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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2월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TV로 소식을 접하며 전쟁과 그곳 사람들의 상황을 알게 된 9살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거야? 저기 사는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우리나라도 전쟁 날 수 있어?"

아이의 말을 들으며 유년 시절 종종 느끼고는 했던 공포가 새삼 떠올랐다. 그 공포심은 왜 나라가 분단되었고 전쟁이 일어났는지 냉전은 또 무엇인지 역사와 정치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슬슬 일상의 작은 세계 너머 일들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궁금증이 늘어간다.

봄에는 제주 4.3 사건, 세월호, 5.18 민주화운동, 6.25 등 우리 역사에 정신적 상처로 남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들이 많다. 뉴스나 학교에서 배운 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때, 깊이 잘 모르기도 하고 내 생각의 한계를 아이에게 주입하게 될 것이 조심스럽다. 하나의 사실에도 여러 관점의 해석이 존재하고 의미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책의 도움을 받는다.

그림책으로 배우는 역사
 
두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6.25 전쟁과 유대인 대학살의 비극을 들려주는 그림책들.
▲ 역사적 사실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한 그림책들 두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6.25 전쟁과 유대인 대학살의 비극을 들려주는 그림책들.
ⓒ 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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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그림책이 좋은 매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나 정치적 사건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한 작품들을 골라 읽어주고 있다. 가상의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은 어린이, 동물, 인형, 자연 같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주인공의 상황에 자연스레 몰입하여 그 사건의 단면을 간접 경험하게 된다. 또 세심하게 숨겨둔 메시지를 찾으려고 애쓰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조합해 '나만의 해석'을 해 나갈 수 있다.

그림책은 요약된 지식을 정리한 책, 학습만화에 담겨 있는 정보의 양으로 비교하자면 구체적이지도 않고 내용도 적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책속 생생한 인물, 입체적인 서사로 재구성된 갈등 상황에 놓여봄으로써 알게 되는 것들도 있다. 그 역사적 사건이 특정 시기 어떤 개인이나 나아가 인류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고, 지금 나의 삶, 내가 속한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연스레 연결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림책 중에서 가장 많이 다뤄지고 지금도 꾸준히 나오고 있는 역사적 사건은 홀로코스트일 것이다. 죠 외슬랑이 쓰고 요한나 강이 그린 <아침 별 저녁 별>은 헬렌의 아홉 살 생일 저녁을 이야기한다. 헬렌이 할머니가 되어 어린 시절 단짝 친구였던 유대인 소녀 리디아와 함께 했던 그날을 들려준다. 생일을 맞아 리디아와 함께 자게 된 헬렌. 설렘도 잠시, 부모님이 잠깐 집을 비운 사이 두 소녀는 문밖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열쇠 구멍으로 노란별을 단 사람들. 무언가에 쫓기는 듯 다급한 목소리로 그들은 알 수 없는 말을 반복한다. 헬렌의 이웃집에는 유대인을 숨겨주는 사람이 살고 있었고 이상한 말들은 그들 사이의 암호였다.

마침 집으로 돌아온 헬렌의 부모님에게 리디아는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유대인인 리디아는 방금 목격한 급박한 상황 때문에 가족이 무사한지 걱정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생일인데 돌아가겠다는 리디아를 원망한 헬렌은 그 뒤로 리디아를 보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며 또래의 두 소녀가 목격한 어리둥절하면서도 두려운 상황, 별 표시 하나로 생사가 갈리는 부조리함, 그것에 순응하고 협조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비극 등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자세히 배울 때 배제와 차별, 인종 우월주의가 낳은 참상에 대해, 지금 나 자신이나 주변인이 겪고 있거나 사회 속 여러 갈등에 빗대어 생각을 확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두 소녀가 있다. 김정선 글, 그림의 <숨바꼭질> 속 양조장 집 박순득과 자전거포 집 이순득이다. 이름까지 같은 두 소녀는 해가 나고 달이 날 때까지 온종일 내내 함께 하는 단짝이다. 어느 날 전쟁이 터지고 두 순득이가 피란길에 오른다. 양조장 집 순득이는 자기가 먼저 술래라며 꼭꼭 숨으라고 당부한다.

자전거포 집 순득이는 밭이랑 사이에도 숨고, 언덕배기 돌 틈에도 숨고 피난촌 막사에서도 숨는다. 잘 숨은 순득이가 이제 술래가 되어 양조장 집 순득이를 찾아 나설 차례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여정 내내 '꼭꼭 숨어라'를 외치던 순득이가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양조장이었다. 친구 순득이가 키우던 점박이는 찾았는데 정작 순득이는 찾을 수가 없다. 자전거포 집 순득이는 풀죽은 채 읊조린다. '못 찾겠다, 꾀꼬리.'

숨바꼭질 놀이의 함축적 문장과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 표현된 그림 서사 속 두 소녀들이 무사할까 눈으로 따라가며 아이들은 생각할 것이다. 전쟁이 영화나 게임 속의 스펙터클한 영웅 서사로 소비되는 비현실적 사건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생사를 넘나드는 공포를 겪어야 하며 소중한 존재를 상실하는 일임을. 

또한 프랑스의 극우주의자 르펜의 득세를 저지한 프랑크 파블로브의 <갈색 아침>같은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이고 권력의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는 대가를 어떻게 치르게 되는지 간접 경험하게 한다. 서늘한 결말에 이르러 독재가 왜 나쁘며 그것을 비판 없이 수용한 시민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독재자의 이름을 외우고 역사적 사실 몇 줄 읽는 걸로는 생각해 보기 어려운 것들을 깊게 이야기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민감하고 어려운 화제도 생각해보는 힘

요즘 문해력이 교육의 큰 이슈다. 입시에 방점을 찍은 교육제도 아래 독서도 학습처럼 효율성을 위주로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정보 습득에 중점을 둔 속독 위주의 양적인 독서로는, 읽은 것을 기억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만의 의견으로 정리하는 '의미화 과정'을 경험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그림책은 어린 아이들이 어떤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을 넘어서서 다양한 관점에서 그 사실을 접하고, 주인공에 이입하여 작가가 제시한 관점을 수용하거나 의문을 가짐으로써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 나갈 수 있는 좋은 매개가 될 수 있다. 또 민감하고 어려운 화제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습관도 기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전쟁 날 수 있냐?'는 아이의 질문을 받은 뒤, 그림책을 찾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마지막으로 골라 읽었던 책은 아나이스 보즐라드의 <전쟁>이다. 빨강 나라와 파랑 나라가 이유도 잊을 정도로 오래도록 전쟁을 한다. 서로의 군사가 점점 줄어들자 빨강 나라 왕자가 파랑 나라 왕자 파비앙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전쟁에 무관심한 파비앙은 독특한 방법으로 결투에서 이긴다.

이에 양국의 왕들은 분노한다. 아버지로부터 추방된 파비앙이 전쟁을 종식시키는 과정이 흥미롭고도 의미심장하다. 이 그림책을 통해 나는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아무리 그럴싸한 명분에도 전쟁은 삶을 축낼 뿐이라는 것을. 그것을 끝낼 수 있는 건 많은 수의 군대와 최신식 무기가 아니라, 같은 인간임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데서 가능하다는 것을.

간결한 그림과 문장, 색채로 나라를 구분하는 방식 등으로 전쟁의 어리석음과 평화의 속성에 대해 전하는 이 책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 우리의 오랜 분단 상황과도 연결하여 생각해 보았다. 아이는 최근 학교에서 목격했던 어떤 갈등에도 파비앙의 방식을 적용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유치원생부터 초등 고학년까지 흥미롭게 읽고 대화할 수 있을 만한 역사나 정치적인 상황, 전쟁 같은 보편적 갈등 등을 소재로 하는 좋은 그림책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제 막 관심이 생겨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그림책을 찾아 건네고 함께 읽어보면서 이야기 나눠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https://m.blog.naver.com/uj0102
https://brunch.co.kr/@mynameisred


숨바꼭질

김정선 (지은이), 사계절(2018)


아침 별 저녁 별

조 외슬랑 (지은이), 요한나 강 (그림), 곽노경 (옮긴이),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2004)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태그:##워킹맘부캐, ##그림책은사실속의미를찾고생각해볼수있는좋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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