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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이장우 기옥. 19세기 말에 지어진 광주 상류층의 호화 저택이다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이장우 기옥. 19세기 말에 지어진 광주 상류층의 호화 저택이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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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을 타고 먼 과거로 돌아온 듯 시간이 멈춰 있는 곳. 옛사람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택(古宅)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숱한 세월을 견뎌낸 고택에는 우리 조상들의 정신과 지혜가 담겨 있다. 마당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나 풀 한 포기. 뒤뜰의 장독대에도 숱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우리 곁에서 역사를 증언해주는 전통 가옥들이 개발과 자본의 논리에 밀려나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그 빈자리를 대한민국의 국민들 대다수가 거주한다는 아파트가 차지하고 있다.

자고 나면 '우후죽순'처럼 쑥쑥 올라오는 아파트 건설현장을 바라보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21세기 한국 주거문화를 상징하는 아파트는 더 이상 지친 육신과 영혼이 쉬는 안락한 휴식의 공간이 아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의 경제적 지위와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계급장'이 돼버린 지 오래다.
 
 양림동에서 바라본 아파트의 모습. 1970년대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한 아파트가 불과 50여 년 만에 우리의 주거 공간을 완전히 잠식해 가고 있다
 양림동에서 바라본 아파트의 모습. 1970년대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한 아파트가 불과 50여 년 만에 우리의 주거 공간을 완전히 잠식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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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한 아파트가 불과 50여 년 만에 우리의 주거 공간을 완전히 잠식해 가는 엄혹한 시기에도 꿋꿋하게 버티며 우리 주거문화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전통가옥들이 있다.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이장우 가옥'도 그런 곳 중의 한 곳이다.

조선시대 말 광주 상류층의 호화 저택

광주광역시 양림동. 광주의 근대화가 맨 처음 시작된 곳이다. 19세기 말 거세게 불던 동학 농민운동의 바람이 잠시 주춤해지자 미국의 남장로 교회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양림동에 정착하게 된다.

당시 양림동에는 아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내다 버리는 풍장터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재력과 권세를 갖춘 양반가들이 거주하는 부자 동네이기도 했다. 선교사들이 지은 학교와 병원, 그들의 생활 터전은 오늘날 광주 근대화의 모태가 되었다.

광주는 '서양촌'이라 부르는 양림동을 중심으로 근대화가 시작되고 발전되었다. 특히 '푸른 눈의 성자'들이 지은 선교사 사택은 '광주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주택'이라는 기록을 갖게 되었다. 양림동에는 근대화의 상징인 기독교 유적과 동시에 우리의 전통문화유적인 한옥이 혼재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촌길 21번지.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만나게 된다.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이장우 가옥'이다. 수령 500년이 넘은 어르신 팽나무가 힘차게 가지를 뻗어 올려 마치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는 이 집은 격동의 19세기가 끝나는 1899년에 지어졌다.
 
 이장우 가옥의 솟을대문. 말이나 가마를 타고 드나들 수 있도록 천장을 높게 지은 바깥대문이다
 이장우 가옥의 솟을대문. 말이나 가마를 타고 드나들 수 있도록 천장을 높게 지은 바깥대문이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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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는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3대 부자가 있다. 당시 사동에 살면서 '흥학관'을 지었던 최명구(崔命龜). 지금의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할아버지이며 '호남은행'을 설립한 현준호(玄俊鎬). 양림동에 '양파정'을 지은 정낙교(鄭洛敎)가 그들이다. 이장우 가옥은 광주 3대 슈퍼리치 중의 한 사람인 정낙교가 그의 큰 아들 정병호에게 지어준 집이다.

19세기 말 광주 갑부의 호화 저택답게 화려한 내부는 물론이며 외관과 정원까지도 아름다운 전통가옥이다. 500여 평의 대지위에 지어진 이 집은 바깥대문과 안대문으로 나누어져 있다. 바깥대문은 말이나 가마를 탄 채로 드나들 수 있도록 천장이 높은 솟을대문으로 지어졌다.

안채 상량문에 '광무삼년을해이월십일축시(光武三年乙亥二月十日丑時)'라고 기록되어 있다. 1899년 2월에 지어졌으니 올해로 122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집은 1960년도 초에 정병호의 동생 정상호가 광주시장에 출마했다 낙선한 후로 가세가 기울어 이장우에게 팔았다. 문화재로 등록할 당시 소유자가 이장우이기 때문에 문화재명이 '이장우 가옥'이 된 것이다.
 
 이장우 가옥의 사랑채. ‘동강정사’라는 당호가 붙어 있다. 동강 이장우 박사는 호남 지역 교육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큰 인물이다
 이장우 가옥의 사랑채. ‘동강정사’라는 당호가 붙어 있다. 동강 이장우 박사는 호남 지역 교육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큰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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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채 앞 연못 상지에서 커다란 돌거북 한 마리가 물속에서 유영하며 안쪽을 바라보고 있다
 사랑채 앞 연못 상지에서 커다란 돌거북 한 마리가 물속에서 유영하며 안쪽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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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 이장우(東岡 李章雨 1919~2002) 박사는 교육에 대한 열정과 신념으로 동강유치원과 동신중․고등학교, 동신여중․고, 동강대학, 동신대학교를 설립하여 호남 지역 교육 발전에 지대한 공로가 있는 인물이다.

남성의 공간 '사랑채'와 여성의 공간 '안채'

이장우 선생이 매입한 후 사랑채와 행랑채, 곳간채를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채와 곳간채, 사랑채와 행랑채, 대문간으로 배치된 조선시대 상류층 호화 저택의 전형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가옥의 안채가 광주시 민속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장우 가옥의 안채는 보통의 남부지방 가옥형태인 ‘ㅡ’ 자 형이 아니라 중부지방의 형태인 ‘ㄱ’ 자 형으로 지어졌다. 가문의 부와 권력의 상징이다
 이장우 가옥의 안채는 보통의 남부지방 가옥형태인 ‘ㅡ’ 자 형이 아니라 중부지방의 형태인 ‘ㄱ’ 자 형으로 지어졌다. 가문의 부와 권력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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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조선 상류층의 가옥이 그러하듯 이장우 가옥도 남성의 공간과 여성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첫 번째 대문인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남성의 공간 사랑채가 나온다. 바로 앞에 인공으로 조성된 연못이 하나 있다.

연못은 상지(上池)와 하지(下池)로 구분되는 이중 구조로 만들어졌다. 상지에서 커다란 돌거북 한 마리가 물속에서 유영하며 안쪽을 바라보고 있다. 가족들의 무병장수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지 않을까.

'동강정사(東岡精舍)'라는 당호가 붙어있는 이곳은 외부 손님을 접대하거나 독서나 휴식을 취하는 남성들의 공간이다. 정사 주변에 수령이 100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와 향나무 등 정원수가 가을의 서정을 더하고 있다. 나무줄기 속이 텅 비어 가는 늙은 감나무는 노랗게 익어가는 감을 주렁주렁 매단 채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생을 이어가고 있다.
 
 앞마당에서 대청으로 오르는 돌계단 양옆에 구름모양으로 설치된 모던한 디자인의 난간은 화려함의 절정을 이룬다
 앞마당에서 대청으로 오르는 돌계단 양옆에 구름모양으로 설치된 모던한 디자인의 난간은 화려함의 절정을 이룬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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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채의 뒤뜰. 높은 굴뚝과 동바리 기둥 하나 없이도 수평을 유지하고 있는 마루가 인상적이다
 안채의 뒤뜰. 높은 굴뚝과 동바리 기둥 하나 없이도 수평을 유지하고 있는 마루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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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사랑채 기둥에는 각종 주련들이 붙어 있고 격자 유리창문 사이로 보이는 내부 서재에는 책들이 정갈하게 꽂혀 있다. 사랑채 주인이었던 동강 선생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신념이 오롯이 남아 있는 곳이다.

여성의 공간, 안채로 들어서기 위해선 또 다른 문을 통과해야 한다. 행랑채와 사랑채 사이 안대문으로 들어선다. 들어서는 순간 별천지가 펼쳐진다. 하얀 카펫을 깔아 놓은 듯 화강석 돌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덧 안채에 이른다.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바라보는 가을 하늘이 참 곱다.
 
 안채의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가을 하늘
 안채의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가을 하늘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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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정리된 넓은 흙마당에 가을볕이 가득 내려앉아 있다. 마당을 빙 두른 정원에는 무화과나무, 매화나무, 겉이 까만 오죽 (烏竹) 등 계절에 어울리는 관목과 화초들이 가득하다. 앞마당에서 대청으로 오르는 돌계단 양옆에 구름모양으로 설치된 모던한 디자인의 난간은 화려함의 절정을 이룬다.

이장우 가옥의 안채는 보통의 남부지방 가옥형태인 'ㅡ' 자 형이 아니라 중부지방의 'ㄱ' 자 형태로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가문의 부와 권위를 나타내고 싶은 주인의 마음이 담겨있다. 긴 장대석을 세 겹으로 쌓아 올려 튼튼하게 기단을 다진 후에 원형 기둥과 사각기둥을 세우고 팔작지붕을 얹은 36평 규모의 큰 집이다.

안채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면 집안 곳곳에 설치된 장식물들이다. 여닫이문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중인방에 설치한 거북 장식물과 4분합으로 된 들어열개문을 고정하기 위한 참새 모양의 걸쇠는 여느 가옥에서 불 수 없는 독특하고 세련된 디자인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라는 말이 여기서는 안 통할 듯싶다.
 
 들어열개문을 고정하기 위한 참새 모양의 걸쇠
 들어열개문을 고정하기 위한 참새 모양의 걸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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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물 펌프. 21세기 아파트가 우리 주거 공간을 잠식하면서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우물 펌프. 21세기 아파트가 우리 주거 공간을 잠식하면서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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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우 가옥'은 19세기 말에 지어져 일제강점기와 20세기를 거치며 우리의 전통가옥 한옥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솟을대문, 연못, 우물, 뒤안, 장광, 툇마루, 곳간, 행랑 등등. 21세기 욕망으로 가득 찬 아파트에 사는 우리들이 잃어 가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 문득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고 싶다면 양림동 이장우 가옥으로 가 볼 일이다. 안채 툇마루에 앉으면 가을 하늘이 풀샷으로 다가온다. 아파트에서는 죽어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마당을 빙 두른 정원. 무화과나무, 매화나무, 겉이 까만 오죽 (烏竹) 등 계절에 어울리는 관목과 화초들이 가득하다
 마당을 빙 두른 정원. 무화과나무, 매화나무, 겉이 까만 오죽 (烏竹) 등 계절에 어울리는 관목과 화초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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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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