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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이자 어버이 날이었던 지난 8일, 강화도는 분주했다. 도로에는 차들이 줄을 지어 갔고 식당들도 손님들로 가득 찼다. 바쁘고 수선스러웠던 하루가 지나고 어둠살이 낄 무렵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밤새 촉촉하게 비가 내렸다. 비를 맞은 초목들이 꼿꼿하게 깨어났다.

며칠 전에 심은 고구마 모종도 허리를 폈을 것 같다. 초파일을 전후해서 강화도에서는 고구마 모종을 많이 심는데, 다행히 비가 와서 물을 주는 수고를 덜었다.

강화도 특산물, 속노랑 고구마

강화도를 대표하는 특산물로는 해풍을 담은 강화섬쌀과 약효가 뛰어난 사자발 약쑥, 그리고 보라색 순무와 밴댕이, 육년근 인삼 등이 있다. 속노랑 고구마도 빼놓을 수 없는 특산품이다. 속이 노랗다고 '속노랑 고구마'로 불리는 강화도 고구마는 해풍을 맞으며 자라서 그런지 다른 지역 고구마보다 더 달다.
   
돈대 석벽 바로 앞까지 고구마를 심었다. 강화군 길상면 양암돈대.
 돈대 석벽 바로 앞까지 고구마를 심었다. 강화군 길상면 양암돈대.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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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는 심어두면 캘 때까지 잔손이 많이 가지 않아 농사짓기에 수월한 작물이다. 단위 면적당 소득도 높은 편이라서 고구마 농사를 짓는 농가들이 많다. 큰 밭에 수천 포기씩 심는 집도 있고 식구들 먹을 정도의 양만 텃밭에 내는 사람도 있다.

한 뼘의 땅도 허투루 쓰지 않는 게 농부다. 빈 땅이 있으면 뭐라도 심지, 땅을 놀리는 법이 없다. 그런 농부들이 돈대 빈터를 어찌 그냥 놔둘 것인가. 돈대들 중에는 밭으로 경작된 곳이 더러 있었다.

고구마밭이 된 '송강돈대'
 

허물어져서 터만 남아있는 돈대들은 밭이 되었다. 어떤 돈대는 고구마밭이 되었고 또 어떤 돈대는 고추밭이 되기도 했다. 약쑥을 심어 그야말로 쑥밭이 된 곳도 있었다. 송강돈대도 그중의 하나였다.

강화군 화도면 내리에 위치해있는 송강돈대는 '소루지돈대'로도 불렸던 곳으로 바닷가의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해 있다. 송강돈대 역시 강화군에 있는 여타의 돈대들과 마찬가지로 조선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다. 석모도를 바라보고 있는 송강돈대는 강화의 서쪽 바다를 지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1679년(숙조5)에 축조된 송강돈대. 빈 터만 남아 있다.
 1679년(숙조5)에 축조된 송강돈대. 빈 터만 남아 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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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단석 일부와 토축 약간만 남아 있는 송강돈대
 기단석 일부와 토축 약간만 남아 있는 송강돈대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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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돈대는 돈대라고 부르기에도 면구스러울 지경이다. 원래는 꽤 우람찬 돈대였을 테지만 지금은 많이 훼손되어 기단석 일부와 흙으로 쌓은 축대가 조금 남아 있는 형편이다. 심하게 망가져서 돈대의 정확한 규모와 형태도 알기 어렵다.

1999년 육군박물관이 조사를 했을 때 동서 17.2~19m, 남북 4.4m로 확인되었다. 2019년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에서 남아있는 토축을 통해 추정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송강돈대의 규모는 동서 7.7m, 남북 34.8m이다. 둘레는 124m이며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불과 1미터도 되지 않는다.

기단석 약간만 남아있는 송강돈대

<여지도서>와 <강도부지> 등의 관련 사료에는, '송강돈대의 둘레는 93보이고 성가퀴는 40개이다. 북쪽으로 굴암돈과의 거리는 3리 18보다. 배를 댈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수직하던 병사가 거처하던 돈장도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 규모의 돈대가 터만 있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기단석 일부와 토축 일부분뿐이다. 포대(砲臺)도 4개씩이나 있었을 텐데 현재 남아있는 모습으로는 어디에 포대가 있었을지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대포는 바다 쪽을 향해 설치했을 테니, 서쪽에 포대가 있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기단석 일부만 남아 있는 송강돈대
 기단석 일부만 남아 있는 송강돈대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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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 문에 쓰였을 듯한 길고 큰 돌.
 돈대 문에 쓰였을 듯한 길고 큰 돌.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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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돈대의 석재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둘레가 124m나 되는 돈대였으니 들어간 석재가 상당했을 텐데,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동쪽 면의 기단석 일부뿐이다.

인근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돈대의 석재들은 제방공사를 할 때 가져다가 썼다고 한다. 일제 강점시기였던 1920년대에 돈대 인근에 제방을 쌓았는데, 그때 송강돈대의 석축을 허물어 제방공사에 썼다고 한다.

돈대 석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대가 바뀌면서 사용 가치가 없는 돈대였으니 허물어 다른 곳에 쓴다고 해서 누가 뭐랄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도 하지만 그때 이미 돈대는 허물어져서 존재가 미미했던 것 같다. 1918년 강화도 지형도에 돈대 표기가 없는 걸로 봐서 돈대는 제방을 쌓기 그 이전부터 훼손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돈대 아래 시누대밭에 석재들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돈대 아래 시누대밭에 석재들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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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 석벽이었을 듯한 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돈대 석벽이었을 듯한 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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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 아래 농로가에 농업 쓰레기들과 함께 버려져 있는 석재들.
 돈대 아래 농로가에 농업 쓰레기들과 함께 버려져 있는 석재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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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아 있는 흔적들로 송강돈대의 형태를 추정해 보면 직사각형(長方形) 모양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동쪽에 길고 네모난 큰 돌이 두 개 넘어져 있는데, 그 돌은 돈대 출입구에 쓰였던 돌기둥으로도 보인다. 이런 사항으로 볼 때 돈대로 드나드는 출입문은 동쪽에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대접을 해주었으면
  
현재 돈대로 올라가는 진입로는 해안도로 쪽에 나있다. 돈대가 있음을 알려주는 표지판 역시 그쪽에 세워져 있다. 길에서 돈대까지는 40m정도 밖에 안 되니 돈대는 실상 길에 붙어있는 셈이다.

돈대로 향하는 오르막에 폐타이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인근 군부대에서 설치했을 것으로 보이는 이 계단은 한때 군인들의 이동 통로였지만 지금은 돈대로 올라가는 길로 잘 쓰이고 있다. 강화도의 해안가에 있는 돈대를 찾아가는 길 중에는 이런 폐타이어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 더러 있다. 멀지 않은 과거와 현재가 함께 하는 모습을 이런 계단에서도 볼 수 있다.
 
송강돈대로 올라가는 길. 예전에 만든 폐타이어 계단길이 있지만 더 견고하고 보기에 좋은 자재로 다시 정비했으면 싶다.
 송강돈대로 올라가는 길. 예전에 만든 폐타이어 계단길이 있지만 더 견고하고 보기에 좋은 자재로 다시 정비했으면 싶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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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밭으로 이용되기도 했던 송강돈대 빈 터.
 예전에는 밭으로 이용되기도 했던 송강돈대 빈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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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돈대 앞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을 테지만, 바닷가에 둑을 쌓고 길을 만들자 송강돈대는 섬 아닌 섬이 되었다. 돈대 앞으로 길이 나고, 그 길로 차들이 쌩쌩 달린다. 속도 앞에 송강돈대는 무력하기만 하다.

모두 지나쳐 간다. 그들은 돈대가 있는지도 잘 모른다. 저녁노을을 보러 돈대 앞 소루지공원으로 온 사람들도 돈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모두 석양에만 눈길을 둘 뿐 돈대에는 관심이 없다.

송강돈대는 쓸쓸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때는 고구마밭이었고 또 한때는 약쑥 밭이기도 했던 송강돈대였다. 그나마 지금은 빈 터로라도 돈대의 자리매김을 하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오늘도 송강돈대는 말없이 기다리고 있다.

<송강돈대 기본 정보>

.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내리 103
. 별칭 : 소루지돈대, 솔구지돈대, 송강포돈대
. 축조 시기 : 1679년(숙종5)
. 규모 : 너비 - 남북 34.8m, 동서 7.7m(추정)
          둘레 - 124m
. 형태 : 직사각형(추정)
.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

덧붙이는 글 | <강화뉴스>에도 게재합니다.


주요 지리정보

태그:#강화도여행, #돈대기행, #돈대, #송강돈대, #속노랑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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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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