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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가 회사를 떠나면서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피해 사실을 알려 명예훼손으로 재판에 넘겨진 뒤 1,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무죄가 인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혐의를 받은 A씨의 상고심에서 원심의 벌금 30만원 선고를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입사 후 2년여가 지난 2016년 4월 퇴사했다.

문제의 발단은 2014년 10월께 직원 몇 사람이 참석한 술자리였다. 이 모임에는 A씨와 동료 3명, 그리고 팀장 B씨가 있었다.

그날 A씨와 팀장 B씨 사이에는 술자리 테이블 아래로 손을 잡는 등의 신체적인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유부남인 B씨는 그날 늦은 밤 3시간에 걸쳐 A씨에게 12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같이 가요', '맥줏집 가면 옆에 앉아요. 싫음 반대편', '왜 전화 안 하니', '남친이랑 있어. 답 못 넣은거니' 등이다. A씨는 답하지 않았다.

1년여가 지난 뒤 A씨는 회사에 사직 의사를 표시했고, 그 다음 날 전국 200여개 매장 대표와 본사 직원 80여명에게 '성희롱 피해 사례에 대한 공유 및 당부의 건'이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에서 A씨는 "B씨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현재 절차상 성희롱 고충 상담 및 처리 담당자가 성희롱했던 팀장이므로 불이익이 갈까 싶어 말하지 못했다"며 "회사를 떠나게 됐고 회사의 발전을 위해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 메일을 보낸다"고 했다. 메일 안에는 피해 사실과 B씨가 보낸 문자메시지 사진도 첨부됐다.

A씨는 노동당국에 대표이사를 상대로 진정도 제기했으나 사건은 혐의없음(증거불충분)으로 행정종결 처리됐다.

이후 A씨는 B씨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7년 1심과 2심은 A씨가 비방을 목적으로 이메일을 보낸 것이며 유죄라고 판단했다. 본사에서 일하다가 지역 매장으로 인사 발령을 받게 되자 돌연 B씨의 1년여 전 행동을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무죄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메일은 A씨의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사례에 관한 것으로 회사 조직과 구성원들의 공적인 관심 사안"이라며 "B씨를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범죄의 증명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 문화와 인식, 구조 등에 비춰볼 때 A씨로서는 '2차 피해'의 불안감을 가질 수 있다"며 "신고하지 않다가 퇴사를 계기로 이메일을 보냈다는 사정으로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추단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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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성희롱, #대법원, #명예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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