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편집자말]
지금부터 쓰는 이야기는 친구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아니 '카톡 프로필 사진'(아래 프사)에서 시작되었음을 미리 밝힌다.

프사를 바꾸지 않던 친구 K가 백만 년 만에 사진을 바꿨다. 오랜만에 바뀐 친구의 프사에 다른 친구가 관심을 보이자, K는 "패셔너블하게 맨날 프사 좀 바꿔볼라고"라고 말했다. 재기 발랄한 활동가형(ENFP)인 내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일주일간 (매일 프사 바꾸기) 배틀 한번 해봐?"

호기롭게 던진 내 제안에 K는 혹했고, K와 비슷한 정도로 프사를 잘 바꾸지 않던 H는 "니들끼리 하라"며 한 발 물러섰다. 매일 프사 사진 바꾸려면 머리에 쥐 나겠다라나? 그런 친구에게 나는 "우리가 이 나이에 뭘 매일 바꿔보겠냐?"며 꾀었다. 

하루에 먹는 식사 메뉴 중 하나만 올려도 매일 바꿀 수 있을 거라며 미션의 수행 난이도를 걱정하는 친구를 안심시켰다. 다른 일로 톡을 못 본 후배 Y는 가타부타 의견을 낼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50대 언저리 친구 4인방의 '매일 카톡 프사 바꾸기 미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매일 프사 바꾸기에 나선 친구들
 
매일 프사를 변경하면서?우리의 이야기는 길어졌다.
 매일 프사를 변경하면서?우리의 이야기는 길어졌다.
ⓒ envato elements

관련사진보기

 
매일 프사 바꾸기를 가장 저어하던 친구 H의 프사에는 주로 아이들 사진이나 맛있어 보이는 요리 사진이 올라오곤 했다. 가족 여행을 다녀오면 가족 사진이 오를 때도 있었다.

오랜만에 프사를 바꾸고 이 미션의 물꼬를 제공한 K는 자칭 타칭 '식집사'다. '식알못(식물을 알지 못하는)'인 나나 다른 친구들에게 비공식 식물 박사인 K의 프사가 주로 꽃식물인 건 당연지사.

우리들보다 한 살 어린 후배 Y의 프사는 1년의 젊음(?)만큼이나 다양한 사진이 올라왔다. 아이 사진이었다가 꽃, 여행, 가족... 우리 모두의 프사를 한데 뭉뚱그려놓은 듯했다. 내 프사에는 주로 그림을 그리는 나, 등산을 하는 나, 딸과 함께 찍은 나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프사엔 각자의 고유한 삶이 담겨 있었다.

미션이 시작된 지 3일째까지 H는 앓는 소리를 냈다. 매일 식사 메뉴를 달리 하는 것도 골치 아픈데 프사 고르느라 죽겠다며. 그러던 H가 3일이 넘어가자 적응이 되었는지 우리 중 가장 먼저 프사를 교체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평소에 주기적으로 프사를 바꿔오던 나는 3일이 지나니 서서히 새 사진을 고르는 게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꽃을 좋아하면 매일 다른 꽃을 찍어 올리고 요리가 취미라면 매일 다른 요리를 찍어 올리련만, 뭔가를 하는 내 사진을 주로 프사에 올리던 내게 매일 프사를 바꾸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과제였다.

미션 수행 5일째. 핸드폰 앨범에서 최근 찍은 사진들 중 마땅한 프사를 못 찾자, 아무 사진이나 갖다 붙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고른 사진 하나를 올렸다. 그날 내가 올린 프사는 저녁에 동네를 걷다가 상가에서 발견한 한 탕수육 가게 사진이었다.

탕수육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나중에 가볼 요량으로 찍어둔 것이다. 그 가게 이름이 '행복 탕수육'이라 프사 문구도 바꿨다. '행복이 별건가? 갖다 붙이면 행복이지.' 사진으로 좀 부족했다 싶어 부려본 꼼수였는데 금세 들통나고 말았다. Y가 바뀐 내 프사를 보더니 대번에 이렇게 말했다. 

"언니 프사 같지 않아."

사진을 바꾸면서 평소의 나라면 절대 올리지 않을 사진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아는 사람도 그걸 알아채는구나 싶었다. 프사가 정체성을 갖는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 다음날이 어린이날이라 얼른 '100주년 어린이날 축하' 사진으로 바꾸며 급조한 사진을 내렸다. 그 짧은 시간, 잃은 나를 다시 찾은 느낌이라면 오바이려나.

매일 프사를 변경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는 길어졌다. 단톡방이 끝날 줄을 몰랐다. 서로가 올린 사진에 관심을 보였고, 친구들이 다음에 올린 사진이 궁금했다. 어느 날 저녁엔 톡방에 있던 친구 두 명의 프사 배경이 동시에 텅 빈 것을 발견하고는 깔깔 대고 웃었다. 같은 시간에 프사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에 30여 년 전 여고생 때처럼 즐거워했다.

친구가 프사에 올린 꽃의 이름과 꽃말에 대한 이야기는 어찌 된 게 '방탄'(BTS)으로 옮겨갔다가 오십견으로 마무리되었다. 우리들의 톡 수다는 중구난방으로 이어지다 결국 건강 문제로 귀결되곤 했다.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고 서로의 몸 돌보기를 독려하며 하루의 톡 수다를 마무리 짓곤 했다.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방법

'매일 프사 바꾸기 미션' 종료 하루 전날 저녁,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얘들아~ 기쁜 소식이 있어. 내일이 미션 종료일이야."

어라? 그런데 친구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벌써 일주일 됐어?"
"아쉽네. 벌써 일주일이라니..."


미션이 끝나가는 것이 못내 서운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프사 바꾸기 미션은 그 뒤로 지금까지 쭈~욱 계속되고 있다. 따로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하루, 이틀 좀 늦어져도 재촉하지 않고 다른 친구가 올린 여러 장의 사진들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자신의 프사로 대신 퍼가겠다고 양해를 구하기도 한다. 각자의 경계성이 조금 모호해지고 있다는 게 약간의 차이랄까.

매일 프사 바꾸기는 50대 언저리 친구들과 함께 하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누군가는 이런 걸 도전이랄 수 있나, 싶겠지만 무엇엔가 '도전'이라는 것을 해 본 지도 꽤 되어서 그런지 살짝 설렜다. 나 스스로 매일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지만,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독려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실로 오랜만에 즐거웠다.

K가 어떤 교수의 말이라며 전했다. 좋은 걸 보고 사진을 열심히 찍는 사람은 현재에 충실하게 사는 거라고. 좋은 걸 열심히 찍어 좋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사람은 얼마나 현재에 충실하게 사는 것일까.

"찍고, 나누고, 사랑하라."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삶이 조금 무료하다 여겨진다면, 오늘도 열심히 찍고, 나누고, 사랑하는 하루를 만들어 보시길.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함께 게시된 글입니다.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태그:#50대, #카톡프사, #프사변경, #50대도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년 넘은 공립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서 더 많이 배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