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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엘리어트의 장편 시 '황무지'에는 "추억과 희망을 뒤섞고(mixing memory and desire)"라는 구절이 나온다. 맥락은 다르지만 우리 동네 신림동에 처음 들어온 전철은 나의 추억을 불러내고 희망을 자극했다. 28일 운행을 시작한 날, 호기심 많은 나는 종점이자 시점인 관악산역(서울대)에서 여의도 샛강역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중간에서 내려도 보는 등 네 번이나 타보았다.

구경하랴 사진 찍으랴 몸은 분주했지만 머릿 속에는 30여 년 전 수인선 협궤 열차를 타보았던 추억이 떠올랐다. 마주 보는 그 좁은 기차간 사이에 놓인 시골 아낙네들의 수많은 '삶의 보따리'는 검표원의 통행에 지장을 줄 정도였다.

그때 나의 코는 평생 맡을 젓갈과 생선과 소금, 거기에다 정체 모를 매캐한 냄새로 쉴새 없이 자극을 받고 있었다. 팔도 사투리가 섞인 여인들의 수다는 조리는 없었지만 구수하면서도 삶의 애환이 서려 있었다. 좁은 기차 간에서 이런 추억과 동시에 마을 열차가 가져올 동네의 희망 섞인 미래를 그려보았다. 신림선의 특징을 네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본다.

첫번째 키워드: 정겨움

경전철은 좁았다. 수인선보다는 널찍했지만 일반 전철보다는 훨씬 좁게 보였다. 연인끼리 마주 앉아서 다리를 뻗으면 발끝이 닿을 정도. 동네 기차이다 보니 마을버스처럼 오밀조밀한 공간에 아는 얼굴들이 많이 보여 '도시의 익명성'은 보장되지 않는 공간이다. 게다가 작고 가벼운 전차여서 살랑살랑 흔들거리는 맛이 놀이공원 열차인 양 흥겹고 정겨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두번째 키워드: 설렘

딱 50년 전 시골 우리 동네에 전기가 들어온 날 온 동네가 불을 밝혀놓고 밤새던 기억. 중3이었던 나는 이런 '광명 세상'이 다 있나 하는 들뜬 마음으로 잠 못 이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깃불은 일상이 되었지만, 첫날의 설렘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고 있다. 동네 전철을 처음 타보는 나의 설렘이 영원하기를.

세번째 키워드: 앞뒤 투명성

신림선 3량 객차는 앞뒤가 투명하다. 기관사가 없기 때문이다. 최초로 무인자동 운전 시스템이 도입된 사례. 손님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맨 앞에서는 다가오는 선로를 바라보고, 맨 뒤에서는 멀어져가는 선로를 바라보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처음이라 그러겠지만 맨 앞과 맨 뒤가 최고 인기를 누리는 입석이다. 나도 체면 버리고 어린아이처럼 앞과 뒤를 왔다 갔다 하면서 다가오고 멀어져가는 레일을 바라보았는데, 참 재미있었다. 소풍 나온 기분이었다.

네번째 키워드: 연결성

교통은 네트워크 연결성이 생명. 1~9호선에 분당선이니 김부선이니 하는 복잡한 노선과 역의 개수가 6백 개가 넘는 수도권 전철망. 그 중에서도 신림선처럼 편리하게 연결되는 노선도 드물 것이다. 여의도까지 가는 동안 이용도 1위인 2호선, 2위인 1호선을 비롯, 7호선과 9호선까지 바로 연결되기 때문. 닫는 자는 망하고 여는 자는 흥한다. 단절되는 자 기울고 연결되는 자 일어서리라. 이런 나의 희망이 현실이 되기를.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유종필은 전 관악구청장입니다.


태그:#신림선 경전철, #경전철, #신림선, #수인선, #협궤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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