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1~2년, 전·월세 계약이 만료되면 자의든 타의든 매번 새 보금자리를 찾아 헤매는 게 도시에서의 삶이다. 내 집 마련 후에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하는 다양한 이유가 생길 가능성이 크고, 더 넓고 높은, '좋은 집'으로 이사하는 게 성공의 척도라도 된 양 현재를 벗어나려 노력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한 집은 물론 한 동네에 평생 머무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없다.

농촌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한, 학업이나 직장 등 진로를 찾아 젊은이들은 떠나가고 농촌 인구는 계속 줄어든다. 마을에 남는 건 고령화된 주민들뿐. 하지만 그들마저도 나고 자란 마을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마을에 계신 어르신들은 몸이 불편해서 나오지도 못하고 집에만 계셔요. 종종 안 좋은 소식도 들리고요. 자녀들이 모시고 가거나 요양원에 가시니 마을을 떠날 수밖에요."

이것은 비단 어느 특정 마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마을, 한 집에 자신의 역사를 바쳐온 이들의 이주는 그 의미가 다르다. 마을 어르신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지금 사는 이 마을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말은 단순한 입버릇이 아니다. 여가 시설은 물론 의료 시설·돌봄 기관 등이 전무한 농촌 면 단위 마을에서 이는 사실상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기도 하다. 농촌에 홀로 남은 노인이 결국 도시의 자녀 집으로, 혹은 낯선 요양원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충북 옥천군 안남면에서 마을과 마을기업, 그리고 관이 함께하는 마을 돌봄 사업이 시작됐다. 이름하여 '금쪽같은 우리동네 사람들(이하 금쪽동네)'. 농촌 마을 노인 돌봄 공백으로부터 안심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옥천군노인장애인복지관(이하 복지관)이 주관한다.

주거·마을 환경까지, 행복한 마을 위한 종합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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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옥천군 안남면 청정리 주민들과 마을기업 옥천아는사람협동조합, 옥천군노인장애인복지관 담당자들이 마을을 돌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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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몸 노인 문제는 어느 특정 지역이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입니다. 그런 만큼 마을 안에 돌봄 네트워크를 형성해 마을 안에서 노인을 함께 돌볼 수 있는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외부 전문가가 활동 주체가 되는 것보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마을 사람들에게 편하고 스스럼없이 속 얘기를 잘 할 수 있지 않겠나 싶었고요."

금쪽동네를 담당하는 복지관 지역돌봄팀 박미정 사회복지사의 말이다.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돌봄 프로그램이 지원 기관을 넘어 마을 자체적으로 실현돼야 한다는 생각이 본 프로그램의 시작이었다고. 처음 마주하는 사람보다는 알고 지내던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마을 안에서 돌봄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인 것. "혼자 지내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상"하기도 했다.

2022년 금쪽동네로는 안남면 화학2리와 청정리가 선정됐다. 화학2리 정회권 이장은 "코로나 이전에는 경로당에 모여 이야기도 하고 식사도 같이 해드시다가 경로당 문을 못 여니까 허전해하시는 모습을 많이 본다"며 "돌봄 서비스를 받는 분들이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보여서 좋더라"고 말했다. 청정리 정진용 이장은 "노인들을 물질적으로 도와주는 것도 좋은데 관심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업은 복지관이 지난해 말 한국증권금융꿈나눔재단의 노인복지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진행된다. 노인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맞춤형 사업을 발굴하는 목적의 해당 공모사업에는 전국 145개 노인 관련 비영리기관·단체가 참여해 8개 기관이 선정됐는데 충청 지역에서는 옥천군노인장애인복지관이 유일하다.

연간 5천만 원 이내 사업비를 최대 3년 연속 지원받을 수 있는데, 1차 년도 사업 결과를 토대로 이듬해 지원 당락을 결정짓는다. 복지관은 내년 1개 마을을 추가로 선정해 돌봄 네트워크를 확대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와 함께 선정 마을은 주거 환경개선 사업 및 마을 정비 사업이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 돌봄

금쪽동네 프로그램의 최우선 과제는 '돌봄'이다. 각 마을에 "돌봄 대상자 5명"과 그들의 단짝 친구가 될 "정서적 돌봄자 5명"을 선정해 일대일 돌봄을 담당한다. 생각이 날 때 안부를 묻고 식사를 함께하는 등 일상 속에서 돌봄 기능을 수행하는 역할이다. 또, "일상적 돌봄자 2명"이 마을복지사가 돼 각 돌봄 대상자의 집에 주 1회 방문해 시간을 보낸다.

일상적 돌봄자는 복지관의 사회서비스형 노인 일자리로 연계돼 급여를 지급받는다. 정서적 돌봄자에도 월 3만 원의 보수를 지급한다. 박미정 사회복지사는 "현재 보수 금액은 많지 않지만 올해 성과를 토대로 내년에는 더 많은 금액을 예산으로 요청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또 "지원사업 종료 후에도 마을 단위 돌봄이 이어질 수 있게끔 일상적 돌봄자는 노인 일자리 사업, 돌봄 대상자는 재가노인지원서비스 대상자로 선정해 지속할 수 있게 지원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돌봄 대상자는 마을을 떠나거나 본인이 서비스 지속을 원치 않는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계속 돌봄지원을 받을 수 있다.

# 환경개선

돌봄과 함께 주거환경개선과 마을 정비도 주요 과제다. 지난 3월, 복지관은 돌봄 대상자로 선정된 5명의 주거 환경을 직접 돌아봤다. 주거환경개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대상자 본인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불편한 점이 무엇인가다. 박미정 사회복지사는 "가장 많이 호소하신 불편함은 높은 계단"이라고 설명했다.

복지관은 이에 따라 계단 사이에 하나의 계단을 더 만들거나, 잡고 오를 수 있는 안전손잡이 설치 또는 경사로 별도 제작 등을 계획하고 있다. 계단에 문제가 없는 가구의 경우 불빛유도장치를 설치한다. 장치가 설치된 가정에서 화재경보가 울리면 안심 사이렌이 외부에도 경보음을 내보내 이웃 간 화재 발생 여부를 쉽게 알 수 있다. 또, 화재 시 연기로 인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도 불빛유도장치의 빛을 따라 탈출 경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마을 정비의 일환으로는 벽화가 조성된다. 3월 23일에는 마을주민과 함께 벽화 그림에 대해 의논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전체 벽면을 색칠하는 방법이 당장 보이기에 화려하고 예뻐도 관리가 잘 안 되어 페인트가 벗겨지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같은 날 현장 실사를 통해 화학2리에 10곳, 청정리에 9곳 벽화를 조성하기로 했다.

안남면 마을기업 '옥천아는사람협동조합(이하 아는조합)'이 환경개선사업에 협력한다는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2013년 출범해 2020년 안남면 마을기업으로 지정받은 아는조합은 지역이 가진 과제를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며 지역 공동체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다.

복지관은 안남면 마을들이 사업 대상지인 만큼 가능한 지역 안에서 협력 체계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차원에서 아는조합과 협업을 진행하게 됐다. 벽화를 담당할 아는조합 오순임 조합원은 마을 곳곳의 빈 벽에 어떤 활기를 채워 넣을지 고민하며 "마을과 잘 어울리면서도 관리가 쉬운 벽화를 그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는조합의 사업체인 '아는사람목공소' 역시 이번 환경개선사업을 도울 예정이다.

이외에도 복지관은 해당 마을에 이·미용 서비스나 도시락 배달 같은 찾아가는 복지를 제공한다. 1차년도에는 안남면 화학2리와 청정리에 환경개선사업과 돌봄사업을 진행한다. 2차년도에는 1개 마을을 추가 선정해 추가 선정한 마을에 환경개선사업과 돌봄사업을, 기존 두 마을에는 돌봄사업을 유지한다. 3차년도에는 세 마을을 잘 관리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복지관 업무를 총괄하는 허주희 사무국장은 "금쪽동네 사업은 복지관에서도 중점을 두고 있는 신규사업으로, 지역 어르신들이 지역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며 "마을과 마을기업이 도와주신다고 하니 감사할 따름"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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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사람협동조합 복지관 담당자가 청정리에 어떤 벽화를 그릴지 구상하기 위해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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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관은 해당 마을에 이미용 서비스나 도시락 배달 같은 찾아가는 복지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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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3시간, 수다 떠는 시간

화학2리 일상적 돌봄자로 선발된 마을복지사 홍성봉(70)씨와 김결옥(70)씨는 평일 오후 12시부터 3시까지 돌봄 대상자 가정을 찾는다. 오전에는 개인 경제활동을 하고 오후에는 8천 평 복숭아밭을 가꾸는 홍성봉씨는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어 이웃의 곁을 지킨다. 김결옥씨는 6~7년 전 대전에서 이곳으로 귀촌한 이주민. 그런데도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처럼 누구보다 친근하다.

"처음엔 걱정이 돼서 잠도 잘 안 오더라고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해보니까 시간 맞추는 것 외엔 어려운 건 없었어요." (홍성봉씨)

일상적 돌봄자는 복지관의 노인 일자리 사업과 연계하기 때문에 조건이 붙는다. '65세 이상 신체 건강한 자', 그리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다면 우대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우대조건은 '따뜻한 마음'인 듯하다.

주 1회, 정해진 시간에 대상자의 집을 방문하지만 부재중인 경우도 많다. 대상자들이 몸이 불편함에도 밭일을 보거나 장날이면 꼭 장에 나가기도 하기 때문. 이들을 찾아 나서는 것도 일상적 돌봄자의 일상이다. 밭에 간 대상자의 밭일을 함께 도우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건 예삿일이다.

"며칠 전에 부재중인 어르신을 찾아 나섰는데, 산 밑에서 뭘 소각하려 하시던 참이었어요. 그때 발견하지 못했으면 큰불로 이어질 수도 있었겠더라고요. 돌봄자는 이야기만 나누는 게 아니라 일상의 모든 것을 세세히 살피는 역할을 해요." (김결옥씨)

"한 남성 대상자 집에 갔더니 조리 시설이 엉망이었어요. 그래서 깨끗이 청소를 하고 보니 가스레인지가 안 나오더라고요. 알고 보니 건전지를 잘못 끼운 거였는데, 평소 요리를 안 해서 상관없을 수도 있지만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봐요." (홍성봉씨)

오늘(3월 25일)은 김경구·민상규(89)씨 집을 방문하는 날. 이들의 경우 부부가 함께 살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 고령인 데다 장애가 있는 손녀를 돌보고 있어 돌봄 대상 가정으로 선정됐다.

"두 사람이 오면 이야기하느라 재미있어요. '밭일했다'고 하면 '힘든 일 뭐하러 하느냐'고 하지만 나를 걱정해주니 좋죠." (김경구씨)

김경구씨는 시집살이한 이야기, 물이 없는 동네라 고생한 이야기 등 옛날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일상적 돌봄자 두 명과 함께하니 끊이지 않는 수다에 심심할 새가 없다.

화학2리 일상적 돌봄자들은 경로당을 열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경로당 폐쇄 전후 마을 어르신의 영양 상태 변화를 체감하기 때문이다.

"경로당에서 식사하던 때엔 통통하신 분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정말 다들 마르셨어요. 이젠 돌아가신 분들도 많고요." (김결옥씨)

"경로당 열면 매일 점심이라도 맛있게 드실 수 있잖아요. 주 1회 방문해야 보는 돌봄자들도 매일 볼 수 있고요. 집에 먹을 게 많아도 안 드시는 분들 많으세요. 혼자 먹으면 맛이 없으니까요." (홍성봉씨)

길다고 생각했던 세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옥천읍 오일장에 나갔던 민상규씨도 집으로 돌아왔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이야기가 특별해지는 마법같은 세 시간. "어르신들은 건강한 게 최고"라는 인사로 김결옥씨는 집 문을 나섰고, 홍성봉씨는 "저녁부터 비가 온다니 얼른 밭일을 해야 한다"며 바쁜 발걸음을 옮겼다.

월간 옥이네 통권 58호 (2022년 4월호)
글·사진 소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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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옥천군 안남면 화학2리 일상적 돌봄자 김결옥·홍성봉씨가 돌봄대상자 김경구씨의 집을 찾았다. 높은 계단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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