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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밴쿠버의 가을은 텃밭 농부에게 있어서 꼭 반갑지만은 않은 계절이다. 흔히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가을이 되면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풍성했던 여름의 수확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 성큼 다가오기 때문이다.

계속 열려서 마음을 행복하게 해 주던 오이, 호박, 토마토 등이 모두 끝나고, 여름내 쌈 싸 먹을 수 있게 해 주었던 깻잎도 꽃이 피며 마무리를 시작하는 계절이다. 모든 식물은 꽃대가 올라오면 잎이 뻣뻣해지기 때문에 그리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도 있지만, 여기에 또 다른 즐거움이 숨어 있다. 시장이나 마트에서는 구할 수 없는 귀한 것을 먹는 딱 한철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호박꽃과 깻잎 꽃대 튀김이 동시에 가능한 짧은 시기
 호박꽃과 깻잎 꽃대 튀김이 동시에 가능한 짧은 시기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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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내내 호박꽃 튀김을 먹었는데, 이제는 깻잎 꽃대 튀김을 먹을 차례다. 꽃이 필 때는 잎 옆 마디마다 꽃망울이 하얗게 조롱조롱 올라오는 게 아주 귀엽다. 한 군데 피면 그 위에 또 꽃망울이 올라오고, 계속 반복되면서 층층이 길어진다.  
  
조롱조롱 하얗게 맺힌 깻잎 꽃망울
 조롱조롱 하얗게 맺힌 깻잎 꽃망울
ⓒ 한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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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번 꽃이 피기 시작하면 점점 많아져서 전체가 다 꽃으로 뒤덮일 정도로 많다. 잎 사이사이로 차곡차곡 쌓여가는데, 그렇다고 꽃이 오래 피어 있지는 않는다. 특히 이곳은 비가 많이 오니 꽃도 빨리 진다. 하지만 꽃이 지고 나도 그대로 예쁘다. 꽃이 빠진 자리에 남은 꽃받침은 그대로 들깨방이 된다.
 
꽃대가 올라온 깻잎
 꽃대가 올라온 깻잎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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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이 복슬복슬한 연두색 꽃받침 안을 들여다보면, 하얗게 들깨가 몇 개씩 들어 있다. 살짝 건드리면 쏟아질까 걱정되지만, 다 익어서 색이 들기 전에는 쏟아지지 않는다. 

톡 터지는 들깨향... 고소한 이 맛
 
꽃받침 안에 하얀색 들깨가, 아직 덜 익은 채 내다보고 있다.
 꽃받침 안에 하얀색 들깨가, 아직 덜 익은 채 내다보고 있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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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따라서는 꽃이 한창일 때 튀겨 먹는 것이 맛있다고 하지만, 나는 지금 요 때가 제일 맛있다. 안에 들어 있는 깨가 제법 실해지는 시기이고, 튀겨서 먹으면, 씹을 때 입 안에서 들깨가 터지면서 고소함이 확 퍼지기 때문이다. 

이 깻잎 꽃대는 시장에서 팔지 않기 때문에, 직접 키워야만 먹는 게 가능하다. 꼭 마당 텃밭이 아니어도 베란다에 만든 화분에서도 가능한 것이 깻잎이다. 열매가 목적이 아닌 깻잎은 고추나 토마토보다도 훨씬 쉬워서 해가 드는 베란다가 있다면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다.

이 밴쿠버에서는 깻잎이 정말 비싸기 때문에, 뭔가 식물을 딱 하나만 키워야 한다면, 나는 깻잎을 선택할 것이다. 그만큼 유용한데, 가을이 되면 이렇게 꽃 튀김 선물까지 받으니 더욱 반갑다.

내가 십 년 전, 이 튀김을 처음 할 때는, 깻잎을 베란다에서 처음으로 키웠을 때였는데, 깻잎 꽃대를 튀겨서 아이에게 먹게 해 준다고 상당히 들떠 있었다. 그런데 당시에 건강이 안 좋아서, 튀기다가 기름 냄새 맡고 그만 기절을 해 버렸다.

중학생이던 딸과 둘이 지내고 있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기에 나도 많이 놀랐고, 아이는 정말 무서웠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곧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저녁을 해 먹였던 기억이 난다. 무조건 살아야 한다고, 에너지를 끌어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꽃대와 깻잎을 같이 튀겨서 먹어도 맛있다.
 꽃대와 깻잎을 같이 튀겨서 먹어도 맛있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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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작년에는 코로나로 캐나다 국경이 막혀 버려서, 영주권 없던 딸이 집에 오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심하게 했었다. 전쟁과도 같이 급박하게 돌아가던 작년 상황에서, 이럴 때일수록 가족과 함께 지내야 하건만, 하나뿐인 딸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은 큰 상실감이었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아이는 엄마도 없는 한국으로 귀국을 하여 혼자 지내게 되었으니 엄마로서 억장이 무너졌다. 그러다가 급기야 가을로 들어서면서 가족에 관한 규정이 약간 느슨해졌고 복잡한 서류 확인을 통해 딸이 드디어 올 수 있었다. 

아이를 다시 만났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0월이었고, 으슬으슬하게 매일 비가 내리던 밴쿠버의 날씨에, 나는 딸아이를 위해 아껴두었던 깻잎과 꽃대 튀김을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만 밤새 서리가 내려서 하룻밤 사이에 깻잎이 완전히 죽어 버렸다.
 
서리를 맞고 하루 밤 사이에 완전히 갈색으로 얼어 죽은 깻잎
 서리를 맞고 하루 밤 사이에 완전히 갈색으로 얼어 죽은 깻잎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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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은 정말 추위에 약한 작물이다. 그래서 봄에 심을 때에도 날씨를 잘 봐서 내다 심어야 하는데, "이렇게 큰 작물이 그렇다고 설마 하룻사이에 완전히 죽기야 하겠어?" 하며 방심했던 것은 나의 완전한 착오였다. 온통 갈색이 되어버린 모습에 너무 가슴이 아팠고, 이 귀한 것을 잃었다며 망연자실하다 보니,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씨방은 여전히 연두색을 유지 중이었다! 

결국 나는 얼른 잘라 가지고 들어와서 연두색이 남아 있는 꽃만 따 모아서 튀겨주었다. 이 와중에 살아남은 이유는, 아마도 종족 번식이 목적이었으리라. 혹한을 만나도 자손을 남길 수 있는 구조를 가진 것이 결국 자연의 진리이니 말이다. 식물의 종족보존 본능은 인간보다 훨씬 강하다.

깻잎 꽃대를 튀기며, 다시 아이를 기다린다 
 
꽃대만 일일이 손으로 뜯어서 모았다.
 꽃대만 일일이 손으로 뜯어서 모았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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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을 절약하기 위해서 프라이팬을 기울여서 튀기고, 살짝 튀겨진 것을 끌어올려 뜨거운 프라이팬에서 마저 익히며 기름을 뺀다.
 기름을 절약하기 위해서 프라이팬을 기울여서 튀기고, 살짝 튀겨진 것을 끌어올려 뜨거운 프라이팬에서 마저 익히며 기름을 뺀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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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종족번식을 허용하지 않았고, 자그마한 씨방을 모두 모아서 튀김을 만들어냈다. 정말 눈물겨운 튀김이었다. 마침내 집에 돌아온 딸은 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엄마의 깻잎 꽃대 튀김을 먹으면서 드디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딸은 이번 여름, 다시 떠났다. 이제는 강제 이별이 아니라, 자신이 꾸는 꿈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공부를 더 하러 미국으로 갔다. 이 가을에 돌아와서 깻잎 꽃대 튀김을 함께 먹지 못하겠지만, 겨울방학이 되면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엄마는 그 사이에 깻잎 꽃대 튀김을 만들어 먹으며 기다릴 것이고, 또 일부는 튀겨서 냉동실에 보관할 것이다. 아이가 와서 먹을 테니까 말이다.
 
깻잎 꽃대 튀김
 깻잎 꽃대 튀김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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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lachouette/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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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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