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21 16:07최종 업데이트 22.03.2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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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왕적 대통령제를 내려놓는 방식을 제왕적으로 하신다는 말씀이신데 그것은 결단하지 않으면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공식 발표한 뒤 질의응답 시간에 모 기자가 이전 부지 결정을 제왕적으로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에 윤 당선자는 결단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제왕적 결정'과 '결단'의 차이는 설명되지 않았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내려놓기 위한 제왕적 결정. 그것이 결단이라고 불리려면 최소한이라도 민주적 절차와 민의를 총화하려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야 했다. 하지만 그런 절차와 과정은 생략되었다. 절차와 과정이 무시된 결정. 독단이고 제왕적 권력의 남용이다. 결단이라는 건 미사여구일 뿐이다.


지난 2020년 11월 24일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하여 직무집행정지를 명령하고 징계를 청구하자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청와대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이어갔다.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은 같은 달 27일 낸 성명에서 '합법을 가장한 독재의 길'을 가고 있다고 문재인 대통령을 성토했다.

지금 그때와 같은 잣대로 윤석열 당선자를 '결단을 가장한 독재의 길'을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지나친 억측이라 할 수 있을까.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고 국가 안보 심장부인 국방부 청사를 개편하는 데에는 막대한 재정이 투여된다. 또 수천 명의 공무원과 장병과 부서가 이동해야 한다. 임기도 시작하지 않은 대통령 당선자가 결단해서 될 문제인가. 인수위 법에도 없는 월권 행위다.

'결단'이라는 미사여구

소문도 많다. 국민의힘 이재오 상임고문은 17일 CBS 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당선자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국방부로의 이전을 풍수지리설을 믿는 것이라 주장했다. 전시 컨트롤타워가 되는 국방부로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북한과의 관계 악화를 염두에 둔 조치라는 주장도 있다. 후보 시절 말한 선제 타격 주장과 맞물리는 이른바 전쟁 준비설이다.

모두 믿고 싶지 않은 소문이고 확인할 수도 없는 억측이다. 국민의힘이나 대통령 인수위 처지에서 보면 펄쩍 뛸 만한 모함이라고도 할 만하다. 그러나 되짚어 보면 소문의 단초는 졸속 이전을 추진하는 윤석열 당선자가 제공했다.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하고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았다면 풍수지리설, 전쟁준비설 등의 억측이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민심을 동요시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이 하루아침에 용산 이전으로 바뀐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군사보안 구역인 국방부에 대통령 집무실을 마련하면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건지, 어느 것 하나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으니 억측이 소문으로 바뀌는 것이고, 소문이 산불처럼 번지는 것이다.

지난 18일 당선자 김은혜 대변인은 '봄꽃이 지기 전에는 국민 여러분께 청와대를 돌려드리겠다'라고 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한국 역사에서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청와대에서 나오겠다는 것이고 권력을 국민께 돌려드리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또한 듣기 좋은 말의 반복일 뿐 속내는 '절대로'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고집 같은 의지(?)의 재천명이었다.

취임식이 불과 40여 일 남았다. 40여 일 만에 국방부 청사 일부를 비우고 리모델링하고, 국방부 부처들이 도미노처럼 이사짐을 싸야 한다. 국민에게 청와대 봄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데, 이 이유로 납득이 되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당선자는 청와대에서 임기를 시작하면 다시 광화문이나 용산으로 나오기 어렵다고 했지만, '이전 준비위'라도 꾸려서 예산 계획 세우고 국회 동의받아 차분히 옮기는 게 그렇게 어렵고 불가능한 일인지 되묻고 싶다.

사람 장막 걷는 게 우선

청와대가 구중궁궐이 된 이유는 비단 지리적 여건 때문만은 아니다. 보안과 폐쇄성 때문에 청와대가 민의의 통로가 막힌 구중궁궐이 되었다면, 절대적 보안과 국민의 접근을 엄격히 제한하는 국방부 내의 대통령 집무실 설치는 청와대보다 더한 구중궁궐이 됐으면 됐지 소통의 광장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통령과 원활하게 소통한다는 것은 드나드는 시민을 위해 주민센터 문턱을 낮추겠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겠다는 이전 대통령들의 구상조차도 대통령과 직접 소통을 늘리겠다기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하물며 국방부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면서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한다고? 그건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군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었던 일이라는 비판이 이유 없어 보이지 않는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내려놓고 국민과 소통을 넓힐 의지라면 청와대 담장을 탓하기보다는 사람의 장막을 걷는 게 우선이다. 대통령에게 민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이유, 대통령이 구중궁궐에 갇힌 이유는 청와대 담장이 높아서가 아니라 대통령 주변에 능력 없고 욕심 많은 사람들이 인의 장막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대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청와대 측근들의 전횡이 도마에 오르지 않은 적이 별로 없다. 보수 정권에서는 친이·친박, 진보 정권에서는 586 운동권 세력이 성토의 대상이었다. '윤핵관'이라고 과거 친이·친박 세력과 다른가. 586 운동권 세력보다 능력과 도덕성이 더 앞서는가. 국민에게 비난받았던 사람들이 당선과 더불어 중용되고 과거 흠결 인사들이 다시 중용되는 당선자 인수위. 제왕적 대통령과 소통의 부재는 이렇게 생겨나고 강화되는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발표에 공약을 지킨다는 박수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임기도 시작하지 않는 당선자가 국가 안보의 핵심인 국방부를 내쫓듯해도 되느냐는 볼멘소리도 넘쳐난다. 국민은 청와대 봄꽃 구경 갈 만큼 한가하지 않다. 코로나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유가·곡물가 급등에 너나 할 것없이 죽을 맛이다.

좀 차분히 취임을 준비할 수 없나.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이리도 급하고 중차대한 일인가 말이다. 전두환은 쿠데타를 구국의 결단이라고 불렀다. 당선자의 진의를 그렇게까지 곡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당선자는 낮춤말이니 당선인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억지 주장만큼 이번 대통령 집무실 이전 '결단'은 제왕적이고 권위적이다. 

청와대 봄꽃, 당선자가 즐기시고 국민에게 돌려줘도 비난할 국민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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