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24 17:29최종 업데이트 22.05.24 17:29
  • 본문듣기
서울에서 열리는 수요시위(수요집회) 때마다 보수·극우 단체들이 소녀상 자리를 선점하고 맞불집회를 열거나, 수요시위를 포위한 상태에서 확성기를 켜놓고 소음을 일으키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일제 식민 지배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이 그런 식의 훼방을 받고 있다.

비슷한 일이 최근 들어 부산항과 부산지하철 초량역 인근에서도 벌어졌다. 일본총영사관에서부터 정발장군 동상까지의 150미터 구간에 조성된 항일거리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임진왜란 때 부산진 첨절제사로서 일본군의 상륙을 막고자 분전하다가 39세 나이로 전사한 정발장군의 동상이 있는 이 거리에, 부산 시민들은 위안부 소녀상과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설치했다.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가 경제보복으로 맞선 직후인 2019년 10월, 부산 시민들은 이곳을 항일거리로 선포했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는 가운데, 지난달 보수단체의 소녀상 철거 주장 원정 집회에 이어 이번엔 일장기를 내건 시설물까지 등장했다. 18일 부산시 동구 강제징용노동자상 상황. 일본의 사죄배상을 촉구하고, 강제동원 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기리는 상징물이지만, 뒤로 '화해거리'라는 글자와 일장기가 붙어있다. ⓒ 오마이뉴스

 
보도(부산 강제징용노동자상에 '일장기' 모욕 행위, http://omn.kr/1yz18)에 따르면, '진실국민'이라는 보수단체가 지난 17일 이곳에 비상식적인 구조물을 설치했다. 노동자상 바로 옆에 구조물을 설치해놓고 '화해거리'라는 플래카드와 태극기·일장기를 걸어놓은 것이다. 23일자 <부산일보> 기사 '초량 항일거리에 웬 화해거리? ···부산서도 수요시위 방해 비화하나'에 따르면, 23일 현재 일장기는 치워졌다.

자경단

식민지배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가 보수·극우 세력의 방해를 받는 일은 1919년 3·1운동 때도 비일비재했다. 전북 익산군 솜리장터에서 4월 4일 벌어진 만세시위 때는 그런 훼방이 전투적 양상을 띠었다.


익산군에는 일제 식민지배의 상징 같은 장소가 있었다. 익산 구시장 언덕에 위치했던 대교농장이 그곳이다. 일본에서 오하시은행을 경영했던 오하시 요이치(大橋興市)가 일제 강점 3년 전인 1907년에 건설했던 농장이다. 자국의 위세를 배경으로 지역 토지를 헐값에 사들여 대농장을 구축한 오하시는 익산 사람들로부터 빼앗은 이 땅을 지키고자 무장 조직을 만들었다.

2017년에 <선교신학> 제47집에 실린 김은수 전주대 교수의 논문 <익산 4·4만세운동의 특징과 선교적 의미>는 주명준·정옥균의 <전북의 3·1운동>을 근거로 "(오하시 요이치가) 자경단을 만들어 자체 경비를 하였고 총독부와 교섭하여 일본군 수비대와 헌병대를 익산에 주둔하도록 하였다"고 설명한다. 현지 한국인 중심으로 결성될 수밖에 없는 자경단을 만들어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했던 것이다.

1919년 4월 4일, '속 리'를 써서 이리(裡里)로도 불린 솜리라는 이름의 장터에 모인 1000여 명의 익산군민 시위대는 일제 수탈의 상징인 그 농장을 향해 나아갔다. "시위대가 가까워지자 위세에 눌린 일본군들은 군중을 향해 총을 쏘았으나 첫 번째 총성은 공포탄이었고 이내 만세의 함성에 묻혀 버렸다"고 한 뒤 "더욱 만세 소리가 높아지자 그들은 당황하여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쏘았다"고 위 논문은 서술한다.

만세 시위대를 일본군만 상대했던 것은 아니다. 일본군이 발포하기 직전에 시위대와 맞서 싸운 집단이 있었다. 오하시 농장의 자경단이 바로 그들이다.

3·1운동 100주년 시기인 2019년 3월 29일 발행된 <동아일보> 기사 <농지 수탈에 반일감정 폭발 ··· 솜리장터에 울려퍼진 핏빛 함성>은 "시위대에 놀란 대교농장 자경단과 일제 헌병들은 창검과 총·곤봉·갈구리 등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라며 "시위대를 해산시키려는 시도였지만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고 한 뒤 "위기감을 느낀 헌병들은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군대 발포 직전에는 자경단이 시위대를 막고자 앞장섰던 것이다.

보수·어용단체 이용해 시위 진압

식민지배 청산을 위한 노력이 훼방을 받는 일은 익산뿐 아니라 전국 도처에서 발생했다. 1919년 3월부터 5월까지 전국적으로 분출한 만세시위를 군대와 경찰만으로는 진압하기 힘들었던 조선총독부는 한국인들을 내세워 보수·어용단체를 만들게 하고 이들을 이용해 시위 진압 및 방지에 나섰다.

2017년에 <한국근현대사연구> 제83집에 수록된 역사학자 이양희의 <3·1운동기 일제의 한국인 자위단체 조직과 운용>은 "일제는 각 도(道)의 행정기관과 경무 관헌을 동원해 민심이 불안정한 지역을 우선으로 한국인 자위단체를 조직하기 시작했다"고 한 뒤 "138군(郡)이 넘는 지역에서 한국인 자위단체가 조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자위단·자제단·자성단 등으로 불린 보수·어용단체의 회원들은 만세시위의 낌새가 발견되면 경찰에 신속히 신고했다. "(자위단) 규칙에 의하면 자위단원은 군청과 경무 관헌의 지휘·감독 아래 만세운동 인쇄물을 가지고 다니거나 계획 등을 한다고 의심되는 자, 또는 이들을 숙박시킨 자를 발견할 시 밀고할 것을 요구받았다"고 설명한다.
  

3.1 운동 당시 시위를 진압하려고 도열해 있는 일본 군경 ⓒ Wikipedia Public Domain

 
보수·어용단체 회원들이 몰래 숨어 밀고하는 일만 했던 것은 아니다. 대로를 다니며 시위를 방지하는 임무도 수행했다. 이양희 논문은 "주목되는 것은 전라북도·함경북도와 경기도 수원군의 규칙"이라면서 "이들 규칙에서는 단장 및 위원은 물론 단원에게 수시로 지역 내를 순시하여 민정을 시찰하고 이를 지부장이나 면장에게 알릴 것을 의무화했다"고 말한다.

이들은 만세 시위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 주민들을 사전에 단속하기도 했다. 위 논문은 "일제는 자위단원 중 대지주들로 하여금 소작인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압박했다"라고 말한다.

그런 뒤 "충청남도에서는 대지주로 하여금 소작인들을 압박하도록 종용했는데, 대전·연기를 비롯한 7개 군에서 대지주들이 모임을 열고 소작인들에게 자제 서약을 받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일제의 사주를 받은 지주들이 소작인들을 모아놓고 집회를 연 뒤 '자제하겠다'는 서약까지 받아냈던 것이다.

서글픈 아이러니

식민지배 및 그 유산을 청산하기 위한 집회는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도 훼방을 받는다. 뉴스에 자주 보도되는 혐한 집회는 그런 용도의 맞불 집회로도 활용된다.

관동대지진(간토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에게 학살된 한국인 6천여 명을 추도하고자 2017년 9월 1일 도쿄 스미다구 조선인희생자추도비 앞에서 추모 행사가 거행됐다. 일본 시민단체가 주관한 행사였다.

이날 집회는 극우단체 회원들의 훼방을 받았다. 수십 명의 극우 인물들이 출현해 집회 분위기를 어지럽혔다. 이들은 경찰과 몸싸움까지 벌이면 현대판 자위대, 일본판 자위대의 임무를 수행했다.
  

간토대학살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앞에서 집회 여는 일본극우들 1일 일본 도쿄 스미다(墨田)구 요코아미초(橫網町) 공원에서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이 열린 가운데, 추도식장에서 불과 40m 떨어진 곳에서 일본 극우 인사들이 집회를 열어 방해하고 있다. 2019.9.1 ⓒ 연합뉴스

 
이들은 거짓말하지 말라며 집회 주최 측을 압박했다. 그러나 조선인에 대한 대학살 자체가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6천이라는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게 이유였다. 그 부분이 거짓이라는 것이었다. 이들의 기세를 사전에 의식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기존 관행을 깨고 이날 행사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았다.

일제 식민지배의 모순을 폭로하는 집회들은 보수·극우 단체들의 제지를 받아왔다. 지금뿐 아니라 100년 전에도 그랬고,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그렇다. 3·1운동 때처럼 일본 군경이 직접 출동한 사례들도 많지만, 전체적 상황을 놓고 보면 민간단체들이 출동해 집회를 방해한 사례가 더 많다.

서울 수요시위 현장뿐 아니라 부산 항일거리에도 일장기가 출현하고 혐한 발언이 나오는 현상은 지난 100년간에 있었던 그런 현상을 떠올리게 만든다. 일본 국가권력과 전범기업들의 죄악상을 은폐하기 위한 활동에 민간단체 회원들이 나서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