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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작년 한 해, 초등학생이 된 아이를 직접 챙기기 위해서 육아휴직을 했다. 직장인으로서의 커리어는 일시 정지 상태였지만, 엄마로서 그리고 부캐인 '그림책 읽고 쓰는 나'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방향을 잡고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부캐 생활에 진심이 되면서 삶이 전반적으로 풍요로워졌다. 더불어 현재 '워킹맘 부캐'를 함께 연재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관련 그룹 기사 : 워킹맘의 부캐). 다른 사람의 부캐를 간접 경험하면서 다양한 부캐 생활의 즐거움과 기쁨에 공감하고, 그분들을 예전보다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회사 생활에 영향을 미친 부캐
 
본격 부캐 생활을 하면서 내 삶이 충만해지자 동료들을 보는 시각도 바뀌었다.
 본격 부캐 생활을 하면서 내 삶이 충만해지자 동료들을 보는 시각도 바뀌었다.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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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는 회사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부캐 활동이 회사 생활과는 동떨어진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개인적인 영역의 삶을 충실하게 보낸 시간 덕분에 업무를 대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미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회사 사람들에 대한 인식 변화다. 휴직 전 나는 조직 생활에서 생기는 인간관계에서 자주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면서 업무로 경험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 사람의 전부라고 여겼던 것 같다. 상처를 덜 받기 위해 늘 사무적인 관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본격 부캐 생활을 하면서 내 삶이 충만해지자 동료들을 보는 시각도 바뀌었다. 회사 사람들의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적 역할에만 매몰되어 있을 때는 사무적 거리를 유지하느라 미처 귀담아 듣지 못하고 놓쳤던 부분이었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사무실 바깥에서는 각자 자신만의 부캐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분은 사회인 야구를 몇 년 째 하고 있고, 한 후배는 반려견과 함께 전국을 누빈다. 동물보호나 환경에도 관심이 이어져 줍깅(걷거나 뛰면서 거리의 쓰레기를 줍는 활동)도 하는 모양이었다.

보수적인 성향으로 세대 차이를 느끼게 하던 분도 부캐를 알고 나니 달리 보였다. 자녀와 함께 행선지, 코스, 일정 등을 충분히 논의한 후,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각지로 저예산 여행을 다녀오는 낙으로 매 계절을 보내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분이 새롭게 느껴졌다. 보수적인 면도 실수를 줄이려는 것임을 대화로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일을 사이에 두고 만날 때는 이해 관계적인 측면으로만 서로를 대한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보는 모습 외에 다른 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 서로에 대한 상상력은 고갈되고 갈등은 깊어진다. 하지만 나의 부캐 생활은 사람을 보고 대하는 방식을 서서히 바꾸고 있다.

자세한 걸 속속들이 다 알고 지내는 건 아니지만 짐작하건대 나처럼 즐거움을 누릴 일에서 의미를 찾고, 작지만 소중한 일상의 성장을 경험하는 것은 그분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일종의 동지애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여전히 업무를 사이에 두고 의견 충돌도 있고, 크고 작은 갈등 속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상대를 더 좋게 바라보게 되었다고 해서 일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회사 사람들을 인간적이며 입체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이후에는 이해도가 올라가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사회적인 자아 너머 오롯이 자기로서 살아가는 누군가에게서 나와 닮은 점을 발견하는 순간, 타자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부캐 생활을 하며 얻게 된 새로운 기쁨이자 깨달음이다.

나 중심에서 '타인'과 '세계'로 확장되는 즐거움
 
기타무리 사토시 글, 그림/배주영 옮김/불광출판사
▲ 밀리의 판타스틱 모자 기타무리 사토시 글, 그림/배주영 옮김/불광출판사
ⓒ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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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출신이지만 주로 영국에서 활동한 그림책 작가 기타무라 사토시의 <밀리의 판타스틱 모자>가 떠오른다. 어린 소녀 밀리가 우연히 한 모자 가게를 발견한다. 화려하고 멋진 모자는 가진 돈이 부족해서 살 수 없다. 아쉬워하는 밀리에게 가게 주인이 모자 하나를 내민다.

이 모자를 쓰고 밀리가 거리를 걷는다. 밀리가 바라보고 상상하는 모든 것이 모자 위에 오롯이 담긴다. 신이 나서 길을 가던 밀리는 깨닫게 된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처럼 각양각색 자신만의 모자를 쓰고 있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작가의 이 그림책은 보통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에 초점을 둔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존재임을 깨달을 때, 타인도 그러하다는 것을 주인공 밀리가 비로소 인식하게 되는 순간에 주목하고 싶다.

부캐 생활을 통해 삶의 의미를 좇는 내 안의 욕구를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었고, 타인의 인정 대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간다. 더불어 다른 이들도 나와 다지 않다는 것을 배운다. 각자 다르기에 만큼 섣불리 내 기준으로 단정 짓지 않고 쉽게 이해하려 들지 않고 그저 서로의 차이를 조금씩 인정하고 존중해 나간다.

부캐 생활의 가장 큰 수확은 나 자신에 다가가게 된다는 데 있다. 비교와 인정에 자주 흔들리던 마음이 단단해져 감을 느낀다. 더불어 나에게 국한되던 좁은 시야가 '타인'과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나 좋아서 하는 일이 즐거움을 넘어 자아를 성장시키고 풍요롭게 만든다. 이런 부캐 생활을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https://m.blog.naver.com/uj0102
https://brunch.co.kr/@mynameisred


밀리의 판타스틱 모자

기타무라 사토시 (지은이), 배주영 (옮긴이), 불광출판사(2016)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태그:##워킹맘부캐, ##부캐생활에진심일때, ##새롭게보이는것들, ##나에대한인정, ##타자에대한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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