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12 06:11최종 업데이트 22.01.12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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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의 해가 밝았다. 12 간지 가운데 이 땅에서는 보기 어려운 동물이 두 개 있으니, 하나는 상상의 동물인 용이요, 또 하나는 멸종된 호랑이다. 호랑이는 수천 년간 몽골 북쪽과 러시아 아무르 지역과 한반도의 산림을 넘나들며 살았다. 우리의 뼈대인 백두대간을 범의 형상으로 의인화할 만큼 호랑이는 우리 민족과 친숙한 동물이다. 그랬던 호랑이가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소년>지 창간호에 등장하는 최남선의 호랑이 지도 맹호가 발을 들고 대륙을 향해 뛰는 모양으로, 일본의 고토 분지로가 주장한 한반도 토끼 형국설에 반발해 최남선이 그린 지도다. ⓒ NAVER 지식백과

 
호랑이와 나란히 최상위 포식자로서 우리 산하를 누빌 때 백성들이 무서워했던 동물은 곰이다. 곰은 호랑이와 함께 우리나라 건국 신화에 나왔고, 백제 수도의 이름인 웅진을 있게 한 곰나루 신화의 주인공이다. 한반도에 서식하던 곰은 반달가슴곰으로 가슴에  V자 형의 하얀 무늬가 있다. 과거 한반도 전역에 서식하였으나, 현재는 서식지 파괴와 밀렵 등으로 개체 수가 급감, 절멸에 이르러 멸종위기 야생동물 및 천연기념물 제329호로 지정한 상태다.
  

가슴에 하얀색 반달모양의 무늬를 하고 있는 반달가슴곰 지리산국립공원 종복원센터의 생태학습장에서 반달가슴곰을 만날 수 있다. ⓒ 최수경

 
현재 미디어를 통해 볼 수 있는 자연 상태의 곰은 아메리카 산림의 회색곰과 얼음 위에서 사냥하는 북극곰, 중국의 판다 곰 등이다. 아기 곰의 경우 행태가 귀여워, 테디 베어나 곰돌이 푸와 같은 친근한 캐릭터로 다가온다. 하지만 다 큰 반달가슴곰 수컷의 경우, 길이는 180센티요, 몸무게가 150킬로그램의 거구인 데다가 실제 먹잇감이 부족하면 공격성이 커지는 맹수다.

곰이 얼마나 맹수인지 알 수 있는 상황을 그린 이솝우화가 있다. 산에서 곰을 만난 두 친구가 한 명은 나무에 올라가 숨어 곰을 피할 수 있었고, 한 명은 죽은 척 해서 살 수 있다고 나온다. 그러나 실제 후각과 청각이 발달한 잡식성이며 나무를 잘 타는 곰의 습성을 감안하면, 죽은 척하거나 나무에 올라간다고 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사람과 친숙했던 곰이 현재 지리산을 중심으로 다수 서식하고 있다. 다시 서식하게 된 기원은 2005년 야생동식물보호법(현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야생동식물 복원사업을 시작한 데 있다. 국립공원에서는 여우, 산양,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반달가슴곰은 서식지를 통한 서식지 복원(지리산국립공원이라는 공간을 반달가슴곰이 살아갈 수 있는 서식지로 복원)과 러시아에서 복원 개체를 들여오는 개체군 복원을 하였다.
  

여우 복원사업을 하고 있는 소백산국립공원내 종복원센터 여우생태관찰원에서는 여우의 복원 과정을 둘러 보고 붉은 여우를 실제 관찰할 수 있다. ⓒ 최수경

   

여우생태관찰원에서 보호받고 있는 붉은 여우 방생 후 다쳐서 들어온 여우를 치료 후 자연으로 되보낸다. ⓒ 최수경

 
현재 지리산국립공원 종복원센터는 행동권, 서식지 이용, 먹이자원 등 반달가슴곰의 생태적 특성과 자연적응 과정 등을 연구하고 있다. 반달가슴곰에 의한 주민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지역사회와 협력하고, 복원사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을 운영 중이다.

주 이동로 인간에게 빼앗겨
  

지리산국립공원 종복원센터 지리산국립공원 종복원센터는 반달가슴곰의 행동권, 서식지 이용, 먹이자원 등 생태적 특성과 자연적응과정 등을 연구하고 있다. ⓒ 최수경

 
반달가슴곰은 2004년 지리산에서 복원사업을 시작한 이후 개체군이 빠르게 성장하여 야생에서 활동 중이다. 당초 최소 존속 개체군 51 마리를 목표로 시작하였지만, 2018년 4월에 이미 증식 목표 개체 수를 넘어섰고, 2020년 현재 추적 가능한 개체 수는 67마리에 이른다. 지리산의 적정 수용력은 56~78 개체 수로, 가장 현실적인 적정 수용력이 64 개체인 것을 감안하면 이미 포화상태이다(Korea National Park Service, 2017).
   

생태학습장 곳곳에 붙어있는 곰 출현주의 안내 곰과 마주했을 때 행동요령. 1. 지정된 탐방로를 벗어나지 않는다. 2. 종 또는 방울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3. 곰의 흔적을 발견하면 즉시 자리를 피한다. 4. 단독 산행보다는 2인 이상 동행한다. ⓒ 최수경

 
곰은 바위굴이나 나무 구멍(동공), 탱이(조릿대와 주변 나뭇가지와 낙엽을 이용해 만든 새둥지 모양), 토굴 등에서 동면을 한다. 지리산의 경우 평균 12월 7일에 동면을 시작해 4월 20일까지 이어진다고 보고되었다. 곰의 동면은 생존을 위해 생애주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일반적으로 곰의 출산 시기는 겨울이다. 새끼를 낳게 되는 해에 암컷은 동면 기간에 새끼 출산과 양육을 해 에너지가 더 필요한 힘겨운 동면 시기를 보낸다. 겨울과 봄에 특히나 인간과의 충돌을 방지하는 관리 대책이 절실하다.
  

지리산 반달가슴곰 생태마을 의신마을의 곰깸축제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의신마을은 곰과 인간의 공존을 소망하는 프로그램으로 의신옛길 걷기, 반달가슴곰 추적 체험, 베어빌리지 탐방 등 반달가슴곰과 함께하는 산촌 체험을 운영한다. ⓒ 윤여창

 
과거에 사람들이 다닌 길은 낮은 구릉의 고갯길이었다. 지리산 능선은 야생동물이 다녔다. 사람이 다닐 일이 없었다. 그러나 현재 지리산 등산객들은 능선을 산행한다. 이 때문에 지리산국립공원의 대형 대피소 8개가 능선에 있다. 능선을 이용하는 곰이 주 이동로를 빼앗긴 셈이다. 반달가슴곰이 이들 대피소의 음식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야간 CCTV에 찍히거나 자고 있는 등산객에 접근해 침낭을 물어뜯다 달아난 적도 있다.
 

지리산 벽소령대피소 CCTV에 잡힌 반달가슴곰 2014년 6월 8일 밤 10시경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지리산 벽소령대피소 앞에 있던 탐방객에게 접근해 침낭을 물어뜯었다. 곰은 출동한 대피소 직원이 공포탄을 쏘자 달아났다. ⓒ OutdoorNews

 
결국 등산객들이 이들을 서식지에서 내 몬 격이 되었다. 설악산에서 탐방로 이용자가 많아지자 산양이 탐방로에서 더 멀리 이동해 서식지가 크게 축소한 것과 같다. 실제 2017년 국립공원공단의 지리산 반달가슴곰 활동 영역 조사에 따르면 관찰 개체 21 마리 중 18 마리가 지리산국립공원의 모든 대피소에서 약 2km 이상 떨어져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겨레신문, 2018. 10. 10). 

지리산 떠나는 반달가슴곰
  

장수군 번암면에 거주하는 장미화 자연환경해설사는 남편이 퇴근길에 도로를 건너려던 반달가슴곰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이 사실을 그림으로 그려 그녀가 근무하는 장수군 뜬봉샘 금강사랑물체험관에서 탐방객에게 지리산을 출발해 장안산으로 올라오는 반달가슴곰의 이동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 최수경

 
이제 반달가슴곰은 지리산을 떠나 남으로는 전남 광양시 백운산으로, 북으로는 상주시 속리산까지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동 과정은 지난하다. 2018년 5월 반달가슴곰(KM-53)이 지리산에서 속리산으로 이동 중 대전-통영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앞발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또 다른 반달가슴곰(KM-55)은 같은 해 5월 전남 광양시 백운산에서 올무에 걸려 죽었다. 2019년 6월에는 전북 장수군에서 표식기가 없는 새끼 반달가슴곰이 발견되는 등 지리산국립공원 외 지역으로 반달가슴곰의 분산이 계속되고 있다(Korean National Park Service, 2020)

지리산국립공원은 반달가슴곰에게 단일 지역으로 가장 넓은 서식 공간이다. 지리산국립공원 탐방객은 연간 300만 명으로 우리나라 16개 산악형 국립공원 중 가장 많은 탐방객이 이용한다. 공원 내 51개 노선 237.1km 법정 탐방로 외에도 지리산국립공원을 관통하는 15개의 군도와 지방도, 진입도로, 농어촌 도로가 있다. 포장도로가 늘수록 접근성이 좋아져 더 많은 탐방객이 유입된다.
  

지리산 여원재 생태 이동 통로 지리산 정령치길에 있는 여원재 생태 이동 통로는 인근 사유지 양봉장으로 인해 사실상 기능을 하지 못한다. ⓒ 자연환경국민신탁

 
포장도로의 밀도가 증가할수록 이들의 서식지는 단절되고, 서식지가 단절되면 단일면적의 밀도가 증가한다. 제한된 공간에 있으면 곰에게서 강박행동(인간의 우울증이나 자폐증과 유사)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이동시 로드 킬에 방치될 수밖에 없다.

제 구실 못하는 생태통로
 

세종시 도담동의 생태통로인 빗돌터널 1번 국도의 빗돌터널은 금북정맥에서 갈라진 전월지맥을 잇는 중요한 생태통로다. ⓒ 네이버 지도

   

빗돌터널 위로 이어진 골프장 전월지맥을 잇는 생태통로가 아니라 골프장의 연장선이다. ⓒ 네이버 지도

 
서식지 단편화로 인한 종의 손실은 종 다양성 감소로 이어져 생태계 균형에 타격을 준다. 탐방객 증가, 각종 개발사업 등으로부터 단편화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가운데 생태통로가 있다. 그러나 생태통로는 설치 대상지역과 설치기준이 있는데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많은 비용을 들여 설치했어도 형식적인 생태통로에 그치고 있다. 

나는 최근 자연환경국민신탁,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과 함께 지리산 생태통로를 조사한 바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모니터링 자료에 의하면, 유전자 검사를 통해 러시아 태생의 곰(RF-25)과 시료가 없는 수컷 사이에서 자연 출생한 이력의 반달가슴곰(KM-86)이 발신기를 통해 2021년 12월 현재, 장수 장안산과 영취산 등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또 반달가슴곰(KM-53)이 정령치에서 확인된 후 한 달 만에 가야산에서 확인되었다.


이들의 동선을 살피는 가운데 알게 된 사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동 통로와 반달가슴곰의 이동통로가 때로 불일치한다는 것과 많은 돈을 들여 생태통로를 건설하고도 정작 동물들에게 외면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야생동물의 이동에 이로울 폐도로인 구 743 지방도는 여전히 마을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지리산 사치재 생태통로는 야생동물의 이동에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이동 동선의 계곡부에 대형 생수공장이 개업을 앞두고 있었다. 
 

반달가슴곰 KM-86이 지리산 사치재터널과 상당히 떨어져 이동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생태통로와 야생동물의 생태통로는 불일치하기도 한다. ⓒ 다음지도

   

반달가슴곰 KM-96이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는 사치재터널과 떨어져있는 지도상의 장소. 반달가슴곰은 장수군 번암면 사치재 생태통로를 비껴나 계곡과 하천을 통해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 최수경

 
지리산 정령치길의 여원재 생태통로는 유도 펜스가 개인 집으로 연결되었고, 사유지에 있는 양봉 시설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리산 여원재 생태통로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시설이라고 알리지만 정작 국토교통부와 환경부는 이 시설이 효과를 내도록 관리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 자연환경국민신탁

   

지리산 여원재 생태통로 입구의 개인 집으로 향하는 펜스 지리산 여원재 생태통로로 향하는 유도 펜스를 따라가면 개인 집으로 연결되어 있어 사실상 야생동물이 이용 불가능하다. ⓒ 자연환경국민신탁

 
반달가슴곰의 불안한 삶

백두대간 보호 지역은 한반도의 핵심 생태 축으로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관리방향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반달가슴곰 개체군 복원이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의 성공이라 속단할 수 없는 것은 서식지를 통한 서식지 복원이 병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백두대간 보호지역의 생태계 서비스와 가치의 증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생태계 서비스는 지원, 공급, 조절, 문화 등의 서비스를 말하며, 백두대간 자원의 보호와 보전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생태계가 훼손되면 생태계 서비스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수 국민신탁지를 활용한 백두대간 생태축 복원 현황 지리산 사치재의 생태통로로 야생동물의 유입이 용이하도록 환경부 특수법인 자연환경국민신탁이 토지를 매입하여 생태축을 복원하였다. ⓒ 자연환경국민신탁

   

지리산 장수구간의 사치재 생태터널로 향하는 야생동물의 이동로 도랑은 90도 직각의 호안으로 이루어졌고, 야생동물이 건널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았다. 이 다리를 지나 두개의 도로(구 743 지방도와 구 88도로)를 건너야 할 만큼 야생동물의 이동은 역경의 연속이다. ⓒ 자연환경국민신탁

 
지리산 종복원센터 내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에서는 반달가슴곰 대처요령을 이렇게 설명한다. "지정된 탐방로를 벗어나지 않는다. 종 또는 방울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곰의 흔적을 발견하면 즉시 자리를 피한다. 단독 산행보다는 2인 이상 동행한다."

그런데도 부득이 곰과 마주했을 때엔 뒷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또 주변에 구조를 외치거나 먹을 것을 던지는 행동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곰을 만나지 않도록 지정된 탐방로를 이용하라 이른다.

인간과 반달가슴곰의 공존이 실현되었다고 복원사업이 성공적이라 평할 수 없다. 인간의 편리와 서식지의 파편화 속에 반달가슴곰 개체군은 불행한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불안한 삶이 불가피하게 인간과의 충돌을 야기했을 때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이 과연 순항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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