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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은 소소한 탐식을 통해 일상의 고단함과 노곤함을 이겨냅니다. 고독한 방구석 연주자인 임승수 작가는 피아노 연주를 통해 얻는 소소한 깨달음과 지적 유희를 유쾌한 필치로 전달합니다.[편집자말]
"연주 너무 잘 들었어요. 피아노 참 잘 치시네요!"

내가 올린 피아노 연주 동영상에 이런 댓글이 달리면 내가 진짜 잘 치는 줄 알았다. 지금은 덕담이라는 것을 안다. 이성적으로만 따지자면 이 댓글은 명백한 진실(연주를 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성의 영역에서는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고마운 글이다. 그런데 사람의 성정이란 게 개체마다 차이가 있다 보니 정규분포의 극단에 있는 사람에게서 간혹 진실을 담은 언어가 발화되기도 한다. 이렇게. 

"공대 나오셨던데, 피아노도 공대생처럼 치시네요."
"기계가 연주하는 것 같아요. 감정이 없어요."


이런 댓글을 남기는 당신이야말로 감정이 없다고 대꾸하고 싶지만, 일부는 진실임을 부인하기가 어렵다. 솔직히 한동안 내 연주에는 감정이란 게 거의 실려 있지 않았다. 그나마 전보다 나아진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내 연주가 목석같았던 데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그에 관한 얘기를 좀 해 보겠다.

피아노 연주와 시낭송
 
음악에 감정을 담아내는 일은 수월하지 않다.
 음악에 감정을 담아내는 일은 수월하지 않다.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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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아노 연주에 감정을 담는 방법을 깨달은 후로는, 그것이 시 낭송과 꽤 비슷한 맥락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예를 들어 윤동주의 서시를 청중 앞에서 낭송할 일이 있다고 하자.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시 낭송을 할 때 평소처럼 읽는 사람은 없다.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목소리 톤을 찾아내기 위해, 시어의 바다에 빠져들어 다양한 방식으로 되뇌어 본다. 윤동주의 서시라면 역시 차분하고 성찰적이면서도 고뇌가 담긴 톤이 좋겠지. 첫 구절 '죽는 날까지'부터 읊기 시작하는데 그럴싸하게 낭독하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또박또박 천천히 읽다가 맘에 안 들면, '죽는' 다음에 반 박자 쉬고 들어가 보기도 한다. 목소리가 좀 가볍다 싶으면 턱을 당기고 성대 근육을 긴장시킨다. 수십 번을 이래저래 시도하다가 드디어 맘에 쏙 들어서 쾌재를 불렀지만, 다시 읽으니 그 느낌이 나지 않는다.

시 낭송에서 적절한 감정을 담아낸다는 건 이토록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언어보다 훨씬 추상도가 높은 음악에 감정을 담아내는 일이 수월할 리 있겠는가. 베토벤 <엘리제를 위하여>로 예를 들어보겠다.
 
생각 없이 건반을 누르다 보면 피아노에서는 어느덧 자동차 후진 알람이 흘러나온다.
▲ 베토벤 <엘리제를 위하여> 생각 없이 건반을 누르다 보면 피아노에서는 어느덧 자동차 후진 알람이 흘러나온다.
ⓒ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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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엘리제를 위하여> 악보는 정확한 고증으로 명성 높은 헨레 출판사의 악보다. 일단 무신경한 연주자(과거의 나)는 피아니시모부터 가뿐하게 무시해준다. 소리는 그저 시원시원하게 잘 들리면 좋은 것이여! 미-레#-미-레#, 그렇게 건반을 누르다 보면 피아노에서는 어느덧 자동차 후진 알람이 흘러나온다. 이래서는 도무지 연주에 감정이 실릴 여지가 없다.

이 곡을 낭송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윤동주 서시 첫 소절 '죽는 날까지'를 근사하게 읽어보려고 했던 고생의 절반만 끌어와 보자. 악보에서 ①부분을 보면 미-레#-미-레# 음표가 나오는데, 손가락번호가 4(약지)로 시작한다. 소싯적에 사용하던 명곡집에는 아래의 악보처럼 5번(새끼손가락)이었다.
 
명곡집에서는 5번(새끼손가락)으로 연주를 시작한다.
▲ 명곡집의 <엘리제를 위하여> 악보 명곡집에서는 5번(새끼손가락)으로 연주를 시작한다.
ⓒ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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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새끼손가락은 힘이 약한 데다가 약지와 근육이 연결되어 있어 어지간히 훈련된 연주자가 아니면 독립적으로 움직이기 어렵다. 다섯 손가락을 쫙 폈다가 새끼손가락만 굽히려고 하면 약지가 같이 구부러지지 않는가.

명곡집처럼 새끼손가락(5)으로 시작하면 미-레#-미-레#를 5-4-5-4로 연주하는데, 피아노 초심자의 경우 고른 소리를 내기 어렵다. 새끼손가락이 담당하는 '미'는 소리가 작고 약지가 담당한 '레#'은 커서, 부자연스러운 소리가 나기 십상이다.

헨레 악보에서 약지(4)로 연주하라고 지정한 이유는, 미-레#-미-레#를 4-3-4-3으로 연주해 서투른 연주자도 고른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시 낭송에서 원하는 목소리 톤을 만들기 위해 턱 위치, 입 모양, 성대 근육 등을 알맞게 조절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운지법(fingering)뿐만 아니라 템포나 음량도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다. 미-레#-미-레# 16분음표 네 개를 오차 없는 정확한 템포로 연주할까? 아니면 앞의 미-레#는 다소 느리게, 다음에 나오는 미-레#는 미세하게 템포를 올려볼까? 그러면서 깃털 세 개 정도 더 얹는 느낌으로 크레센도를 하면 어떨까?

이런 식으로 아이디어를 확장하다 보면 고작 네 개의 음을 연주하는 데도 수십 가지 방식이 나온다. 그렇게 템포와 음량을 미세하게 흔들면 듣는 이의 마음도 출렁이기 시작한다. 변화가 없는 곳에는 설렘이 존재할 수 없을 테니.

악보에서 ②로 표기된 부분을 보자. 16분음표로 이루어진 분산화음이 나오데 손가락번호는 5-2-1-1-2-4-5 순서다. 앞의 5-2-1을 왼손이 담당하고 뒤의 1-2-4-5는 오른손이 담당한다. 이 분산화음을 별다른 고민 없이 누르면 십중팔구 5(새끼손가락)번이 담당하는 음은 약하고 1번(엄지) 음은 튄다.

그 결과 매끄럽게 흘러가야 할 분산화음이 자갈길을 달리는 마차처럼 불규칙적으로 튄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낭송(?)하는 초등학생의 모습이 겹쳐 보이지 않는가.

②를 매끄럽게 연주하기 위해서는 내 연주 소리를 현미경 보듯 세심하게 들으며 각 손가락의 힘을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새끼손가락은 힘을 더 주고 엄지손가락은 부드럽게 누르며, 상승하는 분산화음에 어울리도록 살포시 크레센도를 가미한다. 이 과정에서 초등학생 국어책 읽기 같던 분산화음은 아나운서의 맵시 있는 낭독으로 변모한다.

건성으로 치면 건성으로 들린다

목석 같은 연주를 하던 시절의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종류의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음표를 확인한 로봇이 손가락을 하강시켜 해당 건반을 누르듯, 일차원적 행동으로 일관했다.

이 행위를 통해서 유발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일차원적인 결과물뿐이었다. 바로 단조로움. 내 손가락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세심하게 들어본 적이 없으니 그게 얼마나 단조로운지조차 몰랐으며, 그 한없는 둔감함이 '공대생처럼 치시네요'라는 감정 돋우는 댓글을 불렀다.

물론 과도한 감정 이입과 음량 및 템포의 변화는 난삽함만 초래해 음악적 흐름에서 개연성이 약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나 같은 방구석 연주자에게 시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감정적 절제가 아니라 리비도 대방출이다.

브람스 인터메조 Op.118 No.2로 개인 레슨을 받을 때 선생님이 강조한 얘기가, 취미 연주자의 경우 '이렇게 느끼하게 쳐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과장되게 연주해야 그나마 연주에 감정이 실린다고 했다. 동영상을 촬영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평소보다 과장된 목소리와 몸짓으로 연기해야 영상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것을.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러우면서도 감정이 풍부하게 살아나는 연주의 배후에는, 이렇듯 수면 밑 백조의 발길질과 같은 생고생이 숨어 있다.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이 글이 고된 고쳐쓰기의 결과물인 것처럼 말이다.

음표 하나하나에 시구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며 정성을 담아 건반을 누르고(낭송하고), 설득력 있는 음향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건반과 페달을 탐구할 때만이 듣는 이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건성으로 치는데 건성으로 들리는 건 자명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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