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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다음엔 뭐 하실 거예요? 지역작가와의 정담도 정말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요. 책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 글 쓰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어떤 동기를 필요로 하죠. 가까이 있는 이웃의 삶을 듣고 '그렇구나'라고 공감하면서 또 다른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어요."

"다행이에요. 제 기획을 칭찬해주셔서요. 일단 아름다운 오월이 가기 전 책방을 찾은 손님들이 자기 삶에 대한 사랑과 타인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는 시간을 마련할까 생각 중이에요. 시낭송잔치를 해볼까요?"

책방 오픈 석달 째, 시와 에세이를 주종으로 한 책방광고를 내고 가장 많이 한 행위는 시집 읽기다. 사실 시를 읽고 나만의 해석을 붙이기엔 지식이 너무도 부족하여 그냥 '느낌'대로만 받아들인다. 그나마 다른 이들처럼 학창 시절에 배웠던 몇몇 시들이 가슴에 새겨 있어서 예전의 시인 이름 몇 명과 시어들을 기억하는 것이 다행스럽다.

글쓰기를 자처한 나에게 가장 큰 글 씨앗 중 하나는 당연히 시 필사다. 코로나로 허둥대던 때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삼 년째다. 게다가 작년에는 자원봉사활동으로 시를 필사해서 시화엽서를 만들어 지역민들과 나누는 문화나눔운동까지 하면서 더욱더 시를 접했다. 유홍준 교수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처음 등장했던 이 말을 실감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책방에서도 매일 시인들과 그들의 시를 소개한다. 특히 내가 학생이었을 때 배웠던 시인들의 시를 들려준다. 아무래도 내 나이를 무시할 수 없는 듯 책방손님들의 연배도 비슷하다. 젊은 손님들이 와도 신기하게 소위 '애 어른' 같은 분들이어서 비치된 책에 공감한다. 그럴 때는 정말 다행스럽다며 몰래 가슴 한 켠에 손을 대고 혼자 웃는다.

시 낭송 잔치 한 번 해봅시다
 
10명의 낭송자들과 오고가는 관광객들이 함께 한 시낭송
▲ 봄날의산책 시낭송정원 10명의 낭송자들과 오고가는 관광객들이 함께 한 시낭송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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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보내는 '시가 있는 아침편지' 덕분에 시를 읽는 것이 정말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래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를 낭송하는 잔치'를 기획한 것이다. 오월의 신록은 자꾸 뒤로만 밀려가면서 청초함보다는 어느새 어른인 채 헛기침을 하는 모양새니 나 역시도 늙어가는 것 같아서 어떤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떠오르면 바로 기획하고 홍보한다.

"여러분 이번에는 시 낭송잔치를 할 거예요. 책방 '봄날의 산책'에서 시 낭송잔치를 열어 여러분과 시를 공유하고 싶어요. 홍보안 보시고 주변 분들에게 알려주세요. 시낭송이 뭐 별거인가요. 저는 시집 보고 그냥 읽으렵니다. 여러분들도 참여해보세요. 재미있을 거예요. 28일 토요일 11시를 놓치지 말고 말랭이마을 동네골목 잔치마당으로 오세요."

참가 희망자는 두 편의 시를 낭송해야 한다고 했다. 참가 선물로는 필사 시집 <윤동주, 백석, 정지용 필사하기>를 드리고 함께 도시락을 먹자고 했다. 나를 포함하여 10명이 시 낭송에 신청했다. 그 중 윤혜련님은 취미로 시낭송을 하는 사람이라고, 배경음악 준비 도움을 주겠다고 하셔서 그때야 '아, 시 낭송에 음악이 있으면 더 좋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단지 시를 느껴보자는 초보들이 많아서 오히려 준비하는 내 맘은 편했다.

참가자들이 낭송할 시를 받아서 행사 진행표를 만들고 낭송순서도 정했다. 낭송모음집을 관객에게 나눠주고 싶어서 편집을 하고 작은 책자도 만들었다. 혼자 밤마다 그 모든 시를 다 읽어보는 호사를 누린 지난 며칠 동안 정말 행복했다.
 
시 낭송가들과 관람객에서 선물로 증정했다
▲ 시필사노트와 낭송시 묶음집 시 낭송가들과 관람객에서 선물로 증정했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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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마을 어머님들과 함께 팽나무 정원 바닥에 잔디를 새로 깔았는데 보기 좋게 싹이 나왔다. 한복공예작가가 빌려준 푸른색 배자(한복용조끼)를 입고 행사 준비를 했다. 노란우산 햇살받이 아래에 낭송가들의 자리 배치를 만들고, 휴대용 마이크, 녹화준비, 시화엽서 코팅해서 책방난간에 매달기까지 마치니 시 낭송장소는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봄날의 산책 책방지기 모니카입니다. 피천득 시인은 말씀하셨죠.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저의 21살 오월을 회상했습니다. 아마도 풋풋하고 청신한 얼굴이었겠지요. 허락한다면 저도 청년 스물한 살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때는 글 대신 아름다운 '시'로서 제 속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 말랭이마을은 문화마을로의 꿈을 가지고 있지요. 문화의 으뜸은 글과 말, 그중 시로서 그 꿈을 펼쳐보시게요."

첫 번째 낭송으로 책방주인인 내가 나섰다. 명색이 책방주인이라 시 한 편은 낭독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또 시 낭송이라는 글자를 체험하고 싶어서 용기를 내었다. 서정주 시인의 '신록'을 읽었다. 머리털 나고 난생 처음으로 남 앞에서 시를 읊은 이 소감을 어찌 말로 다 할쏘냐. 참가자 10명 중 남편도 있었다. 각시인 나에게 바치는 시라며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고 또 환경운동가로서 본인이 지은 '수라(繡羅)' 갯벌의 아픔을 노래했다.

그 밖에도 외부인과 문우들인 숙자, 안나, 구르미님들이 낭독했다. 특히 이숙자님이 낭독할 때 문정희 시인의 '찔레꽃'은 낭송자의 목소리가 더해지는 순간 울컥하는 감동이 밀려왔다. 마지막으로 시 낭송전문가 윤혜련님의 낭송에 참가자들은 '와' 하는 환호와 함께 '낭송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라며 감탄했다. 이기철 시인의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를 낭송하면서 참가해준 모든 이에게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첨언도 있었다.

행사가 끝난 뒤... 감흥에 젖었다
 
책방 앞 난간마다 필사시화엽서를 코팅해서 붙이고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읽어볼 것을 추천했다
▲ 시낭송행사를 위해 준비한 필사시화엽서 책방 앞 난간마다 필사시화엽서를 코팅해서 붙이고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읽어볼 것을 추천했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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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끼리 하는 행사라지만 며칠을 몸과 마음에 담고 준비하느라 그 결과를 두고 마음의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시낭송잔치에서 얻은 수확물은 너무도 많았다. 왜 내가 이런 행사를 하자고 했는지를 잘 이해했고, 오고 가던 사람들이 시 한 편을 들으며 힐링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무엇보다 시 필사, 시 낭송을 통해서 시와 우리의 삶이 결코 분리되지 않음을 느꼈다. 시인들의 시가 우리들의 가슴을 떨리게 하면서 평범해 보이는 우리들도 모두 시인임을 알게 했다.

행사 준비차 책방 앞 계단 난간에 걸어놓은 필시시화엽서가 바람에 나부낀다. 용인에서 왔다는 두 가족들이 책방에 들어와 한 사람씩 책을 사며 시낭송회를 묻는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참여하고 싶다고, 자녀들에게 시집과 동화책을 고르게 하는 부모를 보면서 또 감동했다. 초등학생 하나는 난간에서 흔들거리는 엽서 하나를 읽으며 '와, 이 시 좋다'라고 해서 선물로 안도현 시인의 동화집 '연어'를 선물로 주었다.

서정주 시인의 '신록'을 낭독했던 어제의 감흥이 지금도 심장을 쿵쿵거린다, '어이할거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라는 글귀는 책방을 찾는 모든 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책방지기 모니카의 고백소리가 되었다.

윤동주 백석 정지용 필사하기 - 현대시 전설을 필사하다

윤동주, 백석, 정지용 (지은이), 화약고(2022)


태그:#시낭송잔치, #봄날의산책, #말랭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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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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