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흥행작을 보유하고 있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1971년 첫 상업영화 <듀얼>을 시작으로 2018년 <레디 플레이어 원>까지 47년 동안 33편의 장편 영화를 연출했다. 1993년에는 스필버그 감독 커리어의 최고 명작으로 꼽히는 <쥬라기 공원>과 <쉰들러 리스트>를 동시에 선보였고 2002년에도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캐치 미 이프 유 캔>이 같은 해에 개봉했다.

47년 동안 33편의 영화를 연출한 스필버그 감독은 평균적으로 약 1.4년에 한 편씩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 셈이다. 하지만 스필버그 감독도 1975년 재난 액션 영화 <죠스>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많은 명작들을 거느린 거장이 되진 못했을 것이다. 1975년 여름에 개봉한 <죠스>는 당시 세계적으로 4억71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면서 '스필버그 신화'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이처럼 세계적인 거장들에게는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가 된 작품이 있다. 스필버그와 달리 1981년 데뷔 후 단 8편의 영화 만을 연출한 또 한 명의 거장 제임스 카메론에게도 스필버그의 <죠스> 같은 의미를 가진 작품이 있다. 보디빌더 출신의 근육질 배우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일약 최고의 액션스타로 만들고 미래에서 온 '기계인간 암살자'라는 시대를 뛰어넘는 SF 액션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였던 1984년작 <터미네이터>였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1984년에 <터미네이터>의 각본과 연출을 모두 맡았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1984년에 <터미네이터>의 각본과 연출을 모두 맡았다. ⓒ 퍼시픽 웨스턴

 
세계흥행 1위와 3위 영화를 만든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나 리들 리 스콧처럼 커리어 내내 2~30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하며 노년까지 열정을 불태우는 감독도 있지만 소수정예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도 적지 않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 역시 긴 경력에 비하면 생각보다 많은 영화를 만들진 않았다(극장 개봉 장편영화 8편). 1981년 <피라냐2>를 통해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카메론 감독은 1984년 640만불의 제작비가 들어간 저예산(?) SF 영화 <터미네이터>를 연출했다. 

카메론 감독은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만들어진 <터미네이터>를 통해 세계적으로 78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리며 첫 성공의 기쁨을 누렸다. 1985년 <람보2>의 각본 작업에 참여한 카메론 감독은 1986년 리들 리 스콧 감독이 연출했던 <에이리언>의 속편을 연출했다. 서스펜스 호러 영화에 가까웠던 전편과 달리 카메론 감독은 액션 스릴러에 가까운 장르로 2편을 만들었고 <에이리언2>는 전편과 다른 매력을 가진 속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89년 <어비스>를 만든 이후 다시 2년의 제작기간을 거친 카메론 감독은 1991년 할리우드 영화 최초로 제작비 1억 달러 시대를 열며 <터미네이터>의 속편을 선보였다. 본인이 만든 전편을 제대로 뛰어 넘었다는 평가를 받은 <터미네이터2>는 세계적으로 5억19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올리며 크게 히트했다. 1994년에 만든 <트루 라이즈> 역시 3억78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카메론 감독은 할리우드의 흥행보증수표로 떠올랐다.

하지만 <터미네이터2>와 <트루 라이즈>는 1997년에 개봉한 <타이타닉>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카메론 감독은 1997년 <타이타닉>을 통해 세계적으로 21억87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렸고 1998년 아카데미 영화제 감독상과 작품상을 휩쓸며 '세계의 왕'으로 등극했다. 그저 블록 버스터를 잘 만드는 SF영화 전문 감독에서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모두 섭렵할 수 있는 할리우드의 진정한 거장으로 인정 받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2009년 좀처럼 깨지기 힘들 거라던 <타이타닉>의 흥행 기록이 카메론 감독 본인에 의해 경신되는 대형사건이 벌어졌다. 카메론 감독이 연출한 <아바타>가 세계적으로 27억8800만 달러라는 엄청난 흥행 성적을 올린 것이다. 비록 북미기록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게 물려 줬지만 세계 흥행 기록 1위는 여전히 <아바타>가 가지고 있다. 코로나19 등으로 개봉시기가 늦춰지고 있는 <아바타2>는 오는 2022년12월에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제임스 카메론이 만든 <터미네이터>의 세계관
 
 보디빌더 출신의 근육질스타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터미네이터> 이후 할리우드 최고의 액션스타로 군림했다.

보디빌더 출신의 근육질스타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터미네이터> 이후 할리우드 최고의 액션스타로 군림했다. ⓒ 퍼시픽 웨스턴

 
<터미네이터>는 화려한 액션과 1984년에 만들어진 영화라고는 믿기 힘든 특수효과 등 시대를 뛰어넘는 퀄리티를 보여주는 걸작으로 꼽힌다. 하지만 <터미네이터>의 진정한 가치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만들어낸 파격적인 스토리와 세계관이었다. 카메론 감독이 거장으로 인정 받는 진짜 이유는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 때문인지도 모른다(카메론 감독은 <아바타>에서도 나비족의 언어를 직접 만들었다).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에서 컴퓨터와 인간은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컴퓨터는 인간들을 이끄는 사령관의 어머니를 살해하가 위해 과거로 암살 로봇 T-800(아놀드 슈워제네거 분)을 보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인간들도 젊은 용사 카일 리스(마이클 빈 분)를 과거로 보내 사령관의 어머니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 분)를 지키라는 임무를 준다. 물론 사라를 보호하기 위해 과거로 온 카일이 존 코너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터미네이터2>에서는 T-800이 우리 편이 되지만 1편에서의 T-800은 사라 코너 암살을 위해 미래에서 1984년으로 온 무서운 악역이다. 특히 '이곳은 안전하다'며 사라를 안심시킨 경찰서에 차를 몰고 쳐들어와 총을 난사하며 사라를 찾는 장면이나 유조차가 폭발한 후 뼈대만 남은 T-800이 좀비처럼 등장하는 장면은 마치 호러영화를 보는 느낌마저 든다. 그만큼 집요하게 사라를 쫓는 T-800은 사라와 카일, 그리고 관객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T-800의 추격에 도망 다니기만 하던 사라는 상체만 남은 채 사라를 추격하는 T-800을 압축기로 유도한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T-800에게 "You're Terminated"라는 멋진 대사를 외치며 T-800을 '제거'한다. 촬영 당시 제작사에서는 유조차 폭발 장면에서 영화를 끝낼 것을 요구했지만 케메론 감독은 영화의 판권을 1달러에 넘기면서 촬영 및 편집의 전권을 얻었고 이로 인해 원하는 대로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자신이 제거해야 할 대상의 나이와 주소 등을 몰랐던 T-800은 전화번호부를 뒤져 사라 코너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들의 개인정보를 알아낸다. 지금은 사생활 침해와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발행이 중단됐지만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각 가정과 공중전화박스에서 전화번호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과거 우리는 중요한 개인정보가 불특정 다수에게 가감 없이 공개되면서도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던 시절을 살았다는 뜻이다.

존 코너의 부모가 되는 사라와 카일
 
 T-800에 쫓기다가 사랑에 빠지는 카일 리스(왼쪽)와 사라 코너는 본의 아니게(?) 존 코너의 부모가 된다.

T-800에 쫓기다가 사랑에 빠지는 카일 리스(왼쪽)와 사라 코너는 본의 아니게(?) 존 코너의 부모가 된다. ⓒ 퍼시픽 웨스턴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1편과 2편 사이 가장 크게 달라진 캐릭터는 바로 린다 해밀턴이 연기한 사라 코너다. 1편에서 자신을 죽이려 하는 범인의 등장에 벌벌 떨기만 하던 겁 많은 여인이었던 사라는 T-800과의 사투 과정에서 전사로서의 DNA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터미네이터2>에서는 아들 존 코너(에드워드 펄롱 분)에게 군사지식과 총기사용법, 해킹 등을 가르치며 '지도자 조기교육'을 시킨다.

<터미네이터>를 통해 세계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배우 린다 해밀턴은 1986년 <킹콩2>에 에 이어 1987년 TV시리즈 <미녀와 야수>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하지만 <터미네이터2> 이후엔 1997년 <단테스 피크> 정도를 제외하면 확실한 대표작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도 2019년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에서는 오랜만에 사라 코너 역으로 출연해 노익장을 과시하며 올드 팬들의 뜨거운 지지를 얻었다.

<터미네이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는 단연 T-800 역의 아놀드 슈왈제네거다. 하지만 사실 <터미네이터1>의 남자 주인공은 카일 리스를 연기했던 마이클 빈이었다. T-800으로부터 사라 코너를 보호하라는 사령관의 중요한 명령을 받고 1984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카일은 보호대상인 사라와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이 사령관으로 모셨던 존 코너의 아빠가 되고 장렬하게 전사한다.

카일을 연기한 배우 마이클 빈 역시 <터미네이터>로 주목 받기 시작해 <에이리언2>,<특전대 네이비씰> 등에서 주연을 맡으며 80년대 후반 액션 배우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1996년 <더 록>의 찰스 앤더슨 중령 역을 끝으로 더 이상 히트작에 캐스팅되지 못했다. 지난 2009년 아들이 사망한 후 연기 활동을 잠정 중단했던 마이클 빈은 작년 디즈니 플러스에서 개봉한 <스타워즈: 더 만달로리안>을 통해 오랜만에 복귀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터미네이터 제임스 카메론 감독 아놀드 슈왈제네거 린다 해밀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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