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 164명에게 물었더니...
한국과 아이슬란드의 결정적 차이

20대 여성 164명에 허들을 물었다
"임금차별... 진저리나는 이 사회"

"어떤 허들이 있냐고요? 2박 3일을 말해도 끝이 없을 겁니다. 걸리는 것은 하나지요. 이걸 누가 듣냐는 겁니다... (중략) 20대 여성 투표권은 세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구미가 당기는 사람들이 아닌 걸까요? 필요 없는 건가요? 신경 안 써도 세상이 굴러가는 걸까요? 안 들으면 들을 때까지 소리치고 싶습니다... (중략) 암담합니다. 우리에게 미래가 있나요? 허들만 있는 것 같아요. "
(hy********@님)

분노가 담겨 있습니다.

아이슬란드로 떠나기 전 20대 여성들에게 '당신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있어 어떤 허들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164명(구글독스 144명, 대면취재 20명)이 답했습니다. 허들을 한 가지만 꼽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20가지나 나열하면서 "사실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한국 여성에겐 허들"이라고 답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은 허들을 다 세어보니 357개, 그것은 여성의 일생을 속박하는 굴레이기도 했습니다.

2019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열렸던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던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제 3회 3시 STOP 조기퇴근시위' 당시 모습.

20대 여성의 일생 - 과거와 현재의 허들

어려서부터 차별과 마주합니다.

"같은 자녀이지만 제 오빠에 비해 저는 대학을 빨리 졸업해 취업해야 하는 존재, 오빠는 앞으로 공부를 더 할 사람으로 낙인 찍혀 있습니다. 이러한 가족 내에서의 허들을 혼자 뛰어넘더라도 나를 기다리는 허들은 또 있습니다. 취업 후 내 꿈을 펼칠 상상에 부푸는 것이 아니라 '과연 나는 어디까지만 올라갈 수 있을까'를 걱정합니다. 아기를 좋아하지만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아기를 낳고 싶지 않습니다. 가족을 구성하고 싶지만 그 가족이 나를 옥죄일까 두렵습니다."
(무기명 엽서 응답자 등 8명이 꼽은 허들, 가족)

자라면서 마주하는 차별은 더 많아지고, 그로 인한 억압은 더 강해집니다. "여자는 문과, 남자는 이과라는 말을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들었다"고 합니다. "여성적인 일이 따로 있다고 여긴다"고 합니다. 아직 20대, 그런데 벌써부터 여성으로서의 한계가 뚜렷해지는 듯 합니다.

"교수님이 불합리한 발언을 할 때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예를 들면 '여성은 공무원 해서 시집 잘 가는 게 최고다'와 같은 발언."
(mi********@님 등 22명의 허들, 진로 선택에 대한 억압)

편견입니다. 명명백백한 편견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곧 억압입니다. 취업을 앞에 둔 여성들이 자주 마주치는 '용모단정'이란 조건 또한 그렇습니다.

"숏컷을 앞으로도 유지할 생각이었습니다. 면접을 볼 때 헤어스타일을 어떻게 해야할지, 세상과 타협하여 머리를 기른 후 봐야 할지, 정장은 치마 정장을 입어야 하는지 바지 정장을 입어야 하는지, 화장도 해야 하는지가 가장 큰 고민입니다.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게 어떨 땐 비참하기도 합니다."
(ye*******@님 등 34명의 허들, 외모와 꾸밈노동)

20대 여성들에게 '당신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있어 어떤 허들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한국 여성에겐 허들"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억압과 마주친다.
가족, 외모, 진로, 성격 등등
"이게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
그 말들이 여성에겐 허들이 된다.

성장을 하면서 사회적 차별과 마주친다.

여자라서  뽑지 않고, 
여자니까  제외되고, 
여자라고  적게 준다. 

결혼과 육아가  미래에 대한 단절과
위협 
으로 다가온다.

여성혐오는 여성들 앞에 나타난 새로운 허들이다.

20대 여성이 바라본 일생 - 현재와 미래의 허들

'여자라는 이유로', 취업 전선에서 마주치는 차별은 더 견고합니다.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것은 단순히 생활비용을 마련하는 의미뿐만 아니라 삶의 가치와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큰 의미를 가진다(a8*******@님)"는 공간에서 오히려 절망을 느낍니다. 20대 여성들이 가장 많이 뽑은 허들은 일터에 있었습니다.

채용 차별. 여자니까 뽑히기 힘듭니다.

"저는 공기업을 다니는 20대 여성입니다. 이 기업에 처음 입사할 때 1:3 면접을 했었는데, 그때 마지막 질문이 '살면서 여성이라 차별을 당해 본 적 있습니까?', '회사에서 여성 차별을 당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였습니다. 취업이 간절했던 저는 웃는 얼굴로 모든 질문을 받아쳤지만, 확연한 성차별 앞에서도 권력에 의해 웃어야만 하는 인형이 되었고 면접 후에도 한동안 무기력함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저는 이 기업에 최종합격을 했고, 현재 재직중입니다. 만약 그때 '당연히 신고를 해야죠. 그리고 지금 질문도 채용성차별이기 때문에 신고할 겁니다'란 말을 솔직하게 했더라면, 법규대로 채용 성차별로 신고를 했다면 당연히 저는 입사하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채용시 성차별이 여전히 이 땅에 존재함을 고발합니다. 이 나라 여성들은 미래로 나아가는데 '채용 성차별'이라는 큰 걸림돌을 겪는다는 걸 증언합니다."
(si********@님 등 75명의 허들, 채용 차별)

능력 차별. 여자니까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전문성을 인정받기 어려워요. 자꾸만 어린 학생 취급을 당합니다. 어린 여대생 취급이 지겨워 안경도 쓰고 머리도 숏컷으로 잘랐지만 전혀 효과가 없네요. 친절하게 대하면 어리고 약한 학생이 됩니다. 옷도 마치 아나운서처럼 '백화점 옷'을 입지 않는 이상 또 학생이 되곤 합니다. ㅎㅎ 한참 전문성을 설명한 후에야 '생각보다 수준이 맞네?'와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사회 생활 5년차인데, 아직도 저의 전문성을 설명해야 할 때 현타가 와요!"
(ye******@님 등 46명의 허들, 능력 차별)

업종 차별. 여자라고 홀대합니다.

"한국의 간호사들은 전문성과 업무강도에 비해 급여수준이 낮으며,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간호사들이 밥을 먹지도 화장실에 가지도 못하면서 일하는데도,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수십 년째 말하는데도 바뀌지 않는 이유는 간호사가 여초 직업이기 때문일 겁니다."
(wj**********@님 등 8명의 허들, 업종 차별)

결혼, 임신, 육아까지 차별의 이유가 됩니다. "여전히 회사에서는 나를 결혼하면 그만둘 지도 모르는 인재로 봅니다", "임신을 하면 눈치를 줍니다",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같은 분야 선배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롤모델을 찾기 어렵습니다. "직군 특성상 여성이 훨씬 많이 종사함에도 불구하고 높은 직급은 거의 남성입니다".

"일하면서 워킹맘 상사, 동료분들을 많이 만난 편입니다. 자연스럽게 그분들 라이프 스타일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그분들처럼 철인으로, 죄인으로 살 수 없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헐레벌떡 보육원, 유치원, 학교 보내놓고 빠듯하게 출근하고, 일 마친 후 또 정신 없이 자녀를 픽업하고 밀린 집안 일 하러 '2번째 출근'하는 삶. 여가 시간은 모두 가정에 할애하여 자기계발을 통한 커리어 및 연봉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삶. 근무 중에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으면 여기저기 사과를 하거나 대신 봐줄 사람을 찾는 삶. 친정 어머니 혹은 시어머니 노후를 손주 돌보기 위해 갈아넣어야 하는 삶. 왜 자녀를 갖는 게 죄가 되었을까요? 저출산 원인이요? 아이 낳는 걸 죄로 만들었잖아요."
(ux****@님 등 39명의 허들, 결혼·출산·육아)

한국은 OECD국가중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입니다. 2020년에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차이는  31.5% 입니다.

세계경제포럼의 동일노동 임금비율로 본 임금형평성은  아이슬란드 0.86인데 비해,  한국은 0.57 에 불과합니다.

추정소득비율 역시  아이슬란드 0.74,
 한국 0.49 입니다.

우리나라와 아이슬란드의 결정적 차이

채용 차별이 많을수록 성별 임금 격차는 벌어집니다. 성별에 차별을 두고 남성을 뽑는 기업이 많을수록 남성이 채용될 확률은 높아지고, 그에 따라 남녀간 전체 임금 격차가 커지는 건 당연합니다. 능력 차별은 '유리천장'을 만듭니다. 그로 인해 임금 격차는 또 벌어집니다. 업종 차별 또한 임금 차별입니다. 여성 비율이 높은 직종일수록 임금이 낮아진다는 상관관계(2019년, 한국노동연구원, 성별 직종분리와 임금격차)는 이미 입증됐습니다. 여기에 출산, 육아로 경력단절이 발생하면, 성별 임금 격차는 또 벌어집니다. 어떤 분은 단 한 줄로 자신의 문제의식을 요약했습니다.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이 사회에 진절머리가 난다."
(yu************@)

사실일까요? 그동안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려고 우리 사회는 얼마나 노력했을까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성격차지수를 모두 살펴봤습니다(아래 표 참조, 성평등 최상위 숫자는 1). 국가적 노력의 상대 비교를 위해 선택한 나라는 아이슬란드였습니다. 2009년부터 성격차가 가장 적은 나라로 12년 연속 1위로 선정됐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성격차 개선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라는 WEF 평가에 주목했습니다. 두 나라의 15년 동안 성격차지수를 비교한다면 우리나라의 임금 형평성 개선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WEF 성격차지수 14개 항목 중에, 성별 임금 격차 개선을 위한 국가적 노력과 직결된 '동일 노동의 임금 형평성(Wage Equality for Similar Work)'을 주목했습니다.

2006년 우리나라의 임금 형평성 지수는 0.490이었습니다. 2021년은 0.574입니다. 15년 동안 0.084만큼 개선이 됐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아이슬란드의 2006년 임금 형평성 지수는 0.660으로 2021년 우리나라의 그것보다 이미 훨씬 높았습니다. 그런데도 아이슬란드의 2021년 지수는 0.860으로 같은 기간 아이슬란드의 개선 수치는 +0.200에 이릅니다. 그로 인해 두 나라의 임금 형평성 지수 격차는 2006년보다 더 벌어진 상태입니다. (2006년 ±0.170, 2021년 ±0.286)

성별 임금 형평성을 줄이려는 국가적 노력의 지속성은 년도별 지수 등락을 살펴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아이슬란드의 경우는 2011년 이후 단 한 번도 지수가 하락한 적이 없습니다.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려고 국가가 계속 노력을 했다면 완만하게라도 상승 곡선을 그려야 합니다만, 우리나라는 등락을 반복합니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였던 2007년 0.820이었던 임금 형평성 지수는 다음 해 0.530으로 뚝 떨어집니다. 이명박 정부가 끝나는 2012년은 0.540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기간에는 오히려 0.510으로 임금 형평성이 더 낮아집니다. 이른바 '보수 정권' 10년 동안 임금 형평성이 오히려 더 악화된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 성별 임금 형평성이 앞선 정부들에 비해 매년 꾸준하게 개선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임금 형평성은 세계 평균(0.628)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여성의 남성 대비 추정근로소득비율(Estimated Earned Income)은 2006년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습니다. 과거에 비해 여성의 노동참여율(Labour force Participation rate)은 높아졌지만, 성별 임금 격차가 크게 줄지 않았으니 결과적으로 남성에 비해 여성은 여전히 근로소득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0.492)입니다. 아이슬란드의 추정근로소득비율은 0.737입니다.

평등한 사회

20대 여성 응답자 164명 중 124명(75.6%)이 자신의 인생을 방해하는 허들로 꼽은 것 또한 임금 격차 문제였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지적한 겁니다.

임금 격차는 차별로 이어지고 억압을 야기합니다. 가족 안에서의 차별은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능력을 동등하게 평가한다면, '용모단정'이나 '살가움'을 요구하는 따위의 억압도 없을 겁니다. 따라서 현재 한국의 20대 여성들이 과거보다 성차별을 겪지 않는다는 등의 말은 거짓에 가깝습니다. ki******@님 말씀대로 "아직까지 20대, 30대 초반 여성들이 넘어야 할 허들은 너무나도 높다”는 말이 진실에 가깝습니다. 혐오 또한 억압입니다.

"요즘엔 페미니즘이란 말만 나와도 욕을 먹는 사회라서, 제 생각까지 억압받는 것 같아서 두려워요... (중략) 채용할 때 혹여 사상검증을 한다며 페미니즘을 물어볼까봐 두렵고,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소신 있게 밝힌다면 채용되지 못할까 두려워요. 대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 같아요. 제가 누르는 '좋아요'나 '스토리'가 사상 검증이 돼서 저를 공격할까봐 두려워요."
(se****@님 등 21명의 허들, 여성혐오)

우리는 현지 취재 과정에서 아이슬란드에는 혐오란 단어 자체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만큼 평등한 사회라는 뜻일 겁니다. 그 역사는 깊습니다. 아이슬란드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은 것이 1915년입니다.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세계 최초로 '데이 오프(Women's Day Off, 모든 여성의 휴일 투쟁)'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2018년, 아이슬란드는 역시 세계에서 처음으로 '임금차별금지법'을 제정했습니다.

오마이뉴스 X 시사인 X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20대 여성들에게 ‘당신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있어 어떤 허들이 있습니까?’란 질문을 던졌다. 164명(구글독스 144명, 대면취재 20명)의 응답을 토대로 ‘여성들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꼽히는 아이슬란드 현지에서 취재를 진행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요. 보다 평등한 사회를 향한 전진, 그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궁금했습니다. 2021년 10월 24일, '데이 오프' 투쟁이 있었던 바로 그 날 그 광장에서 우리는 아이슬란드 여성들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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