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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무안군에 약 10만 평에 이르는 대규모 태양광이 설치되어 있다.
 전라남도 무안군에 약 10만 평에 이르는 대규모 태양광이 설치되어 있다.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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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지와 농지가 대규모로 태양광에 뒤덮이고 있다. 이 글은 근 20여 년 동안 민간 햇빛발전 전도사를 자처하며 활동했지만 이런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음을 고백하는 일종의 반성문이다.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해야 이런 사태를 막아내고 농지도 보전하면서 기후위기 극복의 정의로운 재생에너지 전환 체체를 수립할 수 있는지 그 대안을 농촌 지역 주민들을 포함한 시민들과 함께 모색해보는 일종의 제안문이자 호소문이기도 하다.

1987년 제정된 대체에너지법이 2004년 12월 31일 신재생에너지법으로 전면 개정되었다. 이에 따라 역사상 처음으로 한전 외에 민간에서 햇빛발전 전기를 생산해도 국가가 의무 구입해야 하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 feed in tariff)가 시행되었다. 말 그대로 세금으로 재생에너지를 육성하는 제도였다.

필자는 신재생에너지법 발효 전인 2005년 6월 10일 한국 최초의 햇빛발전 시민기업 '시민발전'을 창립해 대표로서 햇빛발전의 보급 확대에 매진해왔다. '시민발전'은 시민 출자자를 모아 주택과 건물, 공장 등의 지붕에 햇빛발전소를 짓는 시민햇빛발전 운동을 벌여 나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아예 재생에너지 예산을 4대강 사업에 쏟아부었다. 어쩔 수 없이 시민발전은 청산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2014년 1월에는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장으로서 한살림 등 생협, 지역 햇빛발전협동조합들과 공동으로 햇빛기금을 모아 밀양 송전탑반대 농성장에 햇빛발전소를 설치하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런 햇빛발전 전도사가 2018년에는 상복을 입고 지방선거 이후 최초로 공주시장실을 점거해 태양광 반대를 외치며 농성을 해야만 했다. 한가위 명절도 반납한 채였다.

국선도 본원이 있는 공주시 이인면의 무수산에 2MW의 대규모 임야태양광이 들어설 판이었다. 국선도인들과 공주참여자치시민연대, 공주시 농민회 등이 함께 힘을 모아 공주시에 허가 불허를 요구하며 반대 투쟁을 벌였다. 그러다 공주시청 앞에서 상복 시위를 벌인 뒤 공주시장실을 기습 점거 농성하였던 것이다.

결국 무수산 임야 태양광은 반려되고 말았다. 그때 한가위를 농성장에서 보내는 심정은 참으로 참담한 자괴감 그 이상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2018년 9월 21일 충남 공주시 남월마을 태양광발전시설 반대 대책위원회 주민들이 공주시장실을 점거하고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맨 오른쪽이 필자.
 2018년 9월 21일 충남 공주시 남월마을 태양광발전시설 반대 대책위원회 주민들이 공주시장실을 점거하고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맨 오른쪽이 필자.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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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지 않은 한국의 햇빛발전 출발, 바뀌지 않는 에너지 독재 체제

한국의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정책은 독일에 견주어 결코 늦게 출발하지 않았다. 독일이 루르 탄전지대 공업도시인 아헨에서 처음 창안한 발전차액지원 제도를 연방정부 차원에서 시행한 게 2000년이었다. 불과 5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독일과 한국의 재생에너지 전환 정도는 숫자를 언급하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크다.

핵심은 한국의 에너지 체제가 독재체제라는 데 있다. 중앙정부 공기업인 한전과 발전자회사는 전력의 생산과 송배전, 판매를 독점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는 유례가 없는 체제다. 전력 생산 부문에서는 일부 재벌 화석연료 발전소와 민간 햇빛발전소들이 늘어나 조금 약화되긴 했으나 규모를 놓고 보면 여전히 독점 상태다. 물론 에너지는 민영화가 아니라 민주화가 대안이다.

대규모 핵-화석연료 발전소 독재 체제는 끊임없이 거대 핵-화석연료 발전소를 짓고 또 짓는다. 이런 독재 전기를 송전하기 위해 또 전국의 산과 논밭에 거대한 송전탑을 짓고 또 짓는다. 지금도 여전히 짓고 또 짓고 있다.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들에 이어 홍천을 비롯한 전국 곳곳의 지역 주민들이 송전탑 반대 투쟁을 힘들게 벌이고 있는 까닭이다.

전 세계 금융권에서는 석탄발전소를 좌초자산, 즉 투자를 하면 손해가 나는 사업으로 아예 투자 자체를 하지 않는다. 네덜란드 연기금(APG)이 2020년 한전 주식을 전량 매각해버린 것도 한전의 석탄화력발전소 신규 투자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발전자회사와 포스코 등은 삼척, 강릉 등지에 1GW급 대규모 석탄발전소를 4기나 짓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2030년까지 40%를 줄이겠다고 하는데 말이다.

햇빛발전은 소규모 지역 자립의 분산형 에너지다. 저 멀리 영광과 태안, 삼척 등지 바닷가의 거대한 핵-화석연료 발전소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는 에너지 외부 의존 체제가 아니다. 문제는 한국의 에너지 독재체제가 소규모 분산형 에너지인 햇빛발전을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대규모 집중형 독재 에너지로 짜 맞춰 정책을 펼치는 데서 비롯된다.

2012년 새로 태양광 공급의무화 제도(RPS, Renewable Energy Potpolio)가 시행되었다. 민간에서 생산되는 햇빛발전 전력을 대규모 발전사들이 20년 동안 매년 의무 구매하는 제도다. 발전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주택 건물의 10kW, 100kW 이런 소형 전력보다 MW 규모의 대형 태양광 전력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햇빛발전 건설비가 kW당 1백만 원대로 대폭 떨어졌다. 햇빛발전 사업이 20년 동안 국가가 보장하는 이른바 '돈이 되는' 사업이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대규모 태양광 돈벌이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세월호 직후인 2014년 9월의 일이었다.

태양광 임야-농지 파괴, 박근혜 정부 작품

박근혜 정부는 고시를 개정해서 2015년 3월 12일부터 일반부지(건축물 이외 임야, 농지 등) 가중치를 100kW 미만은 1.2, 100kW~3MW는 1.0으로 무려 70%에서 40% 이상 상향 조정했다. 가중치란 지붕이나 임야와 농지 등 설치 장소에 따라 태양광 전력판매 보조금 지원 가격(공급인증서REC 가격)에 차등을 두는 것을 말한다.

인증서 가격이 100원이라면 2015년 이전에는 임야 태양광의 경우 70원밖에 못 받았다. 임야에 태양광을 건설해 봐야 경제성이 없었다. 이런 가중치는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에너지-환경단체의 끈질긴 문제 제기로 2005년 제도 시행 초기부터 도입된 것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임야나 농지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100~120원을 받게 해 준 것이다. 정확히 이때부터 태양광 사업은 한탕주의 떴다방 기획사업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전국의 임야와 농지는 고수익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태양광 투기꾼'들의 약탈 대상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전국의 부동산 기획사업자들도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지금 태양광 시장은 90% 이상이 재벌과 중소 태양광 떴다방 사업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때부터 대규모 임야와 농촌 태양광을 둘러싼 주민 갈등이 전국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태양광 가짜뉴스가 국민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10여 년 동안 굳건히 지켜왔던 임야와 농지 파괴 방지의 제방이 박근혜 정부의 고시 맨 끝부분 표 개정 하나로 순식간에 폭파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지구 상에는 이산화탄소를 대량으로 흡수하는 곳이 딱 두 군데 있다. 바다-호수-강 등 물과 그리고 숲이다. 그런데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인다면서 숲을 파헤치고 태양광을 세운다? 한마디로 난센스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고시를 개정해 2018년부터 임야 가중치를 박근혜 정부 이전인 0.7로 다시 환원시켰다. 가중치는 3년에 한 번씩 개정한다. 임야 태양광은 이제 다시 경제성이 없어져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3년 동안 태양광으로 파괴된 임야를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임야 태양광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의 일부는 필자를 비롯한 에너지전환 시민운동의 한계도 분명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2005년 '시민발전'과 한국 최초의 태양광 협동조합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을 비롯한 시민햇빛발전 운동은 처음부터 태양광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처음에는 시민들이 민간에서 햇빛발전소를 지어 전기를 판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재벌들도 햇빛발전 사업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삼성이 경북 김천에 당시로서는 동양 최대 규모인 18.4MW의 태양광을 지으며 태양광 사업에 뛰어든 것도 2008년에 들어서였다.

그럼에도 시민발전운동은 시민참여를 통한 햇빛발전이라는 한 가지 사업에만 매달렸다. 다양한 사업방식을 결합해서 태양광 시장의 주도 사업자로 자리매김했더라면 임야 태양광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농지전용 농촌 태양광 사태도 임야 태양광과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MW급 태양광을 100kW식 분할해서 1.2 가중치를 받는 이른바 쪼개기 편법도 기승을 부렸다. 농사 지어봐야 주로 손해만 보는데 돈이 되는 태양광을 위해 농지전용을 하지 않을 농민이 누가 있겠는가. 농지 파괴의 결정타는 대규모 염해농지 태양광 사태다. 문재인 정부 이개호 장관이 밀어붙인 정책이다. 

햇빛발전 보급 확대, 투기꾼 지원에서 국민 지원으로 바꿔야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의 100kW 미만 한국형 FIT 공고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의 100kW 미만 한국형 FIT 공고
ⓒ 한국에너지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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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발전 사업이 투기꾼들의 약탈 사업으로 변질된 두 번째 근본 원인은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에 주권자인 국민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숫자로 나타나는 태양광 보급확대 성과를 위해 손쉽게 법인 사업자들의 대형 사업 위주로만 정책을 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 주권자 정부라는 문재인 정부의 재생에너지 사업 역시 법인 사업자 위주로 진행되었다. 그것도 재벌 대기업 위주였다. 소규모 사업, 예컨대 산자부의 3kW 이하 주택지원사업조차 주택 소유주에게 보조금을 주는 게 아니라 사업자에게 준다.

문제는 간단하다. 햇빛발전 사업의 주체를 사업자에서 국민과 주민으로 바꾸면 된다. 주식회사 법인 사업자를 배제하라는 말이 아니다. 에너지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이제는 국민과 지역주민을 우선하는 햇빛발전 정책과 제도를 제대로 실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에게는 에너지 기본소득이라고 말할 수 있는 훌륭한 제도가 이미 있다. 그 성과도 확실하게 입증된 바 있다 발전차액지원 제도(FIT)가 그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없앤 제도이다.

발전차액지원 제도야말로 국민과 지역주민을 햇빛발전 주인으로 만드는, 에너지 주권을 실현하는 가장 최선의 정책이다. 이 제도는 현재 시민들의 끈질긴 요구에 따라 한국형 FIT란 이름으로 100kW 미만 소형 햇빛발전에 대해서만 다시 적용되고 있다. 우리는 이 제도를 100% 이상 활용해야 한다.

주민을 주제로 세우는 햇빛발전 부지는 너무나 많다. 주택, 공장, 창고, 축사 등 비어 있는 지붕만 해도 부지기수다. 도로와 철도, 하천과 제방, 교량 등도 지역주민들의 공익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부지를 임대해 건설하면 된다. 농지에 짓는 햇빛발전소도 농지보전의 영농형 햇빛발전으로, 그것도 100kW 미만 소형으로 제한하면 된다.

그러면 재생에너지 전환은 성큼 앞당겨진다. 그 과정은 물론 혁명에 가까운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고 재생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에 앞장서는 국민으로의 변신 과정이기도 하다. 왜 이런 주권자 중심의 정책으로 바뀌지 않는지, 그러면 우리는 어떤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하는지 다음 글에서 상세하게 논의해 보겠다. 

태그:#태양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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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민주주의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민주적 대안언론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역사와 노동과 생태 문제에 관심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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