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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코앞에 다가왔다. 한국처럼 프랑스도 올해는 대선의 해다(프랑스는 4월). 한국과 프랑스의 대선 연도는 2002년 이래로 겹친다. 한국은 1987년 이래 5년 단임제이고, 프랑스는 2002년 이전까지 7년 연임제였으나 법 개정을 통해 5년 연임제, 2008년 5년 중임제로 바뀌었다. 

한국에선 후보자의 다수 득표가 그대로 당선으로 연결되지만, 프랑스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2위 득표자를 상대로 2주 후 결선투표를 실시해 당선자를 결정한다. 한국 대선은 평일을 특정공휴일로 지정해 실시하지만 프랑스에선 대선 포함, 모든 선거를 일요일에 행한다. 
 
프랑스 대선후보들. 왼쪽부터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극우 지도자 마린 르 펜, 보수당 후보 발레리 페크레세, 극우 무소속 후보 에리크 제무르.
 프랑스 대선후보들. 왼쪽부터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극우 지도자 마린 르 펜, 보수당 후보 발레리 페크레세, 극우 무소속 후보 에리크 제무르.
ⓒ AP/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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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경우는 4명의 지지율 상위권 후보가 모두 우파다. 그중 두 후보가 극우파라는 게 인상적이다. 좌우 이념 대결은 사실상 소멸상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 지지로 추락한 좌파진영은 예비선거를 통해 후보 단일화하자는 사회당 A.이달고의 제안에도 시큰둥한 모습이다.

프랑스의 경우, 여론조사로 나타난 대선 제1이슈는 '구매력 회복'이다. 마크롱 정권하의 프랑스 거시경제 지표가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실업률은 7.4%(2022년 2월 현재)로 2008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고, 경제성장률도 지난해 7% 상승에 이어 올해 중반까지 3.2%를 유지할 전망이다. 

마크롱은 '2027 완전고용'을 이번 대선 공약으로 내걸 계획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낮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청년실업률은 OECD 국가 중 상위권(약 19%)에 위치해 있다. 7% 성장률은 2020년 –8.8%(세계금융위기로 인한 2009년 3.9%의 2배 이상 수치)의 기저효과로 인한 반등일 뿐이다.

'구매력 회복' 이슈는, 낮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가스·전기·유류세 인상으로 인한 소비자 물가상승과 코로나 19로 인한 소비 부족 때문에 나온 것이다. 프랑스의 또 다른 대선 이슈는 '제조업 육성'이다. 변변한 수출상품이 없는 프랑스는 만성적 무역수지 적자를 겪고 있으며, 2021년 적자규모는 847억 유로(약 962억 달러)다. 

대선 이슈의 차이

한국의 경우, 현 문재인 정부에서 발생한 부동산 폭등과 무주택자들에 대한 대책이 대선의 가장 큰 이슈이자, 대선후보들의 제1공약으로 떠올랐다. 그 다음 순으로  2030 청년 일자리, 코로나로 인한 소상공인 대책, 젠더갈등, 원전 폐기 여부, 연금개혁, 기본소득, 주4일제, 4차산업혁명 시대의 과학기술 선점, 지방균형발전 그리고 한미일 군사 외교 관계 등이 대선 이슈와 공약으로 제기됐다.

한국에서 큰 대선 이슈가 되고 있는 집값 폭등과 무주택자 대책은, 프랑스 캠페인에선 다소 미미한 편이다(아래 그래프 참조). 마크롱을 비롯한 주요 후보들은 인구 9%의 주거 불편자들을 위해 사회주택(HLM,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건설과 불량주택 개선으로 응답하고 있다. 단, 발레리 뻬끄레스와 에리크 제무르는 무슬림들의 밀집거주로 인한 도시 게토화(이슬람화)를 제기하며 사회주택 건설 증대를 반대하고 있다.

한국에서 주요 후보들간 TV토론에서 나왔던 연금개혁은, 프랑스에서도 두 번째 이슈로 자리매김한다. 마크롱은 지난 2017 대선 캠페인에서 연금개혁(연금 개시 연령을 지금의 60세에서 62세로 상향조정)을 약속했다. 집권 후 이를 시행하려 했으나 벽에 부딪혔다. 이번 대선에서 현상유지를 제안한 마린 르 펜을 제외하고, 주요 후보들 대부분이 연령을 높이자는 안을 내놓고 있다.

재생에너지 대신, 원전 유지 또는 추가 건설은 프랑스 주요 후보 모두가 내세웠고, 사회당 이달고 후보마저 '추가 건설은 없되, 기존 발전소 가동을 연장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기본소득(le revenu universel)에 대해서는 주요 후보 모두가 세금 인상의 어려움을 들어 난색을 표했다. 한국 대선에서 청년층을 대상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젠더 이슈 또한 프랑스 대선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민 이슈 폭발,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아래 그래프에서도 나타나듯이, 한국에 없는 프랑스 대선의 특이한 이슈는 '이민'과 그에 관련된 이슈들(치안, 테러)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민 이슈로 인한 극우파의 약진은 국민전선(Front national) 쟝-마린 르 펜(J-M. Le Pen)이 결선에 진출했던 2002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전까지 중도좌우파 대결이었던 결선 공식이 그때 깨졌다. 그리고 2017년 대선에선 쟝-마린 르 펜의 딸인 마린 르 펜(M. Le Pen)이 결선에 올랐다. 금년 대선에선 여론조사 지지율 상위권 4명 중 극우파 후보가 2명이 올라왔으며, 좌파 후보는 아예 없다.
 
프랑스 대선 이슈, 출처 Les Echos 2021. 10.21.
 프랑스 대선 이슈, 출처 Les Echos 2021. 10.21.
ⓒ Les Ech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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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대선 이슈(위 그래프의 한국어 번역)
(가스 전기 유류 인상으로 인한) 소비자 물가상승, 구매력 감소 : 55%
사회보장(의료, 연금 등) : 48%
치안 : 41% 이민 : 40% 테러 : 35%
일자리 : 34% 환경 : 34% 사회불평등 : 31% 교육 : 27% 세금 : 26%
부채 : 20% 주거 : 15% 세계에서의 프랑스 역할 : 13% 유럽연합 : 10%
세계화 : 6% 기타 : 4%


프랑스 대선과 관련한 현지 언론의 언급을 살펴보자. 

"프랑스 대통령 선거를 몇 달 앞두고, 극우파가 언론과 정치권을 독점하고 있다.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극우파의 유력한 두 대선 후보 마린 르펜과 외국인 혐오 성향이 강한 언론인 에리크 제무르가 35%를 차지했다. 프랑스에서는 전례 없던 일이다. 좌파의 부진과 분열을 틈타 이들이 밀어붙이는 공약 중 '국민 우선(Préférence nationale)'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출처 :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2021. 12.1

이민문제는 프랑스 선거판을 흔드는 중요 이슈가 되어버렸다. 전통 우파(공화당 Les Républicains) 페크레세 후보마저 여론을 의식한 대이민 강경 입장을 드러내 극우파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2월 13일 7000명이 모인 빠리 제니뜨 공연장 실내 집회에서 페크레세는 '나는 서류상의 프랑스인이 아닌 뼛속까지 프랑스 정신이 박힌 진정한 프랑스인들이 주인되는 프랑스를 만들길 원한다'고 외쳤다. 그보다 앞서 그녀는 극우파의 인종주의 음모론인 '거대한 대체(le grand remplcement)'를 인용하기도 했다." - 르 몽드 2022. 2.14.

"'거대한 대체'론은 무슬림 등 비유럽인 이민자가 몰려와 백인과 기독교 문명을 대체한다'는 인종주의 이론이다. 비난이 일자, 그녀는 '나는 통제되지 않는 이민, 프랑스 국민을 해체시키는 실패한 통합을 강조하고자 했을 뿐이며 그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후보다. 마크롱은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으며, 극우파들이 그 허점을 공략하고 있다. 마크롱은 프랑스를 매우 거친 국가로 몰아가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 프랑스 국영 라디오 Franceinfo 2022. 2.22. 


프랑스 대선의 이민 이슈 폭발은 장차 한국 선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민 유입에 있어서 보다 성찰적이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품격을 잃어가는 한국 대선

프랑스 대선 정국에 비하면, 한국 대선 정국은 대선후보와 그 가족 관련 신변잡기성 언론 보도량이 더 많아 보인다. 특히 이번 대선에선 국가의 미래비전 제시보다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포퓰리즘 공약의 남발과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이 어느 대선 때보다 심하다. 국가적 행사이기도 한 대선의 격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의 선거운동은 주로 실내와 TV토론으로 진행된다. 시끄러운 거리 유세는 없다. 한국도 선진국 위상에 걸맞게, 선거캠페인을 실내와 TV토론 위주로 바꾸길 권하고 싶다.

후보들은, 특히 TV토론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도록 딱딱한 건조체 화법보다는 스토리텔링 화법의 연설이나 토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비록 건조체 발언이 나오더라도 다양화된 전자매체를 통해 이를 해설해 주는 역할은 정당과 언론, 그리고 시민단체의 몫이다.

더 중요한 것은 후보의 공약 안내서를 선거일로부터 적어도 2개월 이전, 거리의 일정 공간에서 배포하도록 하거나 각 가정에 배달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단순한 배달이 아니라 가정 안에서도 쉽게 토론될 수 있는, 국민의 눈높이에 와 닿는 맞춤형으로 제작돼야 한다고 본다.

한국의 대선 TV토론은 지지율 변화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역주의 몰표 성향 혹은 지지층 결집 현상 탓이라고 본다. 이로 인한 확증 편향성과 몰표 행태를 바로잡는 대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지금 수준의 대선에서 과연 '미래'를 찾을 수 있을까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으로 25일 오후 서울 상암 SBS 오라토리움에서  열린  제20대 대선 제2차 초청후보자토론회에서 후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정의당 심상정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으로 25일 오후 서울 상암 SBS 오라토리움에서 열린 제20대 대선 제2차 초청후보자토론회에서 후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정의당 심상정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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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민(nation)은 7, 8개의 민족(ethnic people)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을 하나의 국민으로 만든 계기는 프랑스 혁명(1789)이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 중 일반의지(general will) 이론을 바탕으로 초석을 놓고 이후 100년의 정치적 격변을 거쳐, 제3공화국 때 제도완성을 통해(1870년대) '국민'이라는 통합이 이뤄졌다.

1958년 샤를르 드 골의 정계 재등장으로 출발한 제5공화국에서의 선거 투표 행태를 보면, 비록 프랑스가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지만 선거지형은 민족 중심(우리식으로 말하면 고향 중심)이 아니라 '국민적 차원'의 이념 또는 정책 중심으로 나타난다. 최근에 이 이념지형이 퇴색되는 경향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민족지형에 따라 투표 결과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반면 한국의 선거지형은 1987년 이래 영호남의 뚜렷한 몰표현상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언론은 이념별이 아니라 지역별 여론조사를 경쟁적으로 내놓으면서 지역주의 투표를 조장하고 있으며, 선거에 나선 정당 후보들은 저마다 지역 연고를 대놓고 드러낸다.

나는 한국민의 투표행태는 진정한 민주주의 방식이라 할 수 없다고 본다. 이는 한국이 아직 국민국가(nation-State) 체제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이 경제적으로 선진국 수준에 올라왔다고 자타가 평가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부족연맹국가(tribal federation State)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정치사회적으로 수많은 의제가 난립하지만,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바로 '진정한 국민국가의 틀을 언제, 어떻게 완성하느냐'다. 이를 위해 지역 몰표를 방지하는 선거구, 투표방식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지역주민들의 한 단계 높은 이성적 정치의식이 대선판을 바꾸는 때는 과연 언제 올 것인가?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신만섭씨는 평화통일시민연대 남북경협위원장입니다. 프랑스 국립 뚤루즈 사회과학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 취득 후, 국내 다수 대학에서 강의했습니다. <프랑스식 사회민주주의의 한국 적용 가능성> <사회적 경제의 이론적 고찰> <유라시아 물류통로의 정치경제적 파급효과> 등 다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태그:#2022프랑스 대선, #2022한국 대선, #좌우 이념 대결, #이민 이슈, #마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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