꽃 화가다. 동백숲 작가다. 초대형 화면에 동백 숲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동백꽃을 '빛의 속살'에서 건져올려 대형 화폭에 '동백숲 속 빛의 향연'을 펼쳐보여 관객을 놀라게 했다. 그 화폭에 이젠 역사를 담고 있다. 동백꽃도 함께.

여순사건 배경으로 그림 작업 중
 
화폭 중앙에 배치한 그림의 주제 '화해와 상생'을 설명해 주고 있다.
▲ 작품 설명하는 강종열(70) 화백 화폭 중앙에 배치한 그림의 주제 "화해와 상생"을 설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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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사는 바로 '여순사건'이다. 고향의 아픈 역사다. 어머니로부터 들은 슬픈 이야기였다. 무겁게 짓누르는 짐이었다. 70대에 들어선 강종열 화백(70, 여수시 여서동)이 붓으로 풀어내 그 짐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당시 상황에 대한 상상력이죠. 작업실에서 종일 작업을 마치고 집에 와 서 잘 때면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죠. 학살이나 피해 상황속에 내 자신이 빨려 들어간겁니다. 몸무게가 줄고, 대상포진이 오기도 하고 힘든 적이 여러 번 있었죠."

여순사건은 1948년 10원 19일에 여수주둔 14연대 군인들이 제주도 출동명령에 따르지 않은데서 출발했다. 봉기 군인들에 의해서,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작가는 어린시절 여순사건을 겪은 어머니로부터 들은 많은 이야기를 이번에 소환했다. 

73년이 흐른 올해는 여수사건 특별법이 제정되어 처음으로 여수시에서 주관한 추념행사의 부대행사로 전시가 준비 중이다. 실은 강 화백은 내년쯤 여순사건 전시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특별법 제정 기념으로 추진되면서 당겨진 셈이다.

"10여년전부터 여수사건을 그려보려고 준비를 하다가 지난 2016년도에 40주년 기념전을 하면서 여수사건 작업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죠. 이제 '여수.순천 10.19사건 희생자 명예회복 및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73년 만에 여순사건이 공식적으로 국가적으로 추모하는 추념식이 개최되니까, 작가로서도 홀가분합니다. 무거운 주제고 피해 당사자가 있어서 섣불리 추켜들고 작업하기가 결코 쉽진 않았으니까요."

15m 크기인 '여순사건'... 마무리 단계
 
여순사건 발생 당일(1948.10.19)을 떠올려 본다
▲ 군화와 동백  여순사건 발생 당일(1948.10.19)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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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화백은 목탄화 작업을 수없이 한 후 그 작업을 바탕으로 대형 작품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다.
▲ 대형 작품 속에 피어있는 "동백" 강 화백은 목탄화 작업을 수없이 한 후 그 작업을 바탕으로 대형 작품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다.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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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40대 때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만났다. '게르니카'로 인하여 스페인 프랑코군의 독재와 만행이 전세계에 알려졌듯이 강종열 화백은 10월 전시가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여순사건을 일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 담긴 '해원'이 상생과 희망의 메시지로 전달되길 바라고 있다.

이번 '여수사건' 작품은 게르니카에 비해 두 배 정도의 크기인 15m 짜리다.

"초대형 작품 가칭 '여순사건'이란 그림인데요. 제가 역사적인 사건을 그림으로 그리려 한 것은 국가폭력이란 한 축이 있거든요.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잖아요. 이유 없이 죽었는데 해원이 필요한거죠. 어떻게 그림으로 그걸 풀어줄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마무리 작업 중입니다.

대형 작품 속의 에피소드 별로 무수히 많은 목탄화를 그렸어요. 어머니 이야기가 바탕이 되고, 상상력이 동원되고, 칼 마이던스의 사진첩을 보며 모티브를 얻기도 하면서 목탄화 작업을 엄청나게 했죠. 목탄화 작업 결과들을 골라 주제를 이끌어 가고 있구요. 이 대형 작품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그림 중앙에 배치한 주제를 부각시키려고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그는 수개월 고민하다 악수하는 장면으로 용서와 화해를 정중앙에 배치하고 양 옆으로 퍼져 나가는 에피소드들이 가지를 치면서 대형 작품의 스토리를 엮었다.

73년의 묵은 감정이 조금이라도

오는 10월 전시에는 약 80여점이 선보인다, 사건 발발 직전에 여수 바다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여순사건 발발은 10월 19일 밤이었다는데, 그날 밤 하늘은 무슨 전조를 보이진 않았을까? 그의 상상력은 끝이 없다. 역사와 작가의 상상력이 함께 만나 화폭으로 전해지게 된다.
 
 2005년 경기도 파주에서 열린 ‘세계평화축전 동티모르 특별전’ 작품 일부
▲ 강종열 作 2004. "병든 자"   2005년 경기도 파주에서 열린 ‘세계평화축전 동티모르 특별전’ 작품 일부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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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업을 두고 동백꽃의 작가가 왜 역사를 그리느냐는 질문을 받고 있다며 그는 이렇게 답했다.

"초기 제 작품을 보면 바닷가 여수 남산동에서 제가 살았기 때문에 어촌과 어부들의 강하고 거친 삶들이 표현되어 있구요. 제가 동티모르 스케치를 다녀와서 2005년도에 경기도 파주에서 '세계평화축전 동티모르 특별전'을 한 적이 있어요. 당시 동티모르 사람들의 고단하고 힘든 삶을 다룬 적이 있는데, 여수사건 그림도 그런 연장선에서 민초들의 모습을 표현한 동일한 작업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번 작업을 그는 인생 막바지에 에너지를 다 쏟아내려고 시작했다. 영혼을 끌어서라도 원없이 표현하려고 작심을 하고 임했다. 그래서 그는 '역사'의 붓질을 하고 있다.

"제 붓 터치 하나하나가 역사를 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만한 고통은 능히 참을 수 있다고 다지면서 작업을 하고 있지요."

분명한 그의 메시지와 방향성으로 스스로 위로 받는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존엄성', '인간애'다. 해묵은 집단이념이든 개인이념이든 이번에 갈등이 아닌 화해로 상생으로 승화됐으면 싶다. 

오는 10월 19일 여수엑스포 전시장에서 한 달간 펼쳐지는 2021년 여순사건 특별법제정 기념전시 '여수의 해원' 전에서 73년 묵은 감정들이 그림을 통해서 모두의 '악수'가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용서와 화해의 몸짓은 바로 '악수'이기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태그:#강종열 , #여순사건 특별법제정기념, #게르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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