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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3세 아버지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꼭 30년 전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홀로 된 아버지가 최근까지 강건하신 것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큰 행복이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모든 일을 척척 처리하셨다. 주변에서도 연세에 비해 정정하시다는 덕담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그새 백내장과 녹내장, 황반변성까지 겹친 아버지 눈은 거의 실명 상태다. 어두워진 귀에 낀 보청기는 사람들이 여럿 모이면 그만 먹통이다. 요즘 들어 매사 말씀이 적고 바깥 출입을 부담스러워하는 아버지 표정이 역력하다. 하지만 늘상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가치관은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아버지 이름으로 된 은행 대출이 만기가 돼 이를 연장하기 위해 여러 곳을 모시고 다녔다. 이런 일은 보통 처가 도맡아 하는 편인데 지방에 급한 일이 있어 내가 대타로 나선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한 집에 살면서도 아버지와 단 둘이 함께 밖을 나선 게 실로 오랜만이다. 몇 년 전 종합병원에서 아버지 건강문제로 보호자를 호출할 때 모시고 가곤 기억이 가물 하다.

93세 아버지와 보낸 하루

대출은행이 요구한 것은 부친의 국세와 지방세 완납 필증 두 가지와 신분증, 필증을 떼려면 본인이 기관을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먼저 간 곳은 집에서 가까운 동네 주민센터, 지방세 완납 필증은 센터 무인기로 출력이 가능하지만 아버지는 고령으로 지문이 안 나와 민원창구를 통해 발급받아야 했다.

창구직원과 의사소통이 어려워 내가 중간에 통역(?)하며 납세필증을 겨우 뗐다. 이를 옆에서 지켜 본 아버지는 서류가 발급 된 것을 알아차렸지만 내심 답답해 하는 눈치였다. 아버지 입장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센터 직원들은 70 나이 가까운 내가 아버지를 대동한 것이 신기한 듯 나갈 때까지 우리를 계속 주시했다.

다음 행선지는 국세완납 필증을 발급하는 세무서. 주민센터에서 그곳까지 직선거리는 불과 5백 미터, 그러나 아버지 걸음으로는 20분이 넘게 걸렸다. 아버지와 나란히 천천히 걸어보지만 아버지는 어색하고 불편하신지 나더러 지팡이로 앞장 서기를 재촉했다. 나는 아버지 길을 앞서 나가면서도 제대로 따라오는지 걱정돼 자꾸 뒤를 살피게 된다.
 
땅을 짚는 지팡이 소리가 계속 들리면 아버지가 안전하게 걷고 있는 것이다.
 땅을 짚는 지팡이 소리가 계속 들리면 아버지가 안전하게 걷고 있는 것이다.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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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리는 것도 반사적인 감각이 필요했다. 땅을 짚는 지팡이 소리가 계속 들리면 아버지가 안전하게 걷고 있는 것이다. 고령으로 감각이 둔해 신발을 질질 끄는 모습도 전에 볼 수 없던 행동이다. 아버지에게 비탈길도 만만치 않았다. 지팡이에 의지한 다리가 갑자기 힘이 빠지면 쉽게 넘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같이 아직 다리 힘이 있으면 내리막길은 빠르지만 아버지 같은 초고령자에게는 도리어 위험할 수 있다.

비탈길에서 우리는 둘이 운동회 때 2인3각 경기처럼 보조를 맞춰 걸었다. 아버지는 오랜 군 생활에서 몸에 밴 것도 있지만 본시 걸음이 엄청나게 빨랐다. 우리 가족들은 아버지 걸음에 늘 뒤처지기 일쑤였고 아버지는 언제나 약속 장소에 먼저 가 기다리셨다. 그런 아버지가 이제는 어린 아기처럼 뒤뚱뒤뚱 불안하게 걷고 있다. 세무서에서도 아버지 스스로 민원처리는 불가능한 일, 내가 아버지를 대신해 직원들을 도와 그나마 서류를 빨리 끝낼 수 있었다.

마지막은 은행대출 창구를 찾아가는 것이다. 세무서에서 은행까지 거리는 눈대중으로 약 1킬로미터 정도, 하지만 걸어가는 데만 30분 이상 걸렸다. 왕복 10차선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도로 한가운데서 내가 수신호를 하는 교통경찰이 돼야 했다. 아버지는 횡단보도에서 갈팡질팡하거나 신호가 바뀌는 시간까지 도로를 끝까지 건너지 못해 위험했다.

은행에 당도할 때는 나도 모르게 등 뒤에 땀이 흥건했다. 은행 민원은 아버지가 직접 사인하거나 서명하는 서류가 많아 시간이 더 걸렸다. 여기서 아버지의 어눌한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반듯한 글씨와 명필로 소문난 아버지가 양식 빈칸에 자기 이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삐뚤빼뚤 쓰는 것을 보고 안쓰러웠다. 갑자기 방명록에 서명할 때 필기구를 잡은 손이 떨리는 현상을 나도 가끔 경험하지만 아버지 경우는 정말 심한 편이었다. 악필이 따로 없었다.

편리한 은행 ATM도 아버지에겐 불편한 물건이다. 약해진 시력과 청력 때문에 계좌번호를 눌러도 허탕 치기 일쑤다. 할 수 없이 은행창구를 찾아 직원들의 도움으로 입출금을 간신히 해결했다는 아버지 고충을 처한테 여러 번 전해 들었지만 아버지는 은행일도 보호자가 있어야 할 정도로 소통이 어렵다.

6천보 걸음에 두 시간

아버지 일로 이곳저곳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평소 경로당을 오가는 10분 거리를 혼자 걷는 것이 유일한 운동인 아버지가 장시간 외출한 셈이다. 만보기를 보니 6천보 걸음에 두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보통사람 같으면 1시간이면 족하지만 아버지에겐 고통러운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겐 부자지간의 색다른 추억과 애정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집에서는 불편해도 그런대로 아버지와 대화가 가능했지만 밖을 나서면 아버지의 소통에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걸 깊이 깨달았다. 아버지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내 손을 꼭 잡았다.

자식에게 의탁하는 아버지의 쇠락한 모습을 힐끗 훔쳐보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나도 머잖아 아버지 같은 상황을 맞을 것이다. 언제 또 아버지와 이렇게 함께 외출할 수 있을지 잠시 생각하다 내가 고령의 아버지 손을 잡을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버지는 걷는 내내 힘들어도 옆에 내가 있어 흡족해 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나 또한 연로한 아버지를 보다 더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기회를 모처럼 얻었다. 앞으로 시간이 좀 걸리고 불편하더라도 아버지와 함께하는 추억을 자주 만들어 보려고 한다.

태그:#아버지, #동네한바퀴, #소통, #추억, #초고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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