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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직장 동료에게 사춘기 딸아이의 방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저희 딸 방은 누가 와서 볼까 무서워요. 쓰레기 통이 따로 없다니까요!"

먹고 버린 군것질 쓰레기, 마신 물과 음료수 컵, 숙제하며 늘어놓은 교재 등 온갖 잡동사니들이 뒤엉킨 딸아이의 책상 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이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아 속이 답답해졌다. 몇 번을 말해도 소용없이, 뱀 허물 벗어 놓듯 방바닥 여기저기에 늘어놓은 옷가지와 양말을 볼 때면 뚜껑이 절로 열렸다. 다른 집 사춘기 청소년들은 문을 꼭 닫아두어서 방 안 상태를 못 보게 한다던데, 왜 우리 집 청소년은 항상 문을 활짝 열어두어 이 갱년기에 접어든 엄마의 심기를 자꾸 건드리는 것일까?

"자기가 치워줄 거야? 군소리 않고 치워줄 거 아니면 조용히 문 닫아줘. 지들도 참다 참다 안 되겠으면 언젠가는 치워."

이미 사춘기를 거쳐간 대학생과 고등학생, 두 딸을 둔 직장 동료가 준 답은 베테랑 엄마답게 명쾌했다. 난 조용히 치워줄 의사도 없으면서 먼저 스스로 치우지 않는 아이를 닦달하는 조급한 엄마였다. 또 딸아이에게서 내가 싫어하던 어릴 적 내 모습을 본 게 틀림없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네 몸 씻듯이 방 좀 치워!" 하시던 친정 엄마의 목소리는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가만 놔두면 알아서 곧 치울 텐데 왜 저렇게 들볶으시나, 엄마의 잔소리가 그렇게 싫었으면서 난 엄마의 전철을 똑같이 밟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남편은 육아에 별 도움이 못 됐다. 직장 생활하는 대한민국의 30대 가장의 삶이 어디 자기 맘대로 살아지는 삶이던가. 아이들이 깨기 전에 출근해 잠든 후에야 일이든, 술이든 떡이 되어 들어오는 남편과는 애초부터 육아와 가사 분담이 어려웠다. 그렇다고 주중에 모두 소진한 에너지를 새로 채울 수 있는 주말용 파워 배터리가 남편에게 있을리 만무했다. 

나 역시 일과 육아, 가사를 병행하다 보니 피곤에 찌든 남편의 몸과 마음을 이해할만한 아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아등바등 사는데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는 것만 같아 자주 스스로 실망스러웠고 적극적으로 함께 하지 못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그런 마음으로 사는 엄마가 아이들 눈이라고 행복해 보였을까?

가장 먼저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딸이 중학교 1학년 때, 딸의 학교에서 학부모 교육 강좌를 실시했다. <엄마 반성문>의 저자이자, 현직 초등학교 교장이신 이유남 선생님의 학부모 대상 강의였다. 그날의 열정적이었던 강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아이를 부모의 자랑거리로 삼지 말고 부모가 아이의 자랑거리가 돼라'였다. 막연히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만 생각했지, 엄마로서의 내가 아이의 자랑거리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한참 사춘기를 통과하는 까칠한 딸아이와 걸핏하면 감정싸움을 하던 시기여서 딸이 나를 자랑거리로 삼는 일은 불가능한 현실 같았다.

<엄마의 20년>이란 책에서 오소희 작가 역시 '나중에 아이가 잘 되길 바라기 전에 지금 당장, 나부터 잘 살자'라고 썼다. 자녀 교육의 선배들은 하나같이 아이의 문제에 골몰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가라고 조언하고 있었다.

사춘기 딸의 카톡 프로필 사진에 오른다는 것
 
딸의 카톡 프사에 오른 내 책 표지
▲ 딸의 카톡 프사 딸의 카톡 프사에 오른 내 책 표지
ⓒ 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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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독서'와 '글쓰기'였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본 후 블로그에 리뷰를 남기는 것으로 내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이후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과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 활동을 통해 좀 더 적극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편, 두 편 쓴 글이 모이자, 한 권의 책으로 엮을 정도로 쌓였다. 출판사 투고를 통한 생애 첫 책 출간은 내게 집중하던 시간이 만들어준 선물이었다.  

책이 출간되고 얼마 후, 딸아이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딸의 프로필 사진에 내 책 표지가 올라있던 것이었다! 딸의 카톡 프사(프로필 사진) 자리란 어떤 자리던가. 한때 '아미'를 자칭하며 딸이 온 마음을 주었던 BTS가 차지했다가, 유튜브를 통해 입덕 한 슈퍼주니어의 멤버, 빨강머리 '예성'이 위용을 자랑하던 자리가 아니던가. 그 자리는 딸이 순간순간 가장 사랑하는 대상만이 오를 수 있는, '아무나 넘볼 수 없는' 자리였다.

주로 딸 친구들이 볼 카톡 프사에 좀 뜬금없지 않겠냐는 내 말에 딸이 말했다.  

"우리 엄마가 노력해 쓴 책이잖아. 자랑해야지."

딸아이의 말에 나도 한 번은 딸의 자랑거리가 되는구나, 싶어 가슴이 벅찼다. 사춘기 아이의 특성상 관심사는 변하기 마련이라 2주 정도 지나니 이내 다른 사진으로 바뀌었지만, 2주 동안 딸의 카톡을 볼 때마다 너무 행복했다.

딸의 책상은 여전히 쓰레기통이고 옷가지가 옷걸이에 걸리는 날은 손에 꼽는다. 여전히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고쳐주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지만, 엄마의 지나친 관심으로 아이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대신 아이가 스스로 방을 정리하는 날엔 요란스러운 칭찬의 반응을 잊지 않는다.

구석방에 위치한 화장대 앞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를 볼 때마다 딸은 다가와 뒤에서 꼭 안고 간다. 딸은 뭔가에 집중하는 엄마의 모습이 가장 예쁘단다. 진지하게 몰두하는 모습이 멋지단다.

요즈음 딸은 커서도 엄마랑 살 거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줄어든 (것 같은) 엄마의 관심과 잔소리가 그리워진 탓일까? 아무래도 딸의 프사에 어떤 모습으로든 다시 오를 날을 도모할 때가 되었나 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함께 게시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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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은 공립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서 더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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