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19 06:03최종 업데이트 22.04.19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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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6일 싱가포르 교육부는 8개의 초등학교와 10개의 중학교를 향후 3년에 걸쳐 통폐합한다고 발표했습니다. 2019년 28개의 학교가 통폐합된 지 3년 만에 또 추가로 문을 닫습니다. 이번에 문을 닫게 되는 학교 중에는 1926년에 개교했고 리콴유 초대 총리가 다녔던 텔록 쿠라우(Telok Kurau) 초등학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학교가 문을 닫아야 하는 이유는 짐작하는 것처럼 낮은 출산율로 인한 학생수의 감소 때문입니다. 싱가포르의 2020년 합계 출산율은 1.1로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인구 1천 명 당 출생아 수를 뜻하는 조출생률은 8.5로 싱가포르가 독립하던 해인 1965년의 29.5에 비하면 3분의 1도 안 될 정도로 떨어졌습니다.

출산율 저하의 주요 요인으로는 젊은 층의 결혼 기피 현상을 꼽고 있습니다. 2020년 싱가포르 인구센서스 결과에 따르면 25~29살 여성의 독신율이 69%로 10년 사이 15%p나 증가했습니다. 30~34살 여성의 독신율 역시 32.8%로 7.7%p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혼을 늦게 하다 보니 30대 기혼 여성의 경우 평균 자녀수는 1.4명으로 그 전 세대인 40대 기혼 여성의 1.76명에 비해 크게 낮습니다.
 

2020년 싱가포르 인구센서스 자료. 지난 10년 사이 20대와 30대의 독신률이 크게 늘었습니다. ⓒ 싱가포르 인구센서스 자료

  
거기에 더해 교육수준에 따라 독신율 및 평균 자녀수도 차이가 큽니다. 40대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졸 이상의 학력인 경우 중졸 이하의 학력에 비해 두 배 이상 독신율이 높습니다. 결혼을 한 경우에도 대졸 이상 여성의 평균 자녀수는 1.66명인데 반해, 중줄 이하의 여성은 2.01명으로 차이가 많이 납니다. 지금은 성별과 상관없이 대다수가 고등교육을 마치는 시대이기 때문에 평균 자녀수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출산율 하락은 자연스레 노령화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2010년 젊은 층의 노인 부양 비율이 13.5%에서 2020년 23.4%로 10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때문에 싱가포르 정부 차원에서 출산율 재고와 인구 증가를 위한 많은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신생아 위한 현금성 지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베이비 보너스(Baby Bonus)라 부르는 현금 지원입니다. 2015년부터 출산 보조금을 자녀수에 따라 한 명당 8천 달러(약 720만원)에서 1만 달러 (약 900만원)를 지급합니다. 코로나 이후 출산 계획을 늦추는 경우가 많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2020년부터는 기존 보너스에 3천 달러(약 270만원)를 추가로 지급하는 중입니다.
 

출산지원금, 양육비 보조, 세금지원에 아기 돌봄을 위한 도우미 지원금까지 다양한 출산 지원 혜택을 소개하고 있는 정부 출산 지원 사이트 ⓒ Made for Families

  
아이의 성장 과정에 필요한 교육비와 의료비 지원을 위한 CDA(어린이 발달 계좌)라는 제도도 있습니다. 출산과 함께 아이의 이름으로 별도의 계좌를 만들어 정부에서 3천 달러 (약 270만원)를 기본으로 지급합니다. 거기에 부모가 일정 금액을 적립하면 그 금액만큼 정부가 1만 5천 달러(1350만원)한도 내에서 추가로 지급합니다. 어림잡아 출산에 1천만 원, 보육에 1500만 원이 지원되는 셈입니다.

신생아를 위한 의료계정이 별도로 있는데 여기에 출산과 동시에 4천 달러(약 360만 원)가 적립되고 이 금액으로 의료비 및 신생아 의료보험 등을 가입할 수 있습니다. 신생아에게 필요한 예방 접종은 모두 무료이며, 필수 항목이 아닌 경우에도 일부 지원을 받아 싼 가격에 예방 접종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모 위한 지원과 이민 정책

신생아를 위한 현금 지원 말고 출산한 부모에게 주어지는 혜택도 있습니다. 소득세를 낼 때 자녀수에 따라 최대 2만 달러(1800만 원)까지 세금을 환급 받을 수 있습니다. 출산을 위한 최소 16주의 유급 출산 휴가 말고도 자녀의 나이가 7세가 될 때까지 매년 6일의 육아 휴가가 보장이 됩니다.


신혼부부의 주거 안정이 출산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 하에 공공아파트를 분양할 때 신혼 부부 몫의 비율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는 중이고, 21세 이상의 남녀가 함께 신청을 한다면 약혼만 한 상태에서도 분양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내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겁니다. 반면에 독신자의 경우에는 35세 이후에나 분양 자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여러 대책들이 싱가포르의 출산율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급격하게 떨어지던 출산율을 더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버팀목 정도의 역할 정도를 하고 있습니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문제는 외국인의 유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경제 활동이 가능한 젊은 층의 수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전체 569만 명의 인구 가운데 시민권자는 62%인 352만 명이고, 저 같은 외국인 영주권자가 약 10%인 52만 명가량 됩니다. 나머지 162만 명은 비자를 발급받아 일정 기간 일하는 외국인입니다. 그 30% 가까운 외국인을 싱가포르 인구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갑니다.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 출산율 하나에만 목매는 게 아니라 이민정책까지 함께 활용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출산 지원책

지금껏 싱가포르의 저출산 문제와 그에 대한 싱가포르 정부의 대책에 대해 살펴봤는데 사실 남의 나라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싱가포르보다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한국의 조출생률은 2020년 7을 기록해 세계 평균인 17.9의 절반도 안 되고, 저출산이 심각하다는 싱가포르의 8.5에 비해서도 한참 더 낮습니다. (2019년에는 5.9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조출생률 (인구 1천명당 출생아 수) 비교. 세계 평균은 17.9인데 한국은 7로 싱가포르의 8.5보다도 낮습니다. ⓒ 월드뱅크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 있을까요? 한국도 출산장려금이 있습니다. 다만 지자체별로 다 달라서 수도권의 경우 그 혜택이 크지 않습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건 올해부터 도입되는 첫 만남 이용권과 영아수당이 있는데 출산 시 200만원의 바우처가 지급되고, 생후 24개월까지 월 30만원이 지급됩니다. 기존의 아동수당은 월 10만원씩 만 8세까지 확대 지급됩니다. 그 외에도 출산가구의 경우 3년 동안 전기료를 매달 30% 할인해 주기도 하고, 건강보험에서는 임신·출산 진료비를 최대 140만원까지 지원합니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 연합뉴스

 
지금 하고 있는 것 외에 곧 들어설 윤석열 정부에는 추가로 어떤 대책이 있나 싶어 뉴스를 찾아봤습니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암 치료의 특효약은 결혼"이고 "출산을 하면 애국이고 셋 이상 다산까지 하면 위인"이라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고 합니다. 비슷한 주장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독일 나치 시대에 여성은 출산과 육아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다산을 하면 훈장을 줬습니다. 자녀가 8명이면 금십자, 6명이면 은십자, 4명이면 동십자였습니다. 시상식은 히틀러의 어머니 생일인 8월 12일에 열렸습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는 "출산을 기피하는 세대에게 일종의 부담금을 물리"자며 "출산 기피 부담금"을 주장하기도 했답니다. 옛 로마 제국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젊은이들에게 독신세를 걷고 50세를 넘긴 독신여성의 상속권을 박탈하고 재산을 몰수했던 일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 ⓒ 인수위사진기자단

 
싱가포르는 저출산 대책으로 현금 보조, 세금 감면, 휴가 보장, 결혼 및 주거 안정 지원 등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한 대책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있는데, 새로 들어설 정부는 주술과 선동, 협박으로 출산율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을 기용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이 계속된다면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인구가족부가 아닌 출산부를 따로 만들어도 출산율이 올라가기는커녕 도리어 또 다른 바닥을 확인하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나치시대 혹은 로마시대의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장관 후보들만큼은 청문회에서 걸러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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