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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학살을 영화화한 <작은 연못> 중 한 장면
 노근리 학살을 영화화한 <작은 연못> 중 한 장면
ⓒ 박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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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작 드라마 <메시아>(2020)에서는 재림 예수 또는 사이비 교주로 불리는 '알 마시히'가 미국 대통령과 독대를 한다. '알 마시히'는 세계 분쟁지역에서 미군을 철수하라고 말하면서 베트남 전쟁 당시 미라이 학살 같은 미군들이 저질렀던 대표적인 전쟁 범죄들을 언급한다. 그 가운데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피난민 학살사건인 노근리도 언급한다.

알 마시히가 언급한 노근리 학살사건은 한국전쟁 개전 초기 충북 영동군 노근리로 이동하던 피난민들을 미군 제1기병대와 미공군 전폭기 기총사격으로 무참히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충북 영동 주곡리, 임계리 주민들은 미 육군의 이동 명령에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런 집단학살을 제노사이드(Genocide)라 한다. 제노사이드는 국제전범재판에서 엄격히 다루는 사안이다. 그래서 제노사이드 전쟁범죄를 일으킨 국가는 자신의 범죄행위를 은폐하고 사실이 드러나도 잡아떼기 일쑤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부차 학살'로 제노사이드를 일으킨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미국이 한국전쟁 당시 저지른 민간인 학살인 노근리 사건은 어땠을까. 이 역시 미국은 그런 일 없다고 딱 잡아뗐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부득불 한국인이 피해를 본 경우 이를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로 표현한다.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서는 달걀을 깨뜨리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를 펴면서 유감이라고 표현한다.

노근리 학살 사건이 미국 AP통신에 의해 밝혀지자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2001년 '유감'이라고 표현했다. 전쟁 범죄가 되기 때문에 사죄(apology)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 그럼 미군이 한국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전투에 방해되는 민간인을 제거한 학살사건이 노근리뿐일까. 밝혀지지 않는 사건이 또 있다. 르포 작가 양영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군에 의한 학살 사건 중 하나인 이야포 사건을 조사하여 소설 <두 소년>을 통해 세상에 드러냈다.

<여수역> 양영제 작가의 신작... 이야포 사건 다뤄
 
르포소설 <두 소년> 표지.
 르포소설 <두 소년> 표지.
ⓒ 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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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에 발간된 소설 <두 소년>은 1950년 8월 3일 전남 여수 부속섬 안도 이야포 해상의 피난선을 미군전폭기가 총탄을 퍼부어 150여 명의 피난민을 학살한 이야포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토록 끔찍한 학살사건이 드러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여수 지역의 레드 컴플렉스 때문이었다. 피난선 선장이 빨갱이였다는 소문 때문에 지금까지 쉬쉬했던 것이다. 피난선 생존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소문을 누가 퍼트린 것일까. 당시 피난선은 노근리 학살 사건과 마찬가지로 미군이 이동명령을 내렸고 한국정부가 분산 수용하려 했던 피난민들이었다.

양영제 작가는 미군에 의한 학살 사건 경위뿐만 아니라 학살을 목격한 안도 주민들이 왜 입을 다물고 살아왔는지도 추적했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으로 안도에 상륙한 이승만 진압군 김종원 대위는 안도 주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다. 빨갱이로 몰려 무참히 학살당한 안도주민들은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려야만 했고 그 여파는 미군기에 의한 피난선 학살 사건으로도 이어진다. 소설에서는 레드 콤플렉스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준다.

작가 양영제는 이미 전작 <여수역>에서 이승만 정부가 이른바 '빨갱이' 조작을 어떻게 했고 어떻게 학살했는지 그 사건 전모를 처음으로 밝혀냈다. 소설 <여수역>은 제주 4.3 사건을 처음으로 드러낸 현기영의 <순이 삼촌>과 더불어 분단문학의 대표선으로 등재되어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어보면 지금까지 대통령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색깔론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잘 알 수 있다.

피난선 학살이 비교적 레드 콤플렉스가 덜한 지역에서 일어났었다면 사건이 지금까지 묻혀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수는 작가 전작 소설 <여수역>에서 담아놓았듯이 이승만 초대정부를 세우는데 재물로 쓰였던 곳이었다.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를 재물로 정권을 탈취했다면, 이승만 정부는 여수와 순천 학살로 반공정권을 다졌다. 그리고 학살무덤에 '레드 툼(red tomb)' 푯말을 꽂아 놓은 것이다.

바로 이 지역에 미군 전폭기가 피난선을 향한 무차별 사격으로 150여 명 피난민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작가 양영제는 이토록 끔찍한 제노사이드가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를 바로 '레드 툼'과 연결하여 밝혀냈다. 

<두 소년>은 학살 사건 자체도 충격이지만 바르지 못한 반공정권이 심어놓은 레드 콤플렉스가 진실을 억압하는 기제였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흔히 이런 소설들은 문학적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데 양영제 르포 소설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소설을 읽다보면 아름다운 문장이 더 슬프게 다가온다. 작가는 비극을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전작 <여수역>에서도 비극적 광경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묘사하는데, 이것은 비극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떨어져서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보기에 가능할 것이다.

소설 <두 소년>은 문학적 성과를 떠나서라도 세상에 반드시 알려져야 한다.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 역시 이 이야포 사건에 관해서 침묵할 것인지가 궁금하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일독을 권한다.

두 소년 - 양영제 르포소설

양영제 (지은이), arte(아르테)(2022)


태그:#소설 두 소년, #이야포 피난민 학살 , #양영제, #여수역, #르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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