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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 시즌은 한국에서보다 훨씬 일찍 시작한다.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 다음날을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부르며, 대대적인 크리스마스 세일에 들어가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영국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캐나다에서는 '대림절(Advent)'을 준비하는 촛불을 4주 전부터 밝히기 시작한다. 

대림절 한 주 전 일요일을 '스떨업선데이(Stir-up Sunday)'라고 해서 가족들과 함께 플럼 푸딩을 만드는 것을 기점으로 공식 크리스마스 시즌을 시작한다. 올해는 그게 바로 11월 21일이었다. 
 
플럼 푸딩(plum pudding) 또는 피기 푸딩(figgy pudding) 이라고 불리는 크리스마스 푸딩
 플럼 푸딩(plum pudding) 또는 피기 푸딩(figgy pudding) 이라고 불리는 크리스마스 푸딩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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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럼 푸딩이라고?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면, 혹시, 다른 이름인 '피기 푸딩(figgy pudding)'은 들어봤을 수도 있다. 유명한 크리스마스 캐럴 '위 위시 유어 크리스마스(We wish you a Merry Christmas)'에 "Oh, bring us some figgy pudding..."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가사를 유심히 들어본 적이 있다면, "대체 저 피기 푸딩은 뭐지?"라는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14세기 당시에 크리스마스에 먹던 피기 푸딩은 무화과(fig)를 넣어서 끓인, 좀 더 죽 같은 질감의 푸딩이었고, 이것이 그 이름을 간직한 채 지금은 무화과 대신 건포도를 넣어서 만드는 스팀 케이크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이렇게 찐 케이크를 푸딩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뜬금없는 플럼(plum, 자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빅토리아 시기 이전에는 각종 건포도 종류를 플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름도 특이한 이 푸딩의 또 다른 점은, 한 달 후에 먹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케이크라면, 만들고 이삼일 이내에는 먹어야 하는 음식이 아닌가! 그런데 이 플럼 푸딩은 굽는 것이 아닌 찌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한 달간 숙성시켜 먹는 아주 특별한 케이크이다. 상하지 않을까? 놀랍게도 그렇지 않고, 그 대신 풍미가 깊어진다.

우리 집에서는 사실 이 플럼 푸딩 대신에, 남편이 어릴 때부터 해 먹던 다른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전통이 따로 있는데, 그것은 며칠 후로 미뤄두고, 올해는 이 플럼 푸딩부터 꼭 해 보기로 했다. 작년에도 만들고 싶었는데, 우물쭈물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는 재료를 몇 가지 못 구하면서 포기했지만, 올해는 기필코 해 보고 싶었다.

대림절 일주일 전 일요일에 만드는 크리스마스 푸딩

들어가는 재료 중 중요한 것은 플럼, 즉 여러 가지 건과일이다. 3가지 종류의 건포도와 오렌지 레몬 껍질 절임도 들어간다. 하루 전날인 토요일 밤에 이것들을 미리 브랜디에 담가 두어, 풍미가 배어 나오도록 한다. 
 
다양한 건포도: 왼쪽부터, 톰슨, 설타나, 커런트
 다양한 건포도: 왼쪽부터, 톰슨, 설타나, 커런트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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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날인 일요일에 만들기 시작이다. 집에서 직접 간 신선한 빵가루에 밀가루, 베이킹파우더를 넣고, 각종 향신료를 넣는다. 계피, 생강, 올스파이스, 넛맥, 클로브, 코리앤더, 메이스가 들어간다. 그리고, 사과도 갈아 넣고, 오렌지랑 레몬의 껍질도 다져서 넣고, 흑설탕도 넣고, 달걀도 넣고...

특이한 것이 하나 더 들어가는데 그게 바로 '쑤엣(suet)'이다. 소 콩팥을 둘러싸고 있는 지방을 모은 것인데, 영국의 베이킹에 사용되는 고급 기름이다. 단단하게 굳어 있어서, 파이를 만들 때에도 사용된다고 한다. 작년에는 못 구했는데, 올해는 우연히 한 마트에서 발견해서 냉큼 집어다가 냉동해 뒀었다.
 
소의 콩팥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지방. 영국식 베이킹에 사용된다
 소의 콩팥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지방. 영국식 베이킹에 사용된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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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구하지 못하면 버터로 대신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끓는 점이 낮아서 원하는 모양이 잡히기도 전에 녹아버려 좋지 않다고 한다. 플럼 푸딩을 익히는 틀은 미리 넉넉히 버터칠을 해주고, 그 위에 덮어줄 유산지도 그릇 크기에 맞춰서 잘라주고, 역시 버터를 발라준다.
 
푸딩을 만들기 위한 틀에 버터를 넉넉히 발라서 준비해 준다.
 푸딩을 만들기 위한 틀에 버터를 넉넉히 발라서 준비해 준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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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그릇이 들어갈 만한 넉넉한 냄비에 물을 넣고, 밑에는 찜기나 받침을 넣어서 케이크 틀이 직접 냄비 바닥에 닿지 않게 준비해준다. 물은 팔팔 끓이지 말고, 뭉근하게 끓으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준이면 충분하고, 물 높이는 케이크 틀을 넣었을 때 반 정도 잠기면 된다. 
 
냄비의 바닥에 뭔가 받침대를 넣어, 푸딩 틀이 직접 바닥에 닿지 않도록 한다.
 냄비의 바닥에 뭔가 받침대를 넣어, 푸딩 틀이 직접 바닥에 닿지 않도록 한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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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반죽은 상당히 꾸덕하다. 이걸 버터 바른 틀에 꾹꾹 눌러서 담는다. 위쪽은 버터 바른 유산지로 덮어준다. 그리고 유산지를 다시 두 장 넉넉한 크기로 잘라서 그릇을 감싸고 덮어준 후, 끈으로 고정해준다. 이때, 냄비에 안전하게 넣을 손잡이까지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플럼푸딩 반죽을 틀에 눌러 담고, 유산지로 덮은 후 찜기로 찐다.
 플럼푸딩 반죽을 틀에 눌러 담고, 유산지로 덮은 후 찜기로 찐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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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오른 솥으로 투하! 이제 이대로 6시간 정도 찐다. 2시간이 넘어서니 좋은 냄새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향신료가 주는 행복한 베이킹의 냄새는 그렇게 밤까지 진동을 하였다. 이제 꺼내서 겉의 종이를 벗겨내고 5분 정도 식기를 기다려준다. 살짝 식으면서, 부풀어 올랐던 것이 진정 되면 접시에 엎어놓는다.
 
완성된 플럼푸딩은 종이를 떼어내고 한 김 식힌 후, 접시에 엎어낸다
 완성된 플럼푸딩은 종이를 떼어내고 한 김 식힌 후, 접시에 엎어낸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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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이대로 식혀서, 브랜디를 바르고, 유산지로 단단히 감싼 후, 다시 쿠킹포일로 감싸서,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서 한 달을 숙성시켜야 하지만, 이왕 만든 것, 기분 내고 사진을 찍을 요량으로, 마당에 나가 호랑가시나무 가지를 잘라다가 장식을 해 봤다.
 
크리스마스 음식은 플럼푸딩은 이렇게 호랑가시나무잎으로 장식한다.
 크리스마스 음식은 플럼푸딩은 이렇게 호랑가시나무잎으로 장식한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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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삼아 두 개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 중 모양이 덜 예쁜 것으로 조금 먹어보기로 했다. 자르는 질감은 살짝 쫀득한 것이 설기떡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기분을 내려고 브랜디에 불을 붙여 부어보았다.
 
브랜디에 불을 붙여 푸딩에 부어주는 퍼포먼스는 원래 케익 전체에 하는 것이 정석이다.
 브랜디에 불을 붙여 푸딩에 부어주는 퍼포먼스는 원래 케익 전체에 하는 것이 정석이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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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약간 쫀득 하면서, 촉촉하였다. 부드럽고, 모든 풍미가 하나로 어우러져서, 어느 재료도 겉돌지 않는 그런 맛이었다. 난 원래 설탕 들어간 음식은 먹지 않지만, 이것은 내 마음대로 재료를 바꾸지 않았기에 내 입에는 많이 달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단 정도는 아니었다. 크리스마스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즐겁게 먹을 만한 풍요로운 맛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차곡차곡 싸서 어두운 지하실로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플럼푸딩 단면
 플럼푸딩 단면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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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 같은 내용이 상세 레시피와 함께 실립니다 (https://brunch.co.kr/@lachouette/)


태그:#크리스마스, #플럼푸딩, #피기푸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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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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