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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한동안 자취를 감춘 토종고추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생산량은 적지만 맛과 색이 우수하다는 것이 이유다. 충북 괴산군은 토종고추 재배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지역이다. 괴산군 장연면에 위치한 안광진 농가는 10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토종고추 생산에 들어갔다.

지난 10월 8일 안광진씨가 운영하는 '옛날맛농장'을 방문했다. 안씨는 1만1570㎡(3500평) 중 절반은 일반 고추를, 나머지 절반은 토종고추를 기른다. 그의 농장에는 현재 수비초, 음성초, 고운빛, 이육사, 유월초 등 10여 종의 토종고추가 식재돼있다.

"교배종이 나오면서 우리 유전자원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해 토종고추를 재배하기 시작했어요. 품종은 다양하게 기르는데, 수량이 많지는 않습니다. 일반 고추에 비해 절반밖에 안돼요."   
 
안씨의 농장에는 현재 수비초, 음성초, 고운빛, 이육사, 유월초 등 10여 종의 토종고추가 식재돼있다.
 안씨의 농장에는 현재 수비초, 음성초, 고운빛, 이육사, 유월초 등 10여 종의 토종고추가 식재돼있다.
ⓒ 서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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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는 15년 전부터 토종 고추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수집에 나선 건 10여 년 전부터다. 씨앗은 기술센터나 농촌진흥청에 가서 얻어 오기도 하고, 토종고추를 직접 수확하는 농가한테서 부탁하기도 했다.

수집한 토종고추 씨앗은 자신의 밭에 심었다. 본격적인 생산은 10년 전부터 이루어졌다. 하지만 안씨가 토종고추를 생산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토종고추가 생산량은 많지 않으면서 병충해 피해는 크기 때문이다.

"토종고추가 국내 기후와 풍토에 알맞게 자라왔다는 건 사실이에요. 그런 점에서 개량종에 비해 우리 땅에서 더 잘 자랄 여건을 갖추고 있죠. 하지만 기후가 변하고 토양도 옛날 같지 않아 토종고추로 농사짓기는 어려워졌어요."
    
관행농법으로 고추를 기르면 수확량은 늘겠지만, 안씨는 꿋꿋이 유기농법만을 고수하며 소비자들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고추를 선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안 그래도 적은 수확량이 더 적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가 유기농 인증을 받은 지는 15년이 됐다.  
 
괴산군 장연면에서 토종고추를 생산하는 안광진씨의 모습
 괴산군 장연면에서 토종고추를 생산하는 안광진씨의 모습
ⓒ 서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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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비료나 농약에 의존하다 보면 앞으로 얼마 안 가 땅이 황폐해지고 농작물은 자라기 힘들 것입니다. 또한 건강 면에서도 좋지 않죠. 농약이 기준치 이내면 평생 먹어도 건강에 해가 없다고들 하지만,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만 수십 가지입니다. 수십 가지의 농약을 계속 먹는 상황이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죠."

처음에 안씨가 유기농 인증을 받으려고 할 때 농관원에서는 인증을 해주지 않으려고 했다. 약 안치고 고추 재배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씨는 계속 시도했다. 고추를 한 개도 수확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시행착오 끝에 그는 결국 유기농 인증을 받는 데 성공했다.  

"유기농은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해야 가능합니다. 웬만한 공을 들여서는 유기농으로 재배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게다가 토종고추의 경우 노력은 배가 됩니다. 건강한 먹거리를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신념과 사라져가는 유전자원을 살리려는 노력이 저를 여기까지 이끈 것 같아요."

"자연 그대로를 지키려 노력해요"

농사경력 40년, 유기농 재배만 15년을 자랑하는 안씨는 말한다. 농사는 사람이 짓는 게 아니라 자연이 짓는 것, 사람은 거들 뿐이라고.

작물에 영양제를 과다하게 투입하고, 화학비료나 농약에 의존하면 생산량은 조금 늘릴 수야 있지만, 토양의 지속가능성은 유지할 수 없다. 지속가능한 생산을 위해서는 생산을 위한 생산이 아닌 생태적 순환 관계를 염두에 둔 생산을 해야 하는 것.

"자연 그대로의 환경을 지키면서 농사를 지으려고 해요. 땅에서 나온 것은 모두 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토종고추를 한아름 따서 그의 손에 올려보았다.
 토종고추를 한아름 따서 그의 손에 올려보았다.
ⓒ 서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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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가 말하듯 '농사의 기본'은 결국 땅으로 귀결된다. 그렇다 보니 안씨는 자연스레 땅 관리에 각별히 신경쓰게 됐다. 땅심을 기르기 위해 그가 사용한 것은 녹비작물과 퇴비다. 모두 화학비료를 대체할 수 있는 천연비료다.

녹비작물은 청보리를 주로 사용하는데, 청보리는 고추 아주심기 시기에 파종해 무릎 높이로 자랐을 때 땅바닥에 그대로 눕혀주면 훌륭한 비료가 된다. 더욱이 청보리가 자라면서 고추와 양분쟁탈을 벌이는 과정을 통해 고추의 생육이 건전해진다.

퇴비는 미강, 산야초 등을 발효시켜 넣어준다. 특히 미강은 쌀을 도정하고 남은 껍질이다. 다른 작물에 비해 양분이 더 풍부해 미생물을 빨리 증식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발효시키는데 필요한 미생물은 기술센터에서 무상으로 보급받는다.

건강하고 안전한 토종고추

안광진 농가에서 생산된 토종고추는 작황이 그리 좋지 않다. 총 생산량이 100이라고 하면 이중 40은 소실될 각오를 해야 한다. 생산량이 많지도 않은 토종고추를, 그것도 관행농법이 아닌 유기농법을 고수하며 재배한 탓이다.

하지만 안씨는 이렇게 생산된 토종 유기농 고추를 나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한다. 일반 유기농 고추는 1근(600g)당 2만5000원이고, 안씨의 토종 유기농 고추는 3만원이다. 일반 고추에 비해 5000원 가량 비싸지만, 작황을 고려하면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다.

안씨는 소비자를 위해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했다고 말한다. 토종고추가 일반 고추에 비해 품질과 맛이 월등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안씨가 책정한 가격은 더욱 저렴하게 느껴진다.
 
관행농법으로 고추를 기르면 수확량은 늘겠지만, 안씨는 꿋꿋이 유기농법만을 고수하며 소비자들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고추를 선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안 그래도 적은 수확량이 더 적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관행농법으로 고추를 기르면 수확량은 늘겠지만, 안씨는 꿋꿋이 유기농법만을 고수하며 소비자들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고추를 선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안 그래도 적은 수확량이 더 적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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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고추는 일반고추에 비해 품질과 맛이 좋습니다. 토종고추를 조금만 넣어도 일반 고추와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일반 시중 고추 100g 가지고 음식을 만들 때와 토종고추 50g 가지고 음식을 만들 때를 비교해보면 둘이 비슷한 맛이 납니다. 이런 것까지 고려하면 토종고추는 굉장히 저렴하다고 할 수 있죠."

안씨는 현재 수비초, 음성초, 고운빛, 이육사, 유월초 등 10여 종의 토종고추를 생산하고 있다. 이중 유월초는 한번 맛본 소비자들이 해마다 찾을 정도로 고유의 맛과 향을 지니고 있다. 유월초는 매운맛이 청양고추처럼 강하지는 않지만, 부드럽고 입안을 감도는 매콤한 맛이 일품이다. 고춧가루로 만들었을 때는 고운 빛깔과 달콤한 맛이 나기 때문에 매년 소비자들은 유월초를 기다린다.

토종고추 보급·확산 위해 노력할 것

괴산군은 지난 9월 토종고추 현장평가회를 열었다. 괴산군 장연면 소재 옛날맛농장에서 열린 '토종고추 실증시험 현장평가회'는 이차영 괴산군수를 비롯한 군 관계자와 관내 고추농가 3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평가회에서는 실증 재배를 통해 좋은 고추로 선발된 토종고추 품종 5가지를 고추 재배 농가들에 선보이고 시중 품종과 비교평가를 받았다.
 
괴산군은 지난달 10일 토종고추 현장평가회를 열었다. 이날 평가회에서는 실증 재배를 통해 좋은 고추로 선발된 토종고추 품종 5가지를 고추 재배 농가들에 선보이고 시중 품종과 비교평가를 받았다.(자료제공: 괴산군 농업기술센터 감자고추팀 043-830-2702)
 괴산군은 지난달 10일 토종고추 현장평가회를 열었다. 이날 평가회에서는 실증 재배를 통해 좋은 고추로 선발된 토종고추 품종 5가지를 고추 재배 농가들에 선보이고 시중 품종과 비교평가를 받았다.(자료제공: 괴산군 농업기술센터 감자고추팀 043-830-2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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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군은 그동안 토종고추를 새로운 소득작목으로 육성하자는 취지로 지역에서 재배하고 있는 토종고추품종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토종고추들을 수집해왔다. 올해는 다섯 농가에서 토종고추 15종과 시중품종 5종을 재배하고 특성 조사를 통해 토종고추와 시중 품종의 차이점을 비교했다. 군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2023년에 유기농 토종고추묘를 키워 관내 농가에 보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안씨는 괴산군 유기 고추 연구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토종 고추 보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회원수는 30명 정도인데, 안씨는 작년에 회원들에게 토종고추 접목묘를 분양했다. 회원들의 반응은 좋았다. 분양받은 회원들이 토종고추를 판매하기 시작한 이후 소비자들이 토종고추만을 찾았기 때문이다.

안씨는 앞으로도 토종고추 재배 면적을 늘려 소비자들에게 우리 토종고추의 맛을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월간원예> 11월호에도 비슷한 글이 실렸습니다.


태그:#토종고추, #유기토종고추, #유기농고추, #괴산고추, #유월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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