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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다리와 통통한 엉덩이의 치명적인 매력, 진묘수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느 누구의 발길도 허락하지 않았던 무령왕릉이 열린 것은 1971년입니다. 무령왕릉은 공주의 송산리고분군의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발굴을 위해 들어갔던 사람들이 제일 처음 만난 것은 무덤을 지키고 있던 진묘수입니다.

진묘수는 무덤 통로 가운데에서 밖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무덤을 지키는 상상 속의 동물로 만들어진 진묘수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던 거지요. 무덤, 특히 왕과 왕비의 무덤을 지켜야 하니 힘을 상징하기 위해 굉장히 험상궂게 만들거나 싸움을 잘할 수 있도록 날렵하게 만들었을까요? 실제로 중국에서 발견되는 진묘수는 그러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무령왕릉의 진묘수는 조금 다릅니다.
 
중국의 진묘수
 중국의 진묘수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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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진묘수
 중국의 진묘수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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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진묘수의 얼굴을 먼저 볼까요? 눈이 올망졸망하고 입을 헤벌레 벌리고 있는 것이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분이 좋아 노래를 흥얼거리는 듯합니다. 기분이 좋아 콧대는 잔뜩 올라가 있고, 앞다리는 노래에 맞추어 박자를 맞추며 춤을 추는 것 같네요. 나쁜 귀신을 쫓는 의미로 입술 주변을 붉게 색칠하였는데 얼핏 바라보면 엄마의 립스틱을 몰래 바른 듯한 장난스러운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탐스러운 엉덩이를 볼까요? 자신의 노래에 맞추어 씰룩씰룩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네요. 머리에는 철로 만든 뿔이 달려있습니다. 중국에서 진묘수의 뿔은 죽은 영혼을 하늘로 데려가는 역할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진묘수의 등에 있는 털은 사자의 갈기처럼 보이는 것이, 말의 안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영혼을 모시고 하늘로 갈 때 영혼이 힘들어하면 자신의 등에 내어줘 편안하게 모실 것 같습니다.

짧은 각각의 네 발에는 불꽃이나 날개처럼 보이는 무늬가 새겨져 있네요. 하늘로 영혼을 모시고 갈 수 있게 날개를 달고 있는 듯합니다. 이 무늬를 보니 통통한 몸이 날렵해 보이네요. 어떤 학자들은 이 무늬를 당초문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넝쿨무늬로 보아 자손들이 영원히 번영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합니다. 진묘수는 이런 매력으로 여러 종류의 기념품으로 제작되어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무령왕릉 진묘수
 무령왕릉 진묘수
ⓒ 국립공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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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진묘수
 무령왕릉 진묘수
ⓒ 국립공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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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진묘수가 지켰던 것

우리나라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던 시기에 일본에서 건너온 가루베 지온이라는 일본인이 있었습니다. 가루베는 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사람으로 역사학자나 고고학자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우리나라에 와서 처음 간 곳은 평양이었습니다. 낙랑 및 고구려의 유적으로 조사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너무나 많은 전문가들이 발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가루베는 당시 많은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던 백제의 옛 도읍지였던 공주로 내려와 공주고보에 일본어 교사로 근무하게 됩니다. 그리고 공주지역의 백제 고분을 1000 여 기를 조사했으며, 182기를 실측 조사했다고 합니다. 가루베의 실측조사는 모두 불법이었으며, 발굴에 아마추어였던 그에 의해 백제의 고분은 마구 파헤쳐져 훼손되었습니다. 더구나 그렇게 발굴한 유물들을 몰래 빼돌려 자신의 소유로 하였으며, 일본에 보내 판매도 하였습니다.

그가 발굴한, 아니 도굴한 무덤 중 대표적인 것이 송산리 6호분입니다. 당시의 법에 의하면 고분이 발견되면 건드리지 말고 신고를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송산리 6호분을 도굴하고 깨끗이 정리까지 하고 난 후에야 조선총독부 조사단을 불렀습니다. 수많은 백제의 고분을 도굴한 가루베를 피해 간 무덤이 무령왕릉입니다. 무령왕릉이 통째로 지하에 묻혀있어 발견되기가 힘들었다고는 하지만 1971년까지 발견되지 않은 것은 진묘수가 그 역할을 끝까지 잘해서가 아니었을까요? 
 
무령왕릉을 지키고 있던 진묘수
 무령왕릉을 지키고 있던 진묘수
ⓒ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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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묘수가 지키지 못했던 것

진묘수도 지쳤던 것일까요? 진묘수가 천년을 넘게 지켰던 무령왕릉의 발굴은 우리나라 최악의 발굴로 꼽힙니다. 지금이라면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1차 발굴은 하룻밤 만에 이루어집니다. 심지어 몰려든 기자들 중 한 명은 가까이서 촬영하기 위해 허락을 받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청동숟가락을 밟아 부러 뜨러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발굴을 담당했던 당시 공주박물관 관장은 유물 20여 점을 들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여줍니다.

박정희는 왕비의 팔찌를 들고 '이게 순금인가?'라며 두 손으로 가운데를 휘였다 폈다 하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무령왕비의 팔찌는 안쪽에 새긴 글자를 통해 무령왕비가 살아생전에 사용하던 장신구로 밝혀졌습니다. 겉에는 두 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는데 머리와 다리, 꼬리 등 전체적인 모양뿐 아니라 발톱이나 비늘 등 세부적인 표현도 아름다운 유물로 1974년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무령왕비 은팔찌
 무령왕비 은팔찌
ⓒ 국립공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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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야 할 것과 끊어야 할 것

무령왕릉의 진묘수가 발견되었을 때 뒷다리 하나가 부러져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그 이유로 '진묘수가 도망가지 않고 무덤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중국에서 진묘수를 제작해 넣을 때 으레 하는 전통이라는 것입니다. 

다리를 부러뜨려 놓으면 무덤을 잘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시 지배층의 특권 의식을 잘 보여줍니다. 신분사회에서 지배층의 생각을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의 관점으로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한 문화의 전래와 계승에서 '상징'이 가지는 힘은 무척 큰 것입니다. 하지만, 무덤을 지키는 진묘수에 대한 지배층의 생각은 백성들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번 상상해봅니다. 진묘수를 만든 후 다리를 부러뜨려 넣으려고 하자 어떤 왕족 또는 귀족이 이야기합니다. "다리를 부러뜨려 억지로 지키게 한다면 과연 이 진묘수가 무덤을 잘 지킬 수 있겠는가? 오히려 날개를 달아주어 훨씬 자유롭게 움직이게 했을 때 더 무덤을 잘 지킬 수 있지 않을까? 백성들을 힘으로 눌러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정책을 펼쳐 스스로 나라에 충성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 아니겠는가?"

다시 바라본 진묘수는 즐겁게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부러뜨리려고 하는 사람을 피해 뒷걸음치는 것 같고, 얼굴은 잔뜩 겁에 질린 듯합니다. 개인으로 볼 때 '습관'은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을 말하며, 사회적으로 볼 때 '전통'이나 '관습'은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오랜 시간을 통해 전해오는 생각, 행동 등을 말합니다.  

개인이 발전하려면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하며, 좋은 습관을 가진다는 것은 가지고 있던 좋은 습관을 잘 유지하고 나쁜 습관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사회나 국가가 발전하려면 좋은 전통은 이어나가고 나쁜 전통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을 하는 힘입니다.

판단을 하지 않고 무조건 따르거나 버리는 행동은 개인이든 사회든 발전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무령왕릉 진묘수의 부러진 다리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혜는 올바른 생각을 위한 노력과 그것을 실천하는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태그:#무령왕릉, #진묘수,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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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삶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쓰는 초등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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