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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재단 운영진과 회원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일터에 대해 격주로 글을 씁니다.[편집자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 강은미 정의당 의원 등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관계자들이 지난 1월 2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에 따른 입장을 발표하며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적용 제외 폐지 등 법안 전면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 강은미 정의당 의원 등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관계자들이 지난 1월 2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에 따른 입장을 발표하며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적용 제외 폐지 등 법안 전면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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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7일, 더 이상 일하다 죽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자며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 제1조에서 '사업장의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인명 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등의 처벌을 규정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노동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법은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 법은 사업주 등에게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할 안전보건조치의무를 부과하고 이러한 의무를 다하지 않아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처벌하는 방식으로 중대재해 발생을 억제하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과거와 달리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해 노동자들의 안전을 돌보지 않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어떠한 이윤추구도 온 우주와도 같은 인간의 존재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사회의 상식으로 자리 잡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가 그동안 당연하지 않았고, 지금도 사실 그리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다. 노동자-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법이 부여하는 의무를 '기업의 부담'이라고 인식하며 과도하다고 주장하는 등 경영계의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문제가 생기면 경영책임자가 처벌받는 문제이니 예민한 것은 예상할 수 있으나 중대재해처벌법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여전히 인식의 차이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그 '부담의 실체'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부담의 실체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서 HDC현대산업개발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참사 책임자 처벌과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촉구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서 HDC현대산업개발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참사 책임자 처벌과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촉구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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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사업주에게 노동현장에서의 안전보건에 관한 의무를 부여했지만 위반에 관한 제재가 미미했다. 대규모 공사에서 노동자 몇 명이 추락사해도 합의금으로 마무리하면 기업이나 경영책임자는 그 공사에서 막대한 이윤을 취할 수 있었다. 업무상과실치사로 기소되어도 현장소장 수준에서만 기소가 되고, 유족들과 합의하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받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기업의 부담수준이 미미하니 추락사를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 설치 비용은 투입되지 않고 다시 사고는 반복되었다. 즉 기업 입장에서 중대재해는 그리 크게 고려할만한 '비용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안전보건조치의무를 다 하지 않았을 경우 본사에 계신 경영책임자인 '회장'까지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처벌수위까지 높아진(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으로 기업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비용 문제로만 처리해야했던 과거와 달리 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데 발생하는 비용을 고려해야한다. 뿐만 아니라 경영책임자의 형사처벌을 막아야하는 문제까지, 풀어야할 과제가 늘어나게 되었다. 기업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과거가 문제였던 것인데, 새삼스럽게 새로운 부담이 늘어났다고 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성찰이 없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기업은 자신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발생할 수 있는 중대사고에 대하여 '회장님'께서 처벌까지 받는 것은 아무래도 억울한 모양이다. 중대사고 발생에 대해 경영책임자가 처벌받도록 하는 법은 아무래도 부당하다고 한다. 중대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무규정에 대하여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다며 역시 부당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그러나 안전을 위해 만들어야할 체계라면 그러한 체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지 법을 탓할 일이 아니다. 

기업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만드는 것이 막막하다고 느낀 이유는 그동안 사고발생을 막기 위해서 그러한 체계를 만들어 대응해본 적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노동현장의 사고발생이 이러한 체계를 갖추지 않은 구조적 문제라는 인식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만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막막하게 느껴지는 것이지 불명확하지 않다.

기업은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이러한 체계를 만드는 것이 사회적 의무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노동이 이루어지는 전 과정에서 위험요소를 찾고 노동자들에게 물어 현장을 개선하고 안전보건체계를 세워나가는 작업이 시간과 노력이 투여돼야 하는 것이긴 하나, 명확하지 않거나 불가능하지는 않다.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제대로 확립하고 의무를 다했는데도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의무를 다한 것을 고려하여, 그에 합당한 처벌은 법원에서 결정될 것이다. 

이 법 제정부터 시행령 제정과정 및 지금까지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경영계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위험을 방지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그로인해 시간부족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별로 못 들어본 것 같다.

대신 시행초기부터 법이 불분명하고 모호하여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대기업들은 그들을 대리하는 대형로펌들을 통해 법률 개정을 넘어서 위헌 소송까지 준비하면서 이 법의 시행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법에 문제점이 있다면 고쳐나갈 수는 있다. 그러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사회적 설득과 이해의 과정에서 수정, 보완할 일이지 없어져야 할 법률로 대하는 것은 기업이 사회적 의무를 다하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주장에 불과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가치와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

다수의 기업들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여 노동현장을 안전한 일터로 만들기 위한다면 사실 안전보건에 관한 전문가들이 바빠져야 할 텐데, 현재 이 법 덕분에 가장 분주한 곳은 법률시장이다. 대형로펌들은 안전보건전문가들을 섭외하여 대응팀을 꾸리고 전문성을 대대적으로 알리면서 기업자문을 하고 있는 듯하다. 기업들도 제정된 법을 준수하기 위해 법률적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의뢰인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일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을 제대로 준수하는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 우려된다. 그 법률자문이라는 것이 기업의 이익만을 고려해 이뤄질 경우 결국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경영책임자의 형사 처벌을 피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에 초점이 맞춰진 자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두 달여가 조금 지났다. 법 시행 이후 발생한 사고들이 법 적용을 받으면서, 이제 이 법이 지닌 의미와 한계들이 속속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기업은 이윤보다 노동자의 생명을 중요하게 다루겠다는 것을 기업 가치로 받아들인 뒤에 이 법에 대한 수정 의견을 제시했으면 한다. 그렇지 않고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법에 대해 모호함, 존재 여부를 논하는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를 다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겠단 반발로만 비칠 뿐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사)김용균재단 감사이자, 민변 노동위에서 활동하는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입니다.


태그:#김용균재단, #중대재해처벌법, #명확성, #모호함, #존재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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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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