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28 06:01최종 업데이트 21.12.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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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유튜브 경제 채널 <삼프로TV>에 출연해서 경제를 주제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집값 상승으로 인한 민심 이반이 심각한 상황이라 그런지 인터뷰 내용의 절반 이상이 부동산 및 주택 문제에 집중되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내집 마련 문제 해결을 위해 "기본주택"을 주장하는데, 인터뷰에서는 기본주택을 설명하기 위해 싱가포르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 출연해 인터뷰 하고 있는 이재명 대선 후보 ⓒ 삼프로TV 화면 갈무리

 
"그래서 제가 기본주택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이 기본주택의 개념은 어려울 수 있는데, 싱가포르 생각하면 돼요. 싱가포르식 주택공급을 유도해야 된다. 싱가포르는 땅은 다 국가가 가지고 있고, 건축물만 분양을 하죠. 땅의 임대기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집값이 폭등할 수 없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8월에 이미 임기 중 공급할 250만호 중 100만호를 기본주택으로 제공하겠다고 밝혔고, 기본주택의 수준 역시 역세권 등 좋은 입지에 중산층도 살 수 있는 고품질로 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콕 집어 언급한 싱가포르의 공공주택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실현 가능한 사례인지 싱가포르 공공주택에서 살고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싱가포르의 공공주택 HDB

먼저 싱가포르의 주거 형태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2020년 싱가포르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단독주택 5%, 민간이 공급하는 고급 아파트 16%, 공공주택(이하 HDB) 79%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HDB는 "Housing and Development Board (주택개발기구)"의 약자로 우리나라로 치면 "주택공사" 정도입니다. 주택개발기구가 지은 공공아파트를 HDB라고 부릅니다.

HDB는 이재명 후보가 말한 대로 "땅은 다 국가가 가지고 있고, 건축물만 분양"을 합니다. ("다"는 아니고 국토의 80%가 국유지입니다.) 이걸 토지임대부 주택이라고 하는데, 정부 소유의 땅에 지은 아파트를 99년(999년도 일부 있습니다)에 걸쳐 장기 임대하는 형식입니다. 임대의 형식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집을 분양 받은 것이기 때문에 의무거주기간 5년이 지나면 시장에서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도 달라집니다.

아래 첨부한 HDB 재판매 가격 추이표를 보면 시기별로 크게 오르내리는 경우도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매입 후 3년 안에 재판매를 하면 양도세를 부과하고, 최소한 5년은 거주해야 시장에서 판매가 가능하며, 두번째 주택 구매부터는 주택 실거래 가격의 최소 17%에서 최대 35%에 이르는 추가세금을 매기는 등의 강력한 투기억제 정책을 통해 최대한 그 폭을 억제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HDB는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거래가 가능합니다. ⓒ HDB 홈페이지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나라로 늘 꼽히는 싱가포르지만 내 집 마련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21세 이상의 시민권자에 자기 소유의 집이 없고, 수입이 정부가 정한 소득 상한선 이하면 첫번째 HDB를 구매할 때 정부로부터 여러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양가는 시세에 비해 30% 가까이 저렴합니다. 대신 평생 두 번까지만 분양 받을 수 있습니다. 분양가도 저렴한데 거기에 EHG(Enhanced CPF Housing Grant)라는 이름으로 월 평균 소득에 따라 5천 달러(425만 원)에서 최대 8만 달러(6800만 원)까지 지원을 해 줍니다. 소득이 적을수록 많은 지원금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분양을 받는 게 아니라 이미 지어 놓은 HDB를 살 때는 EHG에 더해서 FG(Family Grant)라 부르는 가족 지원금을 주는데 최대 5만 달러(4250만 원)를 받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부모가 사는 곳에서 반경 4km 이내에 있는 HDB를 산다면 최대 3만 달러(2250만 원)를 추가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저렴한 분양가, 소득수준에 따른 정부의 다양한 지원금, 집값의 75%까지 받을 수 있는 장기저리 대출 등으로 싱가포르 시민들은 내집 마련 자체에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대출금은 한국의 국민연금과 같은 CPF를 이용해서 갚을 수 있기 때문에 내집 마련 후에도 큰 부담이 없습니다. 물론 이 모든 혜택은 첫번째 공공주택 마련에만 해당됩니다. 주거안정 측면에서 HDB는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그렇다면 한국에도 HDB를 그대로 가져와서 보급할 수 있을까요? 몇 가지 현실적인 차이가 있어서 그대로 옮겨오기는 힘듭니다. 일단 싱가포르는 전체 국토의 80%가 국유지입니다. 1965년 말레이연방에서 독립 후 싱가포르가 가장 먼저 시행한 것 중 하나가 토지수용법 제정을 통한 토지국유화였습니다. 국유화 과정에서 개인의 재산권이 침해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한국은 국공유지를 모두 더해도 30% 수준입니다. 정부가 땅을 보유하고 주택만 분양하기 위한 전제조건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싱가포르처럼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해 가며 강제로 국유화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인터뷰에서 서울이 아닌 수도권에는 아직 신도시를 정부 주도로 개발할 곳이 있다고 했지만, 서울에서 살고자 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유지 확보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용산 옛 미군기지 터나 김포공항 부지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받는 건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두번째는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인식과 품질입니다. 처음 HDB가 공급될 때는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시설이라는 인식도 강했고, 실제로 품질도 좋지 않았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도 있었고 있더라도 격층으로 운행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사는 HDB 단지 사진입니다. 중산층과 서민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 이봉렬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분양되는 HDB는 그 품질이 비약적으로 좋아졌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HDB 역시 크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한국인의 평범한 눈높이에서 봤을 때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입지가 좋은 곳의 HDB는 민간이 공급하는 고급아파트보다 비싸게 팔리기도 합니다. 주택개발기구가 공급하는 고급HDB(Executive Condominium)는 단지 안에 수영장과 테니스장 등의 부대시설을 갖춰 많은 이들의 선망이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HDB는 이제 중산층과 서민이 어울려 사는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입니다.

한국에서의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인식은 어떻습니까? 인터뷰에서 지적된 것과 같이 도시 변두리 지역에 작은 크기로 지어진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단지 정도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같은 단지 안에 지어진 아파트도 분양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로 어떻게든 구분 짓는 게 현실입니다. 이걸 극복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재명 후보 역시 "중산층도 살 수 있는 고품질" 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하니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재명 후보의 기본주택, 즉 기본주택과 HDB의 가장 큰 차이점은 수익을 남기고 시장에 팔 수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HDB는 토지임대부 분양 방식이라 주택의 소유권은 최소 99년까지 개인이 가집니다. 5년의 의무거주기간이 끝난 후 주택 가격이 오르면 차익을 남기고 처분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HDB를 싸게 분양 받아 살다가 오른 집값에 개인이 모은 돈을 더해 고급아파트로 옮겨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소득층은 애초에 HDB를 분양 받을 수 없기 때문에 HDB가 전체적인 주거안정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서민계층의 재산증식에도 큰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의 기본주택은 주거안정에서 그 역할이 끝납니다. 지금의 한국 현실에서 그 정도가 어디냐 할 수도 있지만, 집을 통한 자산재분배의 사례를 두고 굳이 마다할 건 없지 않을까요?

이재명 후보의 기본주택은 앞으로 여러 전문가들을 모아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질 거라고 믿습니다. 싱가포르의 사례를 참고하겠다고 했으니, 앞서 이야기 한 이 차이점까지 잘 연구해서 이왕이면 싱가포르의 공공주택보다 보다 나은 모습으로 국민 앞에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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