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충청 출신 김응수 배우와 연기자들이 출연해 상황극으로  농업인 실용 교육 찍은 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농업인들.
▲ 부여군 농업인 실용교육 충청 출신 김응수 배우와 연기자들이 출연해 상황극으로 농업인 실용 교육 찍은 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농업인들.
ⓒ 오창경

관련사진보기

 
"직불리 이장입니다."

면사무소 2층 교육장에 들어서니 충청도 출신 배우 김응수의 찰진 지역의 언어가 귀에 쏙 들어왔다. 코믹하기도 하고 시크하기도 한 캐릭터를 지닌 김응수 배우가 초록색 새마을 모자를 쓴 시골마을 이장으로 등장하고 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어지는 화면 속에서는 마을 공동체 참여, 영농 폐기물 적정 처리, 영농기록 작성 및 보관등의 영농 교육을 상황극으로 촬영한 영상이 나왔다. 강사의 일방적인 교육 진행보다 배우들의 연기를 통한 영상은 흥미를 높이고 이해하기도 휩다. 

옆집 아저씨 같은 배우가 듣기에도 정겨운 고장의 언어로 능청스럽게 말했다. 영농 폐기물을 농지에 방치하거나 소각하지 말고 마을 공동 보관함에 두었다가 전문 처리업체에 맡겨야 한다고. 찰떡같은 김응수 배우의 연기를 통한 농업인 실용 교육이 한창이었다. 비대면 교육이 대세이지만 아직은 고령 농업인이 많은 시골마을에서는 집합 교육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겨울은 농한기이다. 예전 같으면 마을 회관에 삼삼오오 모여서 윷놀이도 하고 고스톱을 치며 휴지기를 가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농업인들에게 농한기는 체력을 다지고 다음 작기 영농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영농교육도 받는 시기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농업 환경도 해마다 새로운 지식을 도입하고 배우지 않으면 텃밭의 고추도 제대로 가꾸지 못 할 만큼 변해버렸다. 농업은 과학이다. 고추가 가장 많이 열리는 온도와 시기를 수치로 분석해서 대처한다. 꾸준한 종자 개량으로 해마다 새품종이 나오고 재배 방법도 달라진다. 사례분석과 질의응답을 통해 작물의 핵심 기술을 전파하는 실용 교육 현장의 열기는 한기를 몰아낼 만큼 뜨거웠다. 겨울 농한기는 농민들에게는 한 해 농사를 기획하고 설계하면서 영농 교육을 받는 적기이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열린 농업인 실용 교육은 4일부터 26일까지 부여군 총 2400여명의 농민을 대상으로 면별로 3회씩 48회에 걸쳐 맞춤형 집합 교육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라 50명 이상 한꺼번에 집합 교육을 할 수가 없어서 4개 면 씩 3회에 걸쳐 교육을 하고 있다.

부여군 농업기술센터(소장 김성태) 직원들은 농한기가 제일 바쁘다. 영농교육 현장마다 찾아다니며 올해 시작될 영농에 대해 직접 강연을 하고 홍보도 해야 한다. 농민들에게 농업 기술 센터의 영농 교육은 군정 소식을 지자체장에게 직접 들을 수도 있는 시간이기도 하기에 참여율이 높다. 더구나 올해는 오랜 코로나의 시기로 모임 제한 끝에 어렵게 마련된 군정 소통의 자리였다.

본 교육에 앞서 지자체장의 군정 소식을 전하는 시간이 있었다. 작년 한 해 부여군에서는 충남도 청렴도 최고 등급과 민원서비스 최고 등급을 받았고 군정운영 평가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음을 알렸다. 실제로 부여군에서 처음으로 쏘아 올린 농민 수당과 재난 지원금 지급은 다른 지자체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 노란색 캐비넷은 농약이 농약 이외의 용도로 쓰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 농약안전보관함 이 노란색 캐비넷은 농약이 농약 이외의 용도로 쓰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 오창경

관련사진보기

 
군정 소식에서 내가 가장 의미 있게 들었던 내용이 한 가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농가마다 노란색 철제 캐비닛이 한 개씩 놓였다. 앞부분에는 '농약 안전 보관함'이라는 글씨가 붙어있었다. 농가에서 개별적으로 마련한 것이라고 하기엔 일률적이어서 출처가 궁금했다.

농촌에서는 음독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우리 동네에서도 농약 음독으로 인한 사망과 입원 등의 소식을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몇 년 전 최악의 가뭄에 논에 물을 대지 못했던 어떤 농부는 순간적으로 '이렇게 살면 뭐하나?' 하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일어나자 눈에 띄었던 살충제를 서슴없이 들이켰고 지병으로 고생을 하던 어떤 이도 창고 앞에 놓아 둔 제초제를 본 순간 손을 뻗었다.

모든 사고는 찰나에 일어난다. 농촌 마을에서는 이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죽음을 가벼이 여겨서라기보다 순간적으로 화를 못 이겨서 그런 경우가 많다. 순간의 선택을 좌우할 농약이 보관함에 있고 자물쇠가 잠겨 있다면 손을 뻗다가도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그 시간으로도 충분하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남아 있는 이들의 얼굴이 잠시 스쳐가는 시간이면 마음도 돌아선다. 모든 사고는 예방이 가능하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우리나라에서 충남 부여와 청양은 자살률 1위의 지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도지사가 이 불명예를 벗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겠다는 뉴스가 나온 지 2년이 넘었다.

노란색 캐비닛은 음독 사고 예방을 위한 사전 조치 차원에서 마련한 것이었다. 경각심을 일으키는 노란색만으로도 욱하는 성미에 맹독성 농약을 찾던 손길이 주춤한다. 실제로 이 농약 보관함이 농가에 보급되면서 3년 째 음독 사고가 감소하고 있다.

영농 교육에 참여하면서 지자체장의 군정 운영 성과에 대한 자화자찬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노란색 농약 안전 보관함 보급만큼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것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어떤 치적보다도 극단적 선택을 막아 소중한 생명을 지켜내게 한 것만큼 잘한 일이 있을까?

영농 교육에서 생명을 지키는 노란색 농약 보관함의 진짜 용도를 홍보했던 시간이 가장 값졌다. 고추와 벼 재배에 대한 교육은 공통 과정으로 부여의 특산물인 수박, 멜론, 포도 등에 대한 교육까지... 부여 농민들의 농한기는 인기 연예인 스케줄 못지않다. 변화하는 농업 정책과 과학 영농에 발 맞춰가기 위한 농부들의 행보는 겨울부터 시작된다.
 
한 겨울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농업인 실용 교육을 받으러 나온 부여군 농민들의 열기가 뜨겁다.
▲ 농약 안전보관함 보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 겨울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농업인 실용 교육을 받으러 나온 부여군 농민들의 열기가 뜨겁다.
ⓒ 오창경

관련사진보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