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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위험 한 가운데 놓인 농촌의 현실이 위태롭습니다. 마을교육공동체를 통해 농촌의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교육은 지역 재생 발전의 핵심 요인입니다. 지역의 교육이 살아야 지역의 삶은 희망을 꿈꿀 수 있습니다. 현장 '활동가'의 눈으로 그려낸 마을교육공동체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전남 영광군 묘량면 '깨움 마을학교'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농사경력 40~50년 이상의 베테랑 농부들이 어린이농부학교의 농사스승들이시다.
▲ 농벤져스와 함께 농사경력 40~50년 이상의 베테랑 농부들이 어린이농부학교의 농사스승들이시다.
ⓒ 깨움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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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의 계절이다. 농촌은 분주하다. '어린이농부학교' 아이들이 연중 농사를 짓고 있는 '희망농장'도 가을걷이를 서두른다. 

학교 앞 텃밭을 어린이농부학교의 농사체험교육장으로 조성하면서 올해 처음으로 벼농사에 도전했다. 마을 어르신들의 도움을 얻어 자그마한 논을 만들고 손모내기로 모를 심었다. 워낙 좌충우돌하면서 모를 심은 탓에 '잘 자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이양기로 반듯하게 열맞춰 심은 논들에 비하면 손모내기 한 아이들의 논은 듬성듬성 삐뚤삐뚤. 덕분에 학부모들이 '우렁각시'가 되어 빈틈을 메꾸고 모들을 정돈하는 보완작업을 했더랬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요령을 터득하고 나니 척척 베어나간다. 낫으로 벼를 베는 아이의 폼새가 그럴듯하다.
▲ 어느새 농꾼~!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요령을 터득하고 나니 척척 베어나간다. 낫으로 벼를 베는 아이의 폼새가 그럴듯하다.
ⓒ 깨움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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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고 뒹굴고 흙탕물을 뒤집어 쓰면서 손모내기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수확이라니... 가을에 온통 황금빛으로 변하는 농촌의 들판은, 평상시 같으면 별 감흥없이 지나쳤을 장면들이지만 '내 손으로 직접 심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쌀 한 톨이 머금고 있는 비와 바람과 햇빛과 농부의 마음을 헤아려 볼 줄 아는 귀한 눈이 생겼다. 

마을에서는 변덕스러운 날씨와 병충해 때문에 망쳐버린 논도 더러 눈에 띈다. 다행히 희망농장의 벼들은 꿋꿋하게 자라나 결실을 맺었다. 딱 봐도 '대풍'이다. 학교와 마을이 손을 잡고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만들어 낸 결과다. 모가 자라 알곡을 맺기까지의 과정은 '농사'라는 낯선 세계에 들어와 쉽지 않은 일을 끈기 있게 감내해 낸 아이들의 성장사이기도 하다.    
 
처음 잡아보는 낫이라 서툴고 어려워하는 아이에게 어르신이 하나하나 코치를 해주신다.
▲ 낫으로 벼베기, 차분하고 신중하게.  처음 잡아보는 낫이라 서툴고 어려워하는 아이에게 어르신이 하나하나 코치를 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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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벤져스'와 함께 유쾌한 '가을걷이'

"농사 잘 지었네. 애들이 했는데도 잘 자랐구만. 걱정했는데 풍년이네." 

희망농장 가을걷이를 이끌어 주기 위해 오신 마을 어르신들의 칭찬이다. 어린이농부학교 농사 스승으로 아이들과 함께 해 오신 어르신들은 농사경력 40~50년 이상의 베테랑 농부들이다. 하늘의 이치까지 헤아려야 하는 고도의 전문적 능력을 탑재한 농사 분야 고수들이시다. 이 '농벤져스'가 작년부터 어린이농부학교의 마을교사로 활동해왔다.  

콤바인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 방식으로 추수를 하려니 과정을 꼼꼼하게 계획해야 한다. 벼베기 시간은 오후인데 마을 농부들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아이들이 사용할 농기구들을 마을에서 공수해왔고 3단계로 이루어지는 추수 작업이 원활하도록 아이들의 동선을 설계했다. 아이들이 논으로 진입하는 게 원활하도록 가장자리 벼를 미리 베어놓는 것도 마을 농부들의 몫이다. 
 
콤바인이 없었던 옛날에는 이런 방식으로 탈곡을 했다. 보기에는 간단해보이는데 막상 해보니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어르신이 아이들에게 요령을 가르쳐주신다.
▲ 100% 수동으로 탈곡하기 콤바인이 없었던 옛날에는 이런 방식으로 탈곡을 했다. 보기에는 간단해보이는데 막상 해보니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어르신이 아이들에게 요령을 가르쳐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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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량중앙초등학교 4~6학년이 나락 수확에 나섰다. 작업은 세 영역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낫으로 벼를 베는 모둠, 베어놓은 벼를 탈곡하기 위해 나르는 모둠, 전통 농기구인 '홀테'로 탈곡하는 모둠으로 편성했다. 동선마다 마을 농부들과 학교 선생님들이 역할을 분담하여 함께 아이들을 지도한다. 

아이들에게는 모든 과정이 다 '처음'이다. 낫을 잡는 자세부터 배워야 하고 안전하게 쓰는 법을 익혀야 한다. 벼를 움켜잡는 위치, 두 다리의 간격, 낫의 각도, 힘의 세기, 적당한 속도를 알려면 설명만 들어서는 안된다. 직접 낫질을 해 봐야 안다. 마을 농부들이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고 하나하나 가르치며 함께 베어 본다. 처음에는 두려워하던 아이들도 이내 적응하고 몸 쓰는 감각이 있는 아이들은 금세 요령을 터득해 척척 베어 나간다. 
 
처음으로 '홀테'라는 것을 접했다. 발로 굴러서 탈곡을 하는 반기계식 농기구다.
▲ 이것은 뭐에 쓰는 물건인가? 처음으로 "홀테"라는 것을 접했다. 발로 굴러서 탈곡을 하는 반기계식 농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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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보는 '홀테'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다. 용어도 낯설고 생김새도 범상치 않은 이 기구로 탈곡을 했다고 한다. 홀테를 통과한 벼에서 낟알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아이들 눈에는 그저 신기하고 놀랍다. 이내 반복적인 홀테 작업이 꽤 힘든 노동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요즘은 기계로 하는 일을 옛날에는 이렇게 일일이 사람이 했다. 어르신들의 이야깃거리가 쏟아져 나온다. 추수철이 되면 부잣집만 가지고 있는 홀테를 빌려 쓰기 위해 줄을 서야만 했다는 이야기, 홀테로 훑어 땅에 떨어진 알곡을 한 알도 버리지 않고 줍기 위해 허리가 휠 정도로 땅만 봤던 이야기, 농업이 기계화가 되면서 편해지긴 했지만 옛날 방식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들.

시끌벅적한 작업 2시간 만에 추수가 끝났다. 수확량이 제법 나왔다. 학교 급식실에서 이 쌀로 밥을 지어 나눠 먹을 것이다. 직접 농사 지은 쌀로 만든 밥이니 꿀맛일테지. 떡을 만들어 가정과 마을에 돌리는 것도 계획했다. 11월 11일 '가래떡 데이'이자 '농민의 날'을 디데이로 잡았다. 
 
추수가 끝났다. 수확량이 제법이다. 가슴 뿌듯한 감동이 올라온다.
▲ 풍년이요~!! 추수가 끝났다. 수확량이 제법이다. 가슴 뿌듯한 감동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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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사람을 키우고

추수를 기점으로 연중 농사가 서서히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귀한 배움을 얻어 아이들은 또 한 뼘 깊어지고 성장했을 것이다. 배움은 학교의 울타리 너머로부터 왔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결단과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불멸의 고전 <열하일기>에서 "길은 '사이'에 있다"고 썼다. 독서에서도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하나의 팩트가 아니라 여러 개의 팩트가 다층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맥락을 파악해야 진실이 윤곽을 드러내는 법이다.
 
"길이란 알기 어려운 게 아닐세. 바로 저편 언덕에 있거든. 이 강은 바로 저들과 우리의 경계로서 언덕이 아니면 곧 물이지. 사람의 윤리와 만물의 법칙 또한 저 물가 언덕과 같다네. 그러므로 길이란 다른 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언덕과 물 그 '사이'에 있는 것이라네." (박지원, '열하일기' 중에서) 
 
시끌벅적한 가을걷이가 끝났다. 농사짓는 일년 동안 작물이 자라는 만큼 아이들도 성장했다.
▲ 추수를 끝내고 시끌벅적한 가을걷이가 끝났다. 농사짓는 일년 동안 작물이 자라는 만큼 아이들도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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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는 이것과 저것이라는 이분법을 벗어난 제 3의 경로다. 학교와 마을이 손을 잡는다는 것은 이 '제3의 경로'를 여는 것과 같다. 배움은 학교와 마을의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미지의 영역이다. '사이'라는 제 3의 경로를 열어젖히는 것은 어느 한쪽의 힘만으로는 안된다. 양자가 머리를 맞대고 힘을 보태야 가능하다. 

어린이농부학교라는 '사이'에서 교육적 맥락과 삶의 맥락이 융합할 수 있었다. 어른들은 길을 열었고 아이들이 창조해나갔다. 일 년 동안 농작물만 키운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교사들을, 마을 주민들을, 학부모들을 키웠다. 그래서 농사는 기적인 것이다.  

태그:#깨움마을학교, #마을학교, #묘량중앙초등학교, #어린이농부학교, #마을교육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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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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