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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마산에 있는 3.15의거 기념탑.
 창원마산에 있는 3.15의거 기념탑.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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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첫 유혈 민주화운동인 '3·15의거'에 대해 62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 작업이 시작된 가운데, '의거'라 불리기 보다는 '혁명'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3·15의거'는 이승만 자유당정권이 1960년 3월 15일 치러진 대통령·부통령선거에서 온갖 불법·부정을 저지르자 창원마산 시민들이 항거하며 일어났던 민주화운동을 말한다.

'의거' 당시 김주열 열사가 행방불명되었다가 같은 해 4월 11일 마산 앞 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올랐고, 이에 시민들은 "김주열을 살려내라"고 외쳤다. 이는 '4·11민주항쟁'으로,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1960년 4월 26일 '하야'를 선언했다. 

'3·15의거'는 경남도 기념일로 되어 있다가 정부가 2010년 법정기념일로 제정했고, 이후부터 국가보훈처가 기념식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4·19는 '혁명'이고, 3·15는 '의거'로 불리고 있으며 4월혁명의 '도화선' 내지 '기폭제'로 표현되고 있다. '혁명(革命)'은 국가권력 교체를 의미하고, '의거(義擧)'는 "의로운 일을 크게 일으키다"는 뜻이다.

진실화해위 창원사무소, 3·15 관련 접수 시작
  
1월 21일 창원특례시 마산합포구 오동민원센터에서 열린 “3?15의거 진상규명을 위한 진실화해위 창원사무소‘ 개소식
 1월 21일 창원특례시 마산합포구 오동민원센터에서 열린 “3?15의거 진상규명을 위한 진실화해위 창원사무소‘ 개소식
ⓒ 창원특례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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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차원의 '3·15의거' 진상규명 작업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정근식)가 지난 21일 창원특례시 마산합포구 오동동민원센터에 '3·15의거 진상규명을 위한 진실화해위 창원사무소' 개소식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이는 지난해 국회에서 '3·15의거 참여자의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3·15특별법)이 통과·제정되고,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 '3·15의거 특별법 시행령'이 의결되면서 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진실화해위는 창원사무소를 개소해 진상규명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총 3개과 12명으로 구성된 창원사무소는 앞으로 3·15 관련 조사 활동의 거점 역할을 하게 된다.

3·15 참여자로 진상조사를 원하는 사람은 오는 12월 9일까지 신청할 수 있고, 창원사무소는 신청서를 검토한 뒤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신청자 중 '각하'를 받은 사람도 재신청할 수 있다.

진실화해위는 이날 개소식을 후 관련 단체와 간담회를 열어 앞으로의 진행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3·15의거'를 '3·15혁명'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4·19가 '혁명'이면 그 시작인 3·15도 '혁명'"
  
국립3.15민주묘지에 있는 부조물.
 국립3.15민주묘지에 있는 부조물.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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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태 3·15의거학생동지회 회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3·15는 '의거'가 아니고 '혁명'이 맞다"며 "앞으로 단체 이름도 '3·15혁명학생동지회'로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에 시민들이 항거했고 이는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떠오른 날(4월 11일) 이후까지 진행되었다"며 "4월 들어 마산은 물론 서울에서도 학생과 시민들이 '이승만 대통령 하야'와 '고문경찰 처벌하라', '부정선거 다시하라'며 시위를 벌였다"고 했다.

이어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이 서울에서 시위를 벌였고, 계엄령이 발표되었지만 시민들은 '대통령 하야'를 계속 외쳤으며, 급기야 교수들도 거리로 나섰다"라며 "이승만 대통령이 4월 26일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청와대에서 나오면서 혁명이 완수되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3·15도 '혁명'으로 불러야 하고 그렇게 대우를 해야 한다"며 "당시 마산 사람들은 목숨을 바쳐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켰다. 이번에 특별법이 제정되고 진상규명을 할 수 있게 되어 의미가 크다.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어야 하고, 이번에 국가 차원에서 '3·15혁명'으로 불리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주열 열사와 옛 마산상고(현 용마고) 입학 동기인 김영만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고문은 "저는 3·15에 참여한 사람으로 그동안 늘 '3·15혁명'을 주장해 왔다"고 했다.

김 고문은 "4·19가 '혁명'이면 그 시작인 3·15도 '혁명'이 되어야 하고,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떠오른 4·11도 '혁명'이어야 한다"며 "지금까지 사람들의 인식이 '4·19'는 커 보이고 '3·15'가 작아 보였다면, 그것은 하나가 '혁명'이고 다른 하나가 '의거'로 불리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진상규명 작업이 시작된 이번 기회에 '3·15혁명'으로 불리도록 해야 하고, 그런 시민운동도 일어나야 할 것"이라고 했다.

'3·15특별법'을 대표발의했던 국민의힘 최형두 국회의원(마산합포)은 "'3·15혁명'이 되려면 역사적으로 평가가 되어야 한다. '4·19혁명'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절반이 3·15에 있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최 의원은 "4·19혁명 이후 제2공화국이 출범했고, 당시 서울 중심으로 조사나 역사 평가 작업을 했던 측면이 있다"며 "당시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유혈 민주화운동이지만 3·15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고, '4월 혁명의 도화선'이란 표현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3·15 때 13명이 희생되었다. 3월과 4월이 하나의 혁명이다. 모든 혁명은 끝난 날짜가 아니라 시작된 날도 중요하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며 "'3·15의거'를 '3·15혁명'으로 바꾸는 문제는 충분한 자료 발굴과 기록 등을 통해 진상규명이 진행되면서 역사적 평가 속에 되어야 한다"고 했다.
 
2021년 11월 25일 창원마산 김주열열사 시신인양지에서 열린 '김주열 열사 동상 제막식'.
 2021년 11월 25일 창원마산 김주열열사 시신인양지에서 열린 "김주열 열사 동상 제막식".
ⓒ 이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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