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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황일봉 회장을 만났다.
 19일,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황일봉 회장을 만났다.
ⓒ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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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열린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때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민주의문을 통해 기념식장에 입장한 황일봉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아래 5.18부상자회) 회장을 인터뷰했다.

지난해 1월 '5.18민주유공자 예우 및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이 개정됨에 따라 5.18부상자회는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와 함께 국가보훈처 산하 공법단체로 전환됐다. 아래는 19일 진행된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대통령님 금년에만 오시렵니까' 물었더니..."

-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손이 따뜻합디다. 기념사를 듣는데 문구를 직접 쓰신 거 같았습니다. 물론, 서툰 면, 어색한 면도 있었지만 '오월의 정신이 우리 국민을 단결하게 하고 위기와 도전에서 지켜줄 거라고 믿는다'는 이야기는 좋았습니다.

이날 대통령님께 5.18 묘역에 묻혀 계신 고 전재수 유공자의 친형 전재용씨가 '대통령님 금년에만 오시렵니까', 물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매년 오겠다'고 화답했습니다. 마지막에 인사하면서도 '오월정신을 지키면서 열심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 제게 손을 내미셨는데, 저희처럼 투쟁가를 많이 불러본 분은 아니라 조금 어색하긴 했습니다.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 때에는 이 노래를 부르냐 마냐를 두고 시끄러웠고, 제창할 때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높이 평가합니다.

그날 정부 부처 장·차관들이 다 오고 국회의원들도 거의 다 왔습니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오월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했기 때문에 헌법 전문에 5.18이 들어가는 문제가 잘 풀리길 기대하겠습니다."

- 5.18 민주화운동으로부터 42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모교인 전남고등학교에서 유신반대 활동을 하다가 제적됐습니다. 당시에는 사찰계(정보과) 형사들이 사상이 불손하다고 하면 취직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되는 시기였습니다. 이후 저는 은사님이었던 문병란 시인과 함께 살게 됐습니다. 당시 그분은 광주에서 1호 반체제 인사로 통했고, 그래서 제가 선생님 보호한다고 붙어 다니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양아들이 됐습니다.

저는 5.18 당시 광주 금남로에 위치하던 YWCA 건물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건물 1층에 신용협동조합이 있었고, 저는 3층에 있던 양서협동조합 총무였습니다. 5월 27일 최후의 항전 당시 YWCA에서 총을 맞고 돌아가신 들불야학 고 박용준 열사 생각이 납니다. 저보다 한 살 많아서 형님이라고 불렀어요. 그 사람도 사람을 좋아해서 만나면 환하게 웃고 그러셨죠.

5.18은 갑자기 터진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박정희 군부독재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스러지면서 시작됐습니다. 전국적으로 독재에 대한 저항 의식이 높아지던 시기에 정권을 찬탈하고자 했던 전두환에 맞서 광주시민들이 일어선 사건이 5.18입니다. 저는 1980년 5월 19일날 5.18 부상자가 됐습니다.

이날 도청 부근에 있던 시민·학생들이 계엄군이 몰려오는 걸 보고 골목길로 피신했습니다. 당시 YWCA가 도청 인근 골목길에 있었습니다. 곧 계엄군이 들어왔고, 3층까지 올라와 저를 보곤 그냥 이유 없이 무지하게 구타하고 발로 찼습니다. 정말 계단을 굴러 1층까지 내려왔습니다. 이때 건너편 무등고시학원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때리면 되느냐, 야유했습니다. 그러자 계엄군이 달려가서 학생들을 토끼몰이식으로 때렸습니다.

이날 정말 죽도록 맞았는데, 지금은 고인이 되신 YWCA 조아라 회장님이 나오셔서 계엄군 대위한테 우리 직원이라고 사정해서 연행은 안 됐습니다. 온몸이 부어있어서 걷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후에도 전화기 붙잡고 광주 소식을 외부에 전달하는 일을 했습니다. 18일 기념식 때 윤 대통령과 함께 조아라 회장님 묘소에도 들렸습니다."

"대통령 반대는 용산에서도 얼마든 할 수 있다... 장례날엔 모두 자중했으면"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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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5.18 기념식 당일 묘역에 집회 신고를 낸 이들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제 양아버지이기도 한 문병란 시인이 쓴 '목련이 진다' 시에 나오듯, 5.18은 정말 목련꽃이 떨어지듯 많은 분들이 돌아가신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5.18 기념식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참배객을 막아서고, 공격하는 일이 있어 왔습니다. 지난 2004년 5.18 기념식 당시에는 일부 세력이 5.18 묘역에서 시위를 진행해 노무현 대통령이 묘역 정문으로 입장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더 이상, 이런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달 초에 장례날 문상객 방문을 막지 않겠다는 입장을 오월 3단체 이름으로 발표했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반대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장례날에는 모두, 자중해줬으면 합니다. 

그럼에도, 5.18 묘역에 집회 신고를 낸 이들이 있었습니다. 호남을 매도하는 모 유튜버와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라는 단체가 5.18 기념식날 시위를 진행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전화해 사람으로서 도리를 지켜달라고 정중히 부탁했습니다. 진정성 있게 부탁해서 그런지 대부분 철회해줬지만, 대진연 측은 그럼에도 5.18 기념식날 묘역에 시위하러 왔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상자회 회원 50여 명이 현장에서 설득해서 최대한 자중시켰습니다."

- 이번에 오월 3단체가 공법단체가 됐습니다.

"꼭 해내고 싶은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우선 국가유공자 전환 문제입니다. 현재 저희는 국가유공자가 아닌 '민주유공자'입니다. 대법원에서 내란을 일으킨 전두환, 노태우 등을 처벌하고 저희들의 명예를 회복시켰음에도 저희는 국가유공자가 아닌 민주유공자로, 상이자가 아닌 부상자로 살아왔습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던 중 부상을 입은 분들을 상이자라고 합니다. 저희는 상이자가 아닌 부상자입니다.

5.18 유공자들은 부상자가 아닌 상이자로 인정받아야 하며, 모든 국가폭력 희생자들은 '보상'이 아닌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유공자에서 국가유공자로 전환된다고 해서 저희에게 특별히 이익이 되는 부분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저 국가유공자 단체를 상이군경회, 전몰군경회 등 18개 단체에서 오월 3단체를 합친 21개 단체로 말끔히 정리하고 싶을 뿐입니다.

다음으로는 5.18 유공자분들에 대한 실태조사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5.18 유공자분들이 국가폭력으로 삶이 망가져, 어렵게 살고 계십니다. 하지만 얼마나 어렵게 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7월부터 유공자분들을 일대일로 면담해서 실태를 파악해 볼 생각입니다. 대부분 장애가 있으시고, 다들 트라우마 때문에 약물 중독에 빠져 있습니다. 조울증이나 정서적인 불안을 안고 계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실태조사를 마친 후 어떻게 도와줄지, 어떻게 이동권을 확보해 줄지 대책을 세워볼 생각입니다."

태그:#5.18 기념식, #윤석열 5.18, #황일봉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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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해 고민하며 광주의 오늘을 살아갑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를 운영하며, 이로 인해 2019년에 5·18언론상을 수상한 것을 인생에 다시 없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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