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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는 신라시대부터 절영도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영도에서 키우는 말은 그림자(影 영)를 잘라낼(絶 절) 정도로 빠르다는 의미로 붙게 된 명칭이었다. 광복 후 행정구역상 이름을 영도라고 지었다. 

근대에 들어서 말이 달리던 초원은 철이 잘리고 붙는 조선소가 즐비한 곳으로 변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1938년 미쯔비시가 조선중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1980년대 한진그룹이 인수하면서 한진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세계에서 손꼽히던 조선소가 되었지만, 얼마 전 회사는 문을 닫고 새로운 주인을 만나 HJ중공업으로 바뀌었다. LNG선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 조선업계에서 밀려난 지는 아주 오래되어 옛 명성을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선박수리소가 모여 있어 망치 소리가 멈추지 않아 깡깡이 마을이라고 불리었던 곳은 이제 예술이 품고 카페가 들어섰다. 버스에 붙은 '예술도시 영도'라는 슬로건이 어쩐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처럼 어색하고 희망적인 느낌을 동시에 가져왔다. 

국립 해양박물관
 
국립 해양박물관
 국립 해양박물관
ⓒ 홍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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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해양박물관을 찾아가는 길. 조선소 앞 담벼락에 옛 영광을 찾고 싶다는 열망이 다양한 모습으로 붙어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찾겠다는 희망버스가 드나들면서 한 때는 성전으로 불리었던 도로는 한산했다. 그곳을 지나 십여 분 가니 국립 해양박물관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국립 해양박물관의 외형은 물고기 떼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2013년 한국건축문화 우수상을 받을 만큼 근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넓은 주차장과 공원은 방문객들을 편안하게 맞이했다. 그 안에서 헤매고 있으니 코로나19로 바닥에 거리두기를 위해 붙인 발바닥 표시가 입구까지 길 안내를 했다. 

4층으로 구성된 건물은 홀이 아주 넓었다. 1층은 로비, 2층부터 기획전시와 상설전시, 수족관, 영상관 그리고 옥상 전망대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날 전시는 '고지도, 수평선 너머를 세계를 그리다('21. 12. 7~ '22. 3. 6.)'였다. 뛰어다니는 아이 때문에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고지도가 조선에 유입되면서 조선의 세계관이 바뀌게 된 시대를 엿볼 수 있었다.

네덜란드가 1602년에 첫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고도 근 100년 뒤 세계지도는 중국을 거처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당시 동아시아권에만 머물러 있던 세계관이 이를 계기로 급속하게 팽창했다고 한다. 전환의 시대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 그리고 그 미지의 세계로부터 전달된 문물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이후 역사는 폐쇄적인 시스템과 부패한 권력의 말로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려주고 있다.
 
3층에 작은 수족관은 어린이들에게 인기다.
 3층에 작은 수족관은 어린이들에게 인기다.
ⓒ 홍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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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해양박물관 3층에 있는 작은 수족관은 바다거북과 까치상어가 헤엄치고 있지만, 그 규모는 여느 아쿠아리움에 비해 상당히 작다. 그 주변 벽에 달린 어항에 열대어들도 몇 있었지만, 흉내내기에 가까워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작은 수족관 안 물고기를 졸졸졸 따라다니며 즐거워했다. 

이외 해양도서관, 어린이박물관 등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과 이벤트는 코로나 19로 인해 그 이용이 제한되어 이 또한 아쉬웠다. 후에 정상적으로 운영이 된다면 이용해 보고 싶다. 

흰여울 마을
 
형형색깔의 건물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형형색깔의 건물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 홍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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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여울마을은 절벽에 매달린 마을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간 건물들은 전쟁과 자본에 밀려 나온 사람들의 살아보겠다는 절박한 심정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2012), <변호인>(2013) 등에 등장하면서 알려지게 된 이 마을은 '문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서 문화라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 잘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절벽을 따라 이어진 좁은 해안길을 걷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해안길을 따라 형형색색으로 칠해진 건물들 대부분이 카페로 변해 사람들의 발걸음을 돌려세워 잠시 쉬어가도록 했다. 그 안에 몇몇 잡화점과 수공예품점이 있어 보는 재미도 솔솔 했다. 

눈 부신 햇살을 안은 파도가 다가와 절벽 아래에서 부서지며 철썩 소리가 울린다. 그 위로 넓은 정원이 딸린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이 얹히자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실거주지는 얼마 없는 것 같았다. 동피랑, 감천마을처럼 '사람이 살고 있다'라는 안내판이 달린 집 창문 안은 대부분 텅 비워져 있었다. 공사를 하다가 멈춘 어느 집에는 구경 나온 사람들이 "나도 여기서 뭐라도 해볼까"라는 말을 툭툭 내뱉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해안 절경 속에 어떤 문화를 만든 것일까. 사진을 찍으며 기분 전환을 하고 좋은 상권을 따지는 것 외에 어떤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미로처럼 엉킨 흰여울 마을을 올라가면 이차선 도로가 나온다. 그 작은 도로 사이로 관광지와 생활지가 나뉜다. 좁은 동네에 주차 공간이 부족해 짧은 등산을 해야 닿을 수 있는 주택가에 있는 공용주차장에 차를 댔다. 가는 길에 보이는, 길 건너 낮은 아파트의 빛바랜 외벽 페인트와 녹슨 창살은 을씨년스러웠다.

'이제 조금만 올라오면 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어린이집 안내판이 보였다. 힘겹게 고개를 오를 수 밖에 없는 주거환경을 가진 이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내는 것 같았다. 

흰여울 마을이 알려진 지 오래다. 그 시간 동안 과연 무엇이 더 나아졌을까. 이곳에서 우리는 어떤 특별함을 얻으려고 하는 것일까. 우리의 발걸음은 그들에게 어떤 희망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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