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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茶山)은 요즘 말로 하면 '인생 꼬인 엄친아'였다. 가문으로 보나 개인으로 보나 그는 당대에 가장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정약용의 집안은 이른바 팔대옥당(八代玉堂)이라 불린 명문가였다... 다산은 스물두 살에 소과(小科) 시험인 생원시에 합격하고 스물여덟에는 대과인 문과에 급제했다. 20대에 대과까지 합격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런데 일찍이 너무 잘 나간 탓일까? 서른아홉 살 때부터 다산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를 총애하던 정조 임금이 갑자기 승하한 게 발단이었다. 얼마 뒤 1801년 3월(순조 1년)에 의금부 관리들이 다산을 체포하러 들이닥친다. 천주교 신자로서 활동한 이력이 죄가 되었다. 

그런데 이는 다산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한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했다. 본질은 정치적으로 탄압하고자 했다. 다산과 둘째 형인 정약전은 유배를 떠나고 셋째 형인 정약종과 매형인 이승훈은 사형을 당했다. 명문가로 이름이 드높았던 집안이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이 난 셈이다." 


'인생 꼬인 엄친아' 다산 정약용은 18년이라는 긴 유배 생활 덕분에 후세에 수많은 명저를 남겼다. 그가 쓴 책은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여유당전서> 등을 포함해 500권이 넘는다. 그 방대한 저술 활동 가운데 다산이 애지중지했던 저서 가운데 하나가 <주역사전(周易四箋)>(1808년, 24권 12책)이다. 

다산은 유배 생활의 첫 공부로 <주역>을 택했다. <주역>은 "세상만사가 올라오면 내려오고, 가면 다시 오고, 굽히면 펴지고, 소멸하면 다시 자라나고, 한쪽이 극에 달하면 다시 반전되어 변하기 마련이라는 천만 가지 변화와 이동의 원칙을 인간사에 적용해서 우주의 원리를 담은 최고의 경전"이다.

다산리더십연구소 소장이자, 국내 사주명리 권위자인 김동완 동국대학교 겸임교수가 최근 <오십의 주역공부>(다산초당)를 펴냈다. 

김 교수는 청년시절 무위당 장일순 선생으로부터 노자·장자 사상 및 무위자연 사상, 함석헌 선생으로부터 씨알사상, 도계 박재완, 자강 이석영 선생으로부터 명리학 및 <주역>을 배웠다. 그의 동국대 박사학위 논문이 <다산역 연구>일 정도로 다산이 연구한 <주역>에 심취했다. 그 결과물이 <오십의 주역공부>로 이어진 것이다.

다산 정약용 "<주역>은 천명을 미리 알아보는 최상의 문"
 
다산리더십연구소 소장이자, 국내 사주명리 권위자인 김동완 동국대학교 겸임교수가 최근 <오십의 주역공부>(다산초당)를 펴냈다.
 다산리더십연구소 소장이자, 국내 사주명리 권위자인 김동완 동국대학교 겸임교수가 최근 <오십의 주역공부>(다산초당)를 펴냈다.
ⓒ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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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한 천재' 다산은 긴 유배 생활의 불운을 학문의 에너지로 승화시켰다. 앞날이 불투명했던 불안했던 시기에 다산이 선택한 것은 <주역>이었다. 유배라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고난의 시간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은 것이다. 

다산은 <주역사전>에서 "공정한 선의에서 어떤 일을 하려는 데 그 결과가 좋을지 나쁠지 알 수 없을 때 하늘의 뜻에 맞는지 헤아려 보기 위해 성인들이 지은 책이 바로 <주역>"이라며 "<주역>은 천명을 미리 알아보는 최상의 문"이라 말했다. <주역>이 개인적 길흉을 알아보는 점을 보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명토박았다.

"눈으로 보는 것, 붓으로 기록하는 것으로부터 밥을 먹고 변소에 가며, 손가락 놀리고 배 문지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도 <주역> 아닌 것이 없었다!"

1803년(계해년) 늦은 봄, 다산이 그의 벗 윤외심(尹畏心)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한 대목이다. 어렵게 <주역>의 이치를 깨달은 다산이 그 기쁨을 벗에게 보낸 편지에서 엿보인 것이다.

"다산은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있는 탐위(貪位), 유명무실한 명성에 집착하는 탐명(貪名)을 가장 흉한 것으로 보고 경계했다. <주역>에 담긴 변화의 원리에 순응하며 처신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인생을 살아갈 때 옳고 그름, 이익과 손해의 네 가지 기준을 정하고 이 가운데 옳은 일을 하면서도 이익을 얻는 것을 삶의 최고가치라 말했다.

<주역>의 64개의 기호와 짧은 문장에는 삼라만상을 품은 지혜가 담겨 있다. 다산은 이 <주역>을 거울삼아 마음을 정비하고 위로받으며 비로소 50대에 내면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어떤 시련이 와도 정신은 절대 굴복하지 않았고 그 정신을 갈고 닦아 자신을 완성했다. 이때 그가 발견한 <주역>의 가르침들은 우리 삶의 가치와 방향을 알려준다."

김 교수가 '주역'과 '다산'의 키워드에 주목한 까닭이다.

"다산이 발견한 <주역>은 암호문이 아니라 우리 삶의 가치와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었다. 다산이 가장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을 때 <주역>을 만나 길을 찾았듯."(백승권 작가), "이 책에 나오는 정약용의 가르침 중에 '재화를 비밀리에 숨겨두는 방법으로 남에게 베푸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라는 구절이 있다"(장철수 영화감독)는 추천사만 봐도 다산과 주역은 팬데믹 시대를 살아온 우리에게 위로와 울림을 준다.

100세 시대, 50세면 인생의 터닝포인트다. '지천명(知天命)', 말 그대로 하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김 교수는 이렇게 조언한다.

"세상을 단순하게 음과 양, 옳음과 그름으로 바라보고 답을 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안타깝게도 세상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다채로워서 답을 구할 수 없다. 따라서 사람의 나이가 오십이 되면 하나의 현상을 보고 여러 각도로 분석하고 접근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태그:#주역, #다산, #정약용, #오십의 주역공부, #김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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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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