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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이었다. "띠링띠링 띠링띠링~" 반복적인 음악이 내 귓가를 어지럽혔다. 새벽녘에야 잠들었는데... 어떻게든 잠을 청하려 애썼다. 그러나 결국 실패.

엄마가 또 유튜브를 보시나 보다. "엄마~" 불러도 대답이 없으셨다. "엄마, 엄마!"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결국 이불을 홱 젖히고 일어나 안방으로 갔다.

"엄마, 그거 소리 좀 안 나게 해줘."
"어? 미안 미안. 이것 땜에 깼구나."


엄마는 내 눈치를 보며, 보고 있던 유튜브를 멈췄다.

요즘 들어 엄마가 부쩍 잘 못 들으신다

되돌아보면 엄마가 TV볼륨을 배로 키운 것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였다.

'엄마도 이제 청력이 약해지는구나.'

두려웠지만, 아직 나와 대화할 때는 괜찮다고, TV는 나도 가끔 안 들리니까 이 정도 볼륨을 높이는 건 큰일이 아니라고 부정해왔다. 그렇게 자식인 나도 엄마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당신은 오죽했을까. 그 와중에 한 번에 못 알아듣는다고 자식들 눈치까지 보는 엄마의 모습이 서글프다.

엄마와 TV프로그램을 함께 보던 날이었다.

"지금 말하는 사람 A야?"

비슷한 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든, 전혀 다른 연예인 이름을 엄마가 말씀하셨다. 

"아니, B인데."

엄마는 슬며시 옆에 있던 돋보기안경을 끼고, 화면을 보셨다.

"아, B구나."

젊은 시절 2.0의 시력을 자랑하던 엄마의 이런 모습에 나는 다시 한번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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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는 인간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자연의 순리이다. 나도 마흔이 넘어가면서 노안이 오기 시작했다. 책이라도 보려고 하면, 초등학교 때부터 30여 년간 써오던 근시 안경을 이제는 자연스레 벗는다. 그럼에도 어떠한 특정 거리는 안경을 쓰든 벗든 잘 안 보인다.

처음 노안이 왔을 때는 서글퍼서 그 우울함이 상당기간 오래 갔다. '나는 이제 책 보기도 피곤하구나. 젊을 때처럼 나가서 활동적으로 생활하지는 못해도, 앉아서 책 보는 것조차 힘들어지다니. 이젠 뭘 하면서 살아야 하나.' 한순간에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귀 밝을 총'과 '눈 밝을 명'

총명(聰明)은 일반적으로 똑똑하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지만, 구성하는 한자를 하나씩 살펴보면 '잘 듣고 잘 본다'는 뜻이다. 엄마와 대화를 하다가 내 말을 한 번에 못 알아들으면, 나는 짜증이 나고 엄마는 움츠러든다.

"어? 뭐라고? 잘 못 들었어. 다시 한번 말해줘. "

한 번 더 내가 말할 때는 단지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뿐 아니라, 화를 내는 것처럼 말투가 바뀐다.

내가 아이였을 때 엄마는 똑같은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알려주셨을 것이다. 그런데 자식은 부모에게 그 말 한 번 더 하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인 양, 말이 곱게 나가질 않는다.

안 그래도 바뀌어가는 몸 상태에 가장 당황하고 씁쓸한 건 본인 자신일 텐데, 그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도 매일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저 잘 못 듣는 것을 마치 이해를 잘 못 하는 것처럼 다그칠 때도 있다.  두어 번 이야기해도 엄마가 못 들으시면, "못 들었어? 모르겠어?"라며 한숨을 쉰다. 

엄마가 내 주위의 그 누구보다 현명하고 존경스러운 사람임을 알면서도, 엄마에게 말이 안 통하는 한심한 사람인 듯 행동하는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라곤 한다. 이제는 엄마가 총명함을 잃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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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때때로 이런 오류를 범한다. 나이를 먹었다는,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판단력이 흐려질 거라는 생각. 심지어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아이를 대하듯 무시하기도 한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엄마에게도 때때로 이런 실수를 하는데, 길 가다가 모르는 노인을 만났을 땐 오죽하랴.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젊은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대할 거란 생각에까지 미칠 때면 정말 암담하다.

금방 못 알아듣는다고 해서, 눈이 침침해졌다고 해서, 행동이 느려진다고 해서 그들이 바보가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나이를 먹는다, 미래의 노인이 된다.

총명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보거나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하는 힘이 있음, 또는 그 힘."

나보다, 동생보다 엄마가 총명하다. 여전히 그녀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총명하고 현명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태그:#총명, #엄마,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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