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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시내 모처에 마련된 후보자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시내 모처에 마련된 후보자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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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의 역사 인식이 논란을 낳고 있다. 전 <중앙일보> 편집인인 그의 이승만·박정희·전두환관(觀)이 도마에 오른 데 이어, 2013년 12월 일왕 생일파티에 참석한 사실이 보도됐다.

이번엔 일본인의 준법정신을 높이 평가한 일이 화제가 됐다(4월 27일 MBC 보도, [단독] 일본, 아시아 지배해봐서 준법정신이‥" 박보균의 친일 역사관). 일본인의 준법정신을 호평한 것이 무슨 문제가 될 수 있겠나,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박 후보자 발언의 맥락을 살펴보면 간단히 넘길 일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문제의 발언은 일왕 생일 파티에 참석한 지 4개월 뒤에 나왔다. 2014년 4월 23일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이 개최한 제239회 수요세미나에서 튀어나온 언급이다. 그 언급은 '2014,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 강의의 연사로 초대된 박보균 당시 <중앙일보> 대기자가 제1차 대전의 발발 과정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나왔다.

논란이 된 발언이 나온 배경
 
2014년 3월 8일 중앙일보에 실린 '19세 학생 프린치프의 총성, 세상을 뒤집다' '제국의 황태자는 행운의 여신을 외면했다' 기사.
 2014년 3월 8일 중앙일보에 실린 "19세 학생 프린치프의 총성, 세상을 뒤집다" "제국의 황태자는 행운의 여신을 외면했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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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가 강의했던 내용은 같은 해 3월 8일자 <중앙일보> 기사 '[박보균의 현장 속으로] 제1차 세계대전 100년, 사라예보를 가다'에도 나온다. 이것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청년들이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를 저격한 사건을 설명하는 기사다.

이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됐다. 이 사건이 빌미가 돼 그해 7월 23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를 상대로 "48시간 내에 세르비아인들의 반(反)오스트리아 활동을 막으라"는 최후통첩을 보냈고, 닷새 뒤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

박보균 후보자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의 황태자 부부 저격이 그 같은 세계사적 결과를 낳았는데도 오스트리아 정부가 그중 1명만 사형시켰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황태자 부부를 쓰러트린 가브릴로 프린치프를 포함한 7명 중에서 6명이 사형을 받지 않은 것에 관해 위 <중앙일보> 기사에 이렇게 썼다(괄호 속 내용은 원문 그대로다).

"사건은 기묘한 조합의 연속이다. 프린치프는 대역죄로 다스려졌다. 합스부르크 법정은 품격을 지켰다. 그는 사형당하지 않았다. (20세 미만 사형 금지 법률). 20세에서 27일(암살일 기준) 모자랐다. 그는 20년 징역형을 받았다. 암살단 7명 중 사형수는 20대 1명(다른 20대는 도주)이다."

오스트리아는 20세 미만에게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만 20세에서 약간 모자랐다. 그래서 사형 대신 징역형을 받았다.

이날 한림대 강의에서 박 후보자는 그를 죽이지 않은 오스트리아를 높게 평가했다. 당연히 사형을 시켜야 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품격을 지킨 사실을 호평했다. "당연히 예외적인 조처를 해야 하는데, 역시 세계를 지배했던 나라들은 예외를 잘 두지를 않습니다"라는 게 그의 말이다.

오스트리아 법률에 따르면 프린치프는 '당연히' 사형을 받지 말아야 했다. 그가 사형을 받지 않는 것이 오스트리아 법의 '원칙'이었다. 그런데 박 후보자는 "당연히 예외적인 조치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품격을 지켰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역시 세계를 지배했던 나라들은 예외를 잘 두지를 않습니다"라고 평가했다.

'전쟁 도발의 반인류성'과 '법률에 따른 사형 미집행' 사이에서

오스트리아는 1806년에 해체된 신성로마제국을 계승했다. 신성로마제국은 로마교황청의 지지 하에 서유럽 국제질서를 이끌었다. 이 제국은 서유럽에서 황제 칭호를 독점했다.

이 나라가 1806년에 해체된 것은, 나폴레옹이 1804년에 프랑스 황제가 되면서 기존의 국제질서를 약화시킨 결과였다. 신성로마제국이 서유럽의 황제 칭호를 독점하던 구조가 나폴레옹의 전쟁과 황제 등극으로 인해 무너졌던 것이다. 오스트리아가 세계를 지배했다는 박 후보자의 언급은 나폴레옹 등장 이전의 신성로마제국을 가리킨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황태자 저격 사건을 빌미로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박 후보자는 오스트리아의 전쟁 도발이 갖는 반인류적·반역사적 의의를 부각시키지 않고, 법률에 따라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사실을 '품격이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역시 세계를 지배했던 나라들"이라고 찬미했다. 그런 다음 이런 발언이 나왔다.

"이번에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이 우리는 틈만 나면 예외를 자꾸 두려고 그러는데, 미국이라든지 영국이라든지 프랑스·러시아·터키 이런 나라들 가면 느낄 겁니다. 절대 예외를 안 둡니다. 세계를 지배해봤던 나라들은 예외를 두면 순간적으로 괜찮은데 꼭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거를 알고 있어서 일단 법이 정해지면 법을 지키는 게 세계를 경영했던 나라들의 차이점입니다. 일본도 아시아를 지배해봤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 보면 준법정신이 강합니다."

정리하면 일본은 세계를 지배해봤기 때문에 예외를 두지 않으며, 이로 인해 일본인들의 준법정신이 강하다는 이야기다. 이 언급에는 두 개의 주체가 들어 있다.

법의 권위를 지키고자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일본 지배층이 그 하나이고, 지배층의 엄격함으로 인해 준법을 할 수밖에 없는 일본 국민들이 또 하나다. 지배층이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엄격함을 발휘해야 국민들의 준법정신이 강해지고, 그래야 세계를 지배할 품격을 갖게 된다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일본에 관한 언급이기 이전에, 민중을 대하는 방법에 관한 소신을 담은 언급으로도 읽힌다.

일본이 범한 '예외'들... 박보균 후보자도 알고 있었다
 
2014년 4월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이 연 '한림과학원 제239회 수요세미나 '제1차 세계 대전 100주년 전쟁과 평화의 드라마' 당시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2014년 4월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이 연 "한림과학원 제239회 수요세미나 "제1차 세계 대전 100주년 전쟁과 평화의 드라마" 당시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유튜브 HallymHAS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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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본은 예외를 많이 범했다. 봉급을 준다고 약속하고 한국인들을 군수기업체에 강제징용(강제연행·강제동원)해놓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자들에게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 모든 피해자들을 다 그렇게 대한 것은 아니다. 미국인 피해자를 대할 때 달랐고, 중국인 피해자를 대할 때 달랐다. 한국인 피해자를 대할 때 역시 달랐다. 일본이 상황에 따라 수없이 예외를 둬온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박 후보자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것에 관한 글을 쓴 적도 있다. 한림대 강의 4개월 뒤인 2014년 10월 16일 <중앙일보>에 쓴 '[박보균 칼럼] 한국의 일본 알기'가 그것이다. 이 글에서 그는 일본의 과거사 왜곡을 비판했다. 일본이 역사왜곡을 한다고 그가 말했다는 것은, 일본이 역사문제에서 원칙을 지키지 않고 예외를 둔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는 이렇게 썼다.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 퇴행은 집요하다. 그의 과거사 왜곡 자세는 완강하다. '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끊임없이 일축한다. 아베 정권의 국책 방향은 군국·국수주의다."

이 글에서 박 후보자는 '아베 신조가 원칙을 따르지 않고 퇴행을 하고 있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 두지 않고 왜곡하고 있다' '위안부 강제동원을 해놓고도 사실을 일축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일본이 예외를 많이 저지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세계를 지배해봐서 예외를 두지 않고, 그래서 준법정신이 강하다'라는 엉뚱한 말을 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칼럼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지적하면서도 일본에 대한 대처법과 관련해서는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 외교는 정면 돌파를 추구한다. 하지만 우회 포위, 공중 낙하 전략도 함께 해야 한다. 우리 공략은 문화로 이루어진다."

이는 일본과의 역사문제에 대해 정면 돌파를 하지 말자는 뉘앙스로 읽힌다. 그런 뒤 그가 내린 결론은 일본에 대한 지식을 축적해 한류를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알기가 한류 열기를 부활시킨다. 문화정보 축적이 과거사 승패를 판가름한다"가 결론이다. 역사문제에 대한 정면 돌파를 시도하기보다는 문화 체력을 키우자는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박 후보자는 일본이 잘못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역사문제에 대한 정면 돌파를 비판하고 문화 체력을 키우자는 입장을 가졌다. '일본은 세계를 지배해본 나라라서 준법정신이 강하다'는 언급도 했다. 일본의 잘못을 알면서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고 되레 한편으로 일본을 칭찬한다는 것은 그의 일본관(觀)이 균형 잡혀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방 80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도 한국의 문화정책은 일본 식민지배 잔재나 그 식민사관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박보균 후보자의 일본관이 우리나라 문화 정책에 투영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곱씹어보게 된다.

태그:#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윤석열 정부, #인사청문회,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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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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