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를 자처하는 다미앵은 친구인 시빌, 길거리의 어린 여성 등 성별을 불문하고 서슴없는 플러팅(Flirting)을 일삼는 남자이다. 싱글남인 그는 친구인 롤로의 집에서 롤로가 차리는 음식을 먹은 후 상을 치우는 것으로 공평한 노동 분배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장을 보는 데부터 음식 조리까지 최소 2시간이 걸리는 일련의 과정이 고작 1분이면 끝나는 상 치우기로 등가교환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다미앵은 가족 내 여성 노동의 대가는 노동과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선물이라는 크리스틴 델피의 주장과 일치한다. 다미앵과 그 친구는 여성의 노동을 온전한 노동으로 바라보지 않고 여성이라면 응당 행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남성이 여성의 시간을 전유하는 것이다.

정신이 팔린 채 다른 여성을 희롱하던 다미앵은 앞을 보지 않아 기둥에 부딪혀 정신을 잃게 된다. 이때 유의할 것은 표지판에 나타난 문구이다. Cimetière du Père Lachaise( 라셰즈 신부 공동묘지)가 Cimetière du Mère Lachaise(라셰즈 수녀 공동묘지)로 바뀐 것이다. 

Cimetière du Mère Lachaise(라셰즈 수녀 공동묘지)로 표지판이 바뀌며 등장한 거꾸로 가는 세상은 가부장제에 도취한 채 살아왔던 다미앵에게 혼란을 야기한다. 저녁 준비를 해야 해 시간이 부족하다고 불평하던 롤로와 시빌은 바이크를 타며 여가를 즐기러 간다. 이는 기존의 가부장 사회에서 가사노동에 시달리느라 '오롯한 본인의 삶'을 살지 못한 여성이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다.

세상이 바뀐 것인지 본인이 미친 것인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부모를 찾아간 다미앵은 힘쓰며 고기를 자르는 어머니를, 뜨개질을 하며 손님(이 손님 또한 남성이다)과 담소를 나누는 아버지를 목격한다. 길거리의, TV 속의 광고는 모두 남성이 몸을 성적 대상화하였고, 뉴스에서는 여성 의원이 남성 직원을 희롱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수동적 여성상을 표방하는 다미앵의 세계와 달리, 알렉상드라의 세상은 여성이 모든 것을 장악한다. 섹스에 있어서 본인이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표현한다. 오히려 알렉상드라의 세상에서 남성은 늘 수동적이고 이해심 넘치며 이타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쓰며 높은 지위에 올라가지 못하는 인물이다.

현실의 세계는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이원 체제가 이원화된 젠더 체제를 구성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거꾸로 된 세상에 떨어진 다미앵은 성관계 직전 본인의 가슴 털을 보고 '수북한 가슴 털이 원숭이 같아 섹스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듣고 본인을 치장하기 위해 전신 제모를 감행한다. 옆집에 사는 절친 크리스토프는 조신하게 뜨개질과 가사노동을 수행한다. 다시 말해, 기존에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한 '여성에게 잘 어울리는 일'은 여성 개인의 기호와는 상관없이 사회가 강제로 부여한 프레임에 불과하다.

두 세계 모두 여성이 아이를 낳지만, 출산의 감동과 눈물을 강요받는 여성은 다미앵의 세계에 존재하는데, 양육과 출산이 전적으로 여성의 것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여성에게 주어진 모성 본능을 이리저리 부수는 시도를 한다. 출산 직전까지 격렬한 운동을 하며 자기관리를 하는 롤로와 출산 장면을 보며 출산 당사자 롤로보다 더 크게 감동하여 눈물을 보이는 크리스토프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남편과 별거한 알렉상드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파트너에게 아이 양육을 맡긴 채 본인은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은 보통 남성의 이미지로 대표되지만, 거꾸로 된 세계에서는 알렉상드라의 것이다.

총 수상 인원이 44명인 시상식에 남성 수상자는 겨우 3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분개한 남성주의 모임원이 거리 퍼레이드를 진행할 때, 시상식 관계자는 무성의한 말투로 '나도 남편과 아들 셋이 있죠. 전 개도 수컷만 키워요. 그러니 여러분의 적이 아니에요'라며 남성 혐오자라는 오명을 벗고자 한다. 많은 남성들은 자신이 여성 혐오를 하지 않는다는 예로 부인과 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든다.

그러나 이는 여성 전체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아닌, 본인이 꾸린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젠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미러링으로 점철된 영화가 아니다. 기둥에 머리를 맞고 여성 중심 사회로 편입되어 비로소 젠더 역할을 탈피한 다미앵, 다미앵과 박치기를 하고 가부장제 사회에 떨어진 알렉상드라의 경우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역지사지'의 태도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리고 이 태도를 가질 때 젠더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자 하는 것이다.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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