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PC 버전 메인 화면을 접속하면, 헤드라인 뉴스가 하나씩 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모두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에서 제공한 뉴스였다.

그러나 지난 18일 오후 4시가 지나자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두 곳의 포털 사이트에서 <연합뉴스>의 흔적을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PC는 물론이고 모바일에서도 자취를 감췄다. 포털뉴스제휴평가위원회(아래 제평위)가 기사형 광고 양산으로 질타를 받은 <연합뉴스>에 대해 '콘텐츠 제휴 중단'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연합뉴스>는 여전히 해당 결정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21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에서는 <연합뉴스>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전직 직원이 출연해 회사 내부에서 기사형 광고가 제작된 과정에 대해 털어놓았다.
 
 21일에 방영된 MBC <스트레이트 - '복붙' 기사 전성시대>

21일에 방영된 MBC <스트레이트 - '복붙' 기사 전성시대> ⓒ MBC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의 현주소

<스트레이트>에 제보한 전직 <연합뉴스> 직원 박아무개씨는 홍보사업팀 소속이었지만, 회사로부터 지시 받은 일은 기사 작성이었다. 회사로부터 기사형 광고 작업자로 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직접 취재를 해서 쓰는 게 아닌, 기업 또는 홍보대행사를 통해 받은 보도자료를 기사형 문체로 바꾸는 게 주된 업무였다.

그러면서 기사의 형태를 갖춘 광고는 협찬과 같은 어떠한 표시도 없이 포털사이트에 올라갔다. <연합뉴스> 기사 송고 시스템 화면에서 기사의 중요도 가운데 일반기사에 해당하는 별 두 개짜리 항목을 선택해 송고했고, 이 일을 담당한 것은 기자들이 아니라 정보사업국 소속 홍보사업팀의 계약직 직원들이었다.

이날 방송에서 <스트레이트>가 공개한 <연합뉴스>의 '종합홍보대행 서비스 안내' 문건에는 구체적인 금액까지 명시돼 있었다. 또한 다른 문건들에서도 <연합뉴스>가 기사형 광고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모습들이 드러나고, 기사형 광고로 의심되는 기사가 매해 작성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지난 7월 7일, 온라인 매체 <미디어오늘>이 <연합뉴스>가 기업 및 홍보대행사로부터 돈을 받고 1년간 2000여 건의 기사형 광고를 작성했다고 보도하면서 대중에게 <연합뉴스>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미디어오늘>의 보도가 나가자 이튿날 <연합뉴스>는 기사형 광고를 모두 내렸지만, 비판과 징계를 피해갈 수 없었다.

박씨는 "문제가 됐던, 계약직 사원의 이름으로 나간 기사형 광고 2천여 건 전부 바로 삭제됐다. '취재 요청이나 문의가 오면 일절 대응하지 말고 대답하지도 말라'는 공지를 수차례 받았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또한 그전까지 홍보사업팀 직원의 이름으로 기사형 광고가 나가던 것을 부장들 이름으로 기사형 광고의 작성자 이름을 변경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상 권한 변경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21일에 방영된 MBC <스트레이트 - '복붙' 기사 전성시대>

21일에 방영된 MBC <스트레이트 - '복붙' 기사 전성시대> ⓒ MBC

 
기사형 광고, 복붙 기사... <연합뉴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제평위의 징계를 받으면서 <연합뉴스>가 기사형 광고를 작성했던 사실이 크게 부각되기는 했지만, 현재 한국 언론의 상황이 단지 <연합뉴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사형 광고' 알선 업체를 통해 연락해서 금액을 비롯한 조건만 주고 받으면, '입맛대로' 만들어진 기사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날 방송에서는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의 심의 내역을 분석한 결과를 소개했는데, 2019년을 기준으로 한 해 동안 기사형 광고는 무려 5517건에 이르렀다. <조선일보> <한국경제> <매일경제> 등 모두가 알 만한 매체들이 상위권에 오른 모습이 눈에 띈다.

기사형 광고에서 드러난 '복붙(복사 후 붙여넣기) 기사' 문제는 다른 기사에서도 발견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어느 매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위험한지 느끼지 못하는 기자들과 매체들이 많았다.

실제로 돈을 받지도 않은 '고깃집 불판 교체 금액'이 기사화되는가 하면, 대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올라오는 게시물은 '단골 소재'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보니 정확하게 사실인지 아닌지 파악하지도 않은 기사가 삽시간에 퍼지면서 학생, 교수, 더 넓게는 학교 전체가 피해를 입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밖에도 네이트판과 같은 커뮤니티,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의 영상이 기사로 제작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스트레이트>에 출연한 <뉴스타파> 홍주환 기자 역시 과거 경제지 온라인팀 인턴 기자로 일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적극적인 발제 대신 커뮤니티를 돌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자극적이어야 살아남는 환경... 개선이 필요한 한국 언론

기사형 광고, 복붙 기사에 대한 문제점 인식이 중요함을 강조한 <스트레이트>는 방송 후반부에 두 가지 문제점을 개선할 방법이 무엇일지에 대해 언급했다.

우선 뒷광고 방지 차원에서 광고라는 것을 밝히는, 이른바 '기사형 네이티브 광고'를 양성화하자는 주장을 언급하면서 <뉴욕타임스>의 네이티브 광고 조직인 '티 브랜드'를 소개했다. 협찬 기사라는 것을 밝히고 광고주가 원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게 브랜드의 주된 운영 목적이다.

이와 더불어 구독료를 내고 양질의 정보만 선별해서 받는 '큐레이션 서비스'와 '구독형 콘텐츠'를 또 하나의 대안으로 꼽기도 했다. 

이러한 방법들이 무책임한 언론의 행태를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하지만, 재정을 비롯해 현실적인 문제와 부딪힌 한국 언론이 확실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몇몇 매체가 변화하는 것만으로는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기성 매체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 언론에서 큰 기대를 걸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페이지 뷰(PV)가 수익으로 직결되는 환경을 언론사만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상태로 방치해두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적어도 언론사 혹은 기자에 맞는 '윤리적인' 기사 작성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국 언론의 모든 구성원의 노력이 요구된다.

반성 없이는 머지않아 또 제 2의 <연합뉴스> 사태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단지 한두 곳의 징계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메이저' 언론사까지 좀 더 나은 미디어 환경을 위해 깊게 고민해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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