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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지구환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즈음 나는 공교롭게도 '백수'가 되었다. 직장상사와 몇 개월간 지난한 갈등을 겪던 끝에 마침내 퇴사했던 것이다. 부하직원은 결단코 자신의 대화 상대가 될 수 없다는 확고한 결론을 가진, 권위주의적 직장상사와의 갈등은 견디기 어려웠다. 

퇴사 직후 나는 책을 썼다. 2020년 가을에 나온 책 <해나(한나) 아렌트의 행위이론과 시민 정치>는 조촐하나마 그 결실이었다. 그 책이 나오기 직전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에 편저자 중 하나로 참여하기도 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인데도 운좋게 비대면 강의를 몇 차례 의뢰받아 수행할 수 있었다. 내 방 컴퓨터 키보드는 그런저런 작업을 감당하느라, 거의 온종일 타닥타닥 소리를 냈다. 

여러 작업들 사이사이에 나는 짬짬이 영화를 보았다. 팬데믹 시대인지라 극장에 직접 가서 볼 수 없었기에 주로 컴퓨터로 보았다. 헌데 한 편 한 편 결제해가며 영화관람을 하는 건 아직 이름만 번듯한 '프리랜서(지식소매상, public intellectual)' 주제에 아무래도 무리가 되지 싶었다. 넷플릭스가 눈에 들어왔다. 얼른 계정을 만들었다.     

초기엔 넷플릭스 접속이 그리 빈번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보게 됐다. 미국의 금주법 역사를 다룬 작품이었는데(2022년 현재 넷플릭스 서비스 종료), 재미있고 유익했다. 그날부터 나는 시간이 날 때면 넷플릭스에 들어가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주로 관람했다. 작품과 작품 사이에 내 생각이 뒤섞이지 않도록 짤막하게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럴 거면 차라리 정식으로 리뷰를 써두자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리뷰를 한두 편 쓰다 보니 이걸 나만 읽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은 마음에 이르렀다. 그때 반짝 떠오른 것이 <오마이뉴스>였다. 수년간 잠정중단했었던 시민기자 아이디를 재가동했다. 

두 번의 제안 

내가 알고 싶었던 주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찾아, 집중해 관람하고, 생각을 정돈하고, 리뷰를 작성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선호하는 영화들의 주제가 대체로 두 방향으로 압축되는 게 보였다. 하나는 인간의 '죄성'을 사색하는 범죄ㆍ시사 다큐멘터리 작품들, 다른 하나는 인간의 '파괴'를 성찰하는 환경 다큐멘터리 작품들이었다.  

환경 다큐멘터리 작품 리뷰 원고를 두어 편 올렸을 때였을까, 뜻하지 않게 <오마이뉴스> 편집팀에서 전화가 왔다. 환경 다큐멘터리 분야를 따로 떼어 집중하는 영화평 연재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나는 그 제안을 적극 수용했다. 연재 원고 제목은 '환경 다큐 보따리'로 정했다. 글을 연재하는 동안 낯선 독자들과 소통하는 의미있는 순간들도 더러 생겼다. 파괴되는 지구환경에 적극적 관심을 가진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느낌이 들어 뿌듯했다. 

그렇게 '환경 다큐 보따리'를 연재하던 중, 30년 이상 환경운동 분야에서 활동해온 유미호 센터장(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의 연락을 받게 됐다. "함께 책을 냅시다!"는 제안이었다. 유 센터장이 기획한 책의 주제는 '파괴되어가는 지구환경에 대한 기독교 분야의 염려와 대안'이었다. 

지구환경과 생태학 분야에 대해서는 내가 문외한에 다름 없었으나 <오마이뉴스> '환경 다큐 보따리'에 연재한 글들을 조금씩 손봐서 묶으면 좋겠다 싶어, 유 센터장의 기획을 받아들였다. 앞서 <오마이뉴스> 편집팀의 제안을 적극 수용했을 때의 심정으로.
 
환경 살림 80가지
▲ 책 표지 환경 살림 80가지
ⓒ 신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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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용 행동이 낳은 책이 바로 <환경 살림 80가지>다. 2022년 2월 22일에 출간되었다. 파괴되어가는 지구환경을 살리자는 관점에 입각하여 '환경 살림' 주제들을 80가지로 간추린 책이다. 아래에 목차 일부를 예시해보겠다. 
 
- '뜻밖의'가 아니라 '뜻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여야
- 정말 지구온난화를 멈추고 싶은가? 육식을 멈추자!
- 반지의 날을 아세요? 
- 비닐봉지 대신 종이봉투를 쓰면 괜찮을까?
- 옛날 옛날에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가 '있었'어요
-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재판, 그리고 재판에 대한 기억
-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에 대한 우리 모습은
- '성취중심'과 '생명중심' 사이에서
 
끝으로 이 책의 특별한 점을 한 가지만 말해보겠다. 이 책엔 하나의 주제를 담은 글 한 편이 끝날 때마다 '나(읽는이)의 물음'을 쓰는 공백이 있다. 
 
읽는이가 자신의 궁금증을 문장으로 쓸 수 있는 공간.
▲ "나의 물음" 읽는이가 자신의 궁금증을 문장으로 쓸 수 있는 공간.
ⓒ 신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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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이가 스스로 질문하는 책 

흔히 책이 질문을 한다. 글쓴이가 읽는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생각할 주제를 제공하는) 셈이다. 각종 입시용 참고서나 문제집은 아예 드러내놓고 글쓴이가 읽는이에게 질문을 하고 응답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편집된다. 그러나 <환경 살림 80가지>는 그 반대다. 읽는이가 스스로 질문을 만들도록 요청한다.    

몇 년 전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장에서 한국의 기자들을 콕 집어 질문 발언 시간을 배려해줬던 '사건'이 있었다. 그날 안타깝게도 한국의 기자들 아무도 질문을 하지 못했다. 질문할 게 없어서였을까? 그렇지 않았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단순히 영어가 부족했기 때문도 아니었을 것이다(필요하다면 통역을 부탁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추측컨대 그날 기자회견장에 앉아있었던 우리의 기자들에겐, 상대가 응답하게끔 자기 머릿속에 떠도는 여러 질문들 중 몇 개를 선택해 자신의 문장으로 직접 만들어보는 훈련, 이를테면 '소통을 위한 질문 만들기 훈련'이 조금 부족했었던 게 아닐까.  

살다 보면 머릿속에 온갖 물음들이 어지럽게 떠다닐 때가 참 많다. 여러 물음들이 얽히고설켜 정작 뭐가 제일 궁금한지 혼란스러운 지경에도 빠지고, 시간이 흐르며 궁금증 자체를 잊기도 한다. 그래서 머릿속 물음들을 그때그때 문장으로 만드는 '작문'을 해보는 습관을 지니는 게 유익하다. 

게다가 궁금한 것을 의문형 문장으로 작성해보는 작업은 그 질문에 대답할 사람을 예측하며 상상하는 정신활동을 동반한다. 즉, 의문형 문장 만들기 자체가 소통 훈련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환경 살림 80가지>는 환경 살림 주제에 관련된 머릿속 수많은 물음들을 의문형 문장으로 직접 써보도록 읽는이들을 자극한다. 그것도 무려 여든 번이나! 

그와 같은 자극에 대해 이 책 읽는이들께서 적극 반응하면 참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어떤 점에선 <환경 살림 80가지>를 '미완의 책'으로 불러도 좋다. 글쓴이들이 책을 쓰다 말았다는 의미에서 미완의 책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질문을 추가하면서 읽는이들마다 그리고 집집마다 조금씩 다른 색깔과 내용으로 이 책을 최종적으로 완성해간다는 의미에서…. 

환경 살림 80가지

유미호, 이인미 (지은이),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기획), 신앙과지성사(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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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한나) 아렌트의 행위이론과 시민 정치(커뮤니케이션북스, 2020)],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 [환경살림 80가지] 출간작가 | She calls herself as a ‘public intellectual(지식소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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