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이 전세계 넷플릭스 콘텐츠 중 모든 국가에서 흥행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오징어게임'이 하나의 현상이자, 한국 드라마계에서는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 할 만하다.

하나의 콘텐츠가 이 정도의 이례적인 성공을 했다면, 이를 다른 기준에 끼워맞춰 분석할 게 아니라, 이 작품을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의 콘텐츠에 대해 분석할 필요가 생긴다. 그래서 '오징어게임'을 하나의 기준으로 보고 그 흥행이유에 대해 분석해볼까 한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포스터

▲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포스터 ⓒ 넷플릭스

 
1. 다중적인 시점 - 플레이어, 구경꾼, 추적자

'오징어게임'의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여러 가지 시점이 골고루 등장한다는 점이다. 대개 한 사건을 보는 시선이 여러가지인 경우에는, 시선이 분산되어 몰입감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게임 '플레이어'의 시선, 그 게임을 관조하고 관리하는 '구경꾼'의 시선, 또한 그 게임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하는 '추격자'의 시선이 모두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원래 전통적인 작품들은 대부분 '플레이어'의 시선에 초점을 맞춘다. 싸우고, 살아남고, 죽이고, 살해당하고, 위기와 공포를 느끼는 그 주인공에 고도로 몰입하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 작품들의 기술이다.

그러나 동시에 근래 사회로 올수록 '구경꾼'의 시선을 담은 작품들이 많아지고 있다. 웹툰, 웹소설 등 가장 최근의 트렌드를 이끄는 장르들뿐만 아니라, 각종 관찰 예능 프로그램, 리얼리티쇼 등 수많은 대중 콘텐츠들이 플레이어를 '구경'하는 위치에놓는다. 이 구경의 쾌감, 편안함, 즐거움이 최근 대중문화의 주요한 특성이다.

'오징어게임'을 보는 시청자는 '플레이어'들인 주인공들에게 고도로 몰입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구경하는 '구경꾼'의 위치에 놓이기도 한다. 이 두 가지 관점의 중첩이야말로 특이한 것인데, 시청자는 고도로 몰입하며 긴장하다가도, 그들을 게임판 위의 말처럼 갖고 노는 구경꾼의 위치에서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오징어게임'을 보면서 끊임없는 긴장과 이완의 반복을 겪는 것이다. 마치 '오징어게임'에 배팅한 또다른 VIP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동시에 이 게임을 파헤치려는 '진실 추적자'의 입장도 따라가게 된다. 이는 시청자가 일종의 '정의로움'과 '진리 추구'에 공감하게 하는데, 이러한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도 시청자에게 분명한 만족감을 준다.

나는 플레이어의 위치에서 괴롭다가도, 구경꾼의 위치에서 유희를 즐기고, 추적자의 위치에서 정의와 진실에 대한 열망을 느낀다. 사실, 인간 삶의 태도라는 게 이 3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다중적인 시점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인생을 담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중 줄다리기 장면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중 줄다리기 장면 ⓒ 넷플릭스

 
2. 단순한 규칙과 위반의 쾌감

원래 자기의 목숨을 건 '데스게임' 장르는 꽤나 폭넓게 유행하던 콘텐츠다. '배틀로얄'이나 '헝거 게임' 등이 대표적인데, '오징어게임' 또한 일종의 데스게임 장르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기존의 데스게임과 다르게 '오징어게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어린 아이들이 하던 가장 단순한 놀이들을 차용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누구나 아무런 부담 없이 참가하곤 했던 놀이들의 특성은 그만큼 규칙이 단순하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이 단순한 게임들에 돈과 목숨이 걸리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플레어이들에게 그 규칙 위반을 쥐어짜내게 한다. 그래서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게임에는 일종의 '편법' 혹은 '탈법' 장면이 등장한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는 다른 사람 뒤에 숨기, '달고나게임'에서는 라이터로 바늘 지지기, '줄다리기'에서는 미리 게임을 알고 힘 센 사람 모으기, '유리다리 건너기'에서는 가지 않고 버티기나 빛 반사를 이용하기 등 극도로 단순화된 규칙 속에서의 '탈규칙화를 선보인다. 그리고 시청자는 또 어떤 기발한 '규칙 위반'이 등장할지 기대하며 보게 된다.

사회의 규범 위반은 사실 모든 인류의 꿈이기도 하다. 법은 항상 끊임없는 편법과 탈법을 쫓아가기 바쁘다. 모든 터부 또는 금지는 위반의 욕망을 불러 일으키고, 그것을 위반했을 때 어마어마한 자유의 쾌감을 준다. 현대사회에서 그런 '터부'는 섹스나 사랑, 죽음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또는 '법질서'다.

사실, '오징어게임' 자체가 탈법이기도 하다. 빚을 지건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건, 원칙은 성실히 일해서 돈을 벌거나 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징어게임'은 목숨을 건 '대박 게임'이라는 위법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게 이 작품은 시청자에게 위반의 쾌감을 제공한다. 규칙이 단순하고 절대적일수록, 그 틈새로 터져나오는 위반의 쾌감은 더 극적이 된다.
 
3. 인간성이 가미된 비인간적인 게임

어떻게 보면, '오징어게임'의 가장 한국적인 특징이라고 할 만한 점은 '인간성'이 데스게임에 가미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이 한국적인 인간성이란 흔히 정이라 표현되는 것인데, 일종의 개인주의 시대 이전의 유물 같은 것에 가깝다. 현재는 한국 사회도 점점 개인주의 사회로 접어들고 있지만, 이전까지 '동네'를 중심으로 한 유대를 이루고 있었고, 그 유대감, 정, 인간성이 이 작품에도 녹아 있는 것이다.

특히, 주인공인 기훈(이정재 역)은 이런 '과거의 한국적인' 인물의 상징처럼 등장한다. 그는 동네에서 함께 자란 동생 상우(박해수 역)에게 당연한 친근감 또는 '우리'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미 자본주의 또는 현대사회에 물든 상우는 기훈조차 경쟁자라는 인식이 꽤나 확고하며, 이 둘 사이의 간극이 '현대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동네에서 함께 자란 동생에 대한 우정, 노인 공경, 타인에 대한 연민 등 공동체적인 감성으로 채워져 있는 이 한국적인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기도 하지만, 개인주의가 공고해진 사회 및 시대인들에게는 묘하게 낯선 것이기도 하다. 그 지점이 이 작품을 더 특별하게 만들면서,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현대적이고, 경쟁적이고, 자본주의적이며, 자유주의적인 시대의 게임에 들어간 '복병' 같은 것이다.

더군다나 이 한국적인 인간성, 혹은 '정'은 게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미치기도 한다. 그 절정은 기훈이 할아버지 일남(오영수 역)에게 베푼 '정'이 결국 그의 '생존'으로 돌아왔다는 점일 것이다. 이것은 대의명분, 정의로움, 호혜주의와는 무관한 그냥 '한국적인 정'에 따른 결과다. 이 지점이 게임을 비틀면서 이 작품의 고유함을 드러내는 핵심에 위치하는 셈이다.

4. 빚투 시대의 현실 반영

전 세계적인 양적 완화 추세와 코로나로 인해 자본이 재테크에 쏠리면서, 바야흐로 세계는 빚투의 시대를 맞았다. 부동산이 폭등하고, 주식 시장이 들썩이는 건 물론, 코인 투자로 그야말로 인생 역전을 한 사람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반대로, 그런 시대에 몰락한 사람도 적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세상은 '빚'이 희망이며, 인생 대박의 길이라고 믿는 추세가 이어졌다.

'오징어게임'은 여러 생존 문제를 다루면서도 '빚'을 핵심적인 문제로 내세우면서, 이 시대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사실상 거의 모든 사람이 빚을 진 시대, 그리고 그 빚을 둘러싸고 희비가 엇갈리는 이 시대에서, '오징어게임'이 던진 돌직구는 그 빚이 언제든 우리를 생사의 문제로 끌고 갈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코로나 시대가 이끌고 온 생존에서의 극단적인 어려움, 파산한 가계 경제, 극단화된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고립은 '오징어게임'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더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더군다나 이런 현실은 우리가 사실상 '오징어게임'에 참가하고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이 게임의 예비 참가자라는 사실을 그 무엇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실, 그밖의 공포물들, 귀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거나, 자연재해, 살인자나 전쟁 범죄 같은 소재는 시청자에게 '예외적인 현실'이라는 안심을 갖고 그 상황을 즐기게 한다. 그러나 '오징어게임'은 우리가 속해 있는 경쟁적이고 자본주의적인 현실 그 자체라는 점에서,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오징어게임'은 그 어떠한 소재보다도, 바로 당장 내일, 모레,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현실을 소재로 삼았다. 우리는 실제로 빚쟁이이고, 당장 내일, 은행의 파산이나 금융위기로 사실상의 데스게임에 초대받을 수도 있다. 그것이 현실이고, 그렇기에 그보다 강렬한 것은 없다.

5. 그밖의 뛰어난 연출과 이색적인 소재의 힘

그밖에도 '오징어게임'이 갖고 있는 음악적인 효과, 원색과 강렬한 색감을 활용한 게임 현장과 현실 세계의 색감 대비, 클로즈업과 슬로우 모션 등을 활용한 여러 연출들이 빛을 본 측면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나아가 한국의 아이들이 하는 놀이들이 그 자체로 전 세계인들에게 무척 특이하고 흥미로운 소재였을 것도 분명하다. 특히, 전 세계에서 '오징어게임' 내 여러 놀이들이 크게 유행하고, 팝업 스토어 등이 성행하고 있다고 하니, 이런 놀이들이 세계인들에게 얼마나 흥미롭게 다가웠을지 예상해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도 크게 틀리지 않은 셈이다. 세계는 늘 새로운 것을 원하고, 세계의 기준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새로운 것이자, 고유한 것이고, 특색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성행하고 있는 k-콘텐츠의 세계적인 유행도 그런 관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정지우 문화평론가 페이스북(facebook.com/writerjiwoo) 게재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드라마 웹드라마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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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겸 변호사. <청춘인문학>,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너는 나의 시절이다>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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