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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공익광고 포스터에 출품된 광고디자이너 이제석의 '한 그루의 나무도 소중히'라는 작품을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다. 이 포스터를 보면 사막 한가운데 직선화된 도로를 내면서 한 그루 나무가 있는 자리는 피해 우회 도로를 내 나무는 그대로 살려놓았다. 단 한 그루의 나무도 포기하지 않는 따뜻한 인간의 감성이 느껴지는 광고다.

2019년 국토교통부 '도로 현황, 교통량 조사 통계 발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는 11만1천314km라고 한다. 이것은 지구 2.7바퀴를 돌 수 있는 거리고, 달까지 갈 수 있는 1/3의 거리에 달할 정도로 길다고 한다. 과연 국토 전체를 도로가 감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이렇게 장황하게 도로 이야기를 통계자료까지 들이대며 언급하는 데는 안타까운 이유가 있다. 지난 9월 7일 경남도의회 제2회 추가경정예산에서 양산의 명산인 천성산을 동서로 관통하는 지방도1028호선 건설에 필요한 타당성 조사 사업비가 통과됐다. 양산의 모 도의원이 적극 나서 홍보하고 타당성 조사 사업비 확보를 본인 치적으로 온갖 언론사를 통해 알리고 있다.

양산은 천성산을 경계로 인구 1/3이 있는 동부양산(웅상)과 인구 2/3가 밀집한 서부양산으로 나뉘어 있다. 물론, 산으로 경계가 있는 듯하나 서로가 오갈 수 있는 길이 4곳이나 존재한다.

우선은 하북면을 통해 울주군 웅촌을 통과해 웅상으로 가는 길, 동면을 거쳐 부산 인접한 곳으로 우회해 가는 길, 동원과학기술대학 쪽을 통해 넘어가는 도로, 그리고 최근에 개통한 국지도60호선까지... 그런데도 숲이 울창하고 수생이 우수한 야산에 터널을 뚫어 천성산을 관통하는 11km 도로를 또 내겠다고 정치인들이 혈안이 돼 있으니 아주 우려스럽다.
 
천성산 화엄늪
 천성산 화엄늪
ⓒ 양산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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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도1028호선을 계획 중인 상북면 소토리에서 5분 안에 갈 수 있는 곳에 서부양산과 동부양산을 연결하는, 최근에 개통한 국지도60호선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이곳은 차량 유입률이 적은 한산한 왕복 4차선 도로다. 주민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개통한 국지도60호선이 텅텅 비어 있음에도 또 새로운 도로를 뚫겠다는 것은 철학도, 상식도 없는 '개발중독'에 가까운 발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우리나라 국토면적 대비 산림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핀란드, 일본, 스웨덴에 이은 4위를 기록해 세계적인 산림 국가로서 면모를 갖추고 있다. 전국 산림 분포율이 60%를 조금 넘고 있으며, 양산은 그나마 70%를 넘기고 있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산림이 풍부한 것을 축복으로 여겨야 하는데, 오히려 선거철을 앞두고 개발주의 정치꾼들에게 공약의 대상이 되고 있어 심히 안타깝다.

천성산은 원래 골골이 물이 많은 무른 산이다. 그래서 천성산 꼭대기 922m에 희귀습지로 알려진 고산 습지가 형성돼 있으며, 습한 곳에서 자란다는 얼레지 군락지, 꼬리치레도롱뇽 등 희귀 야생 식물과 동물이 곳곳에 자라고 있다. 또한, 주변 환경이 보존 가치가 높아서 몇 해 전에는 천성산 인근 내원사에서는 유전자 보호림을 조성하려고 시도한 적도 있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4년 상북면에 있는 천성산 하부 약 30만평 부지에 석계산업단지를 위해 산을 깎으면서 5만4천여 그루의 나무가 사라졌고, 산을 거의 직선으로 잘라 수십m의 옹벽을 쌓았다. 그때 이후 장마가 지면 상습적인 산사태로 인해 인근 주민에게 심각한 공포감을 주고 있는 곳으로 변했다.

2016년 태풍 '차바' 때도 산이 무너지면서 진흙이 하천을 막아 인근 마을, 학교는 물론 저지대 아파트 1층이 잠기는 사례도 있었다. 그리고 2020년 태풍 '하이선' 때는 산업단지 옹벽이 터져 나오거나 무너지고 도로가 파헤쳐졌으며, 산업단지 뒷산이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심각한 균열이 갔으며, 지금까지도 복구에는 엄두를 못 내는 실정이다.

복구비용만 수백억 원이 든다고 양산시의회가 고심을 토로하고 있다. 이런 곳 인근 야산을 도로를 내기 위해 또 산을 뚫겠다는 것은 아주 위험천만한 혈세 낭비다. 도로를 내려는 곳과 석계산업단지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으며 도로를 뚫기 위해 건드리는 순간, 산은 맥없이 흘러내릴 것이다.

지방도이기 때문에 도비와 시비를 매칭해 공사를 진행할 것인데, 경남도의회 자료에 의하면 전체 약 1천300억 원이 든다고 한다. 그중 시비가 만만찮게 소요될 것인데, 그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결국, 일부 특정인에게 개발 이익을 안겨줄 수 있는지는 모르나 그로 인한 피해는 인근 주민과 뭇 생명체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그 정도의 예산이라면 차라리 동부양산(웅상)에 문화시설이나 기반시설 등에 투자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말 못 하는 나무에도 권리가 있다

개발에도 최소한의 철학이 필요하다. 주행 시간을 몇 분 단축한다고 우리 삶이 달라질까? 우리가 숨 쉬고 밟고 있는 대지는 온전히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살아온 말 못 하는 뭇 생명체의 것이기도 하며 다음 세대에 물려줄 공공재다.

2년 가까이 코로나로 삶 곳곳이 무너지고 일상성을 잃어가고 있다. 너무 쉽게 결정하는 개발, 잦은 남벌, 균형을 잃어버린 기후위기, 이제는 지구온난화가 아니라 '지구가열화'라고 한다. 결국,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이 인간과 접촉하는 가운데 새로운 바이러스를 옮겨 각종 전염병이 생겨나는 것을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이것이 어찌 동물들만의 탓이라 하겠는가?

사회적 거리두기도 해야 하지만 이제는 인간들이 자연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또한, 자본이나 개발 등 넘쳐나는 욕망과도 거리두기를 해야 기후위기 시계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가 있다.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어느 생각 깊은 나무가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 신영복의 <나무야 나무야>(1996) 중

양산의 허파 역할을 하는 천성산을 동서로 관통하는 지방도1028호선을 내기 위한 계획은 당장 멈춰야 한다. '나무와 산에도 권리'가 있다. 고장 난 자본주의와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개발주의가 나무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도끼의 자루까지 쇠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그 쇠붙이로 미래를 벌목해 기후위기를 앞당기고 있지는 않은지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양산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글쓴이는 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 전 공동의장이자 우리동네작은도서관장입니다.


태그:#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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