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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으로 치료를 받다가 사망한 고 서재숙 님에 대한 기자회견 후 경기도교육청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다
▲ 고 서재숙 조합원 사망 기자회견 후 분향소 설치 폐암으로 치료를 받다가 사망한 고 서재숙 님에 대한 기자회견 후 경기도교육청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다
ⓒ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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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3일, 폐암으로 산재 승인을 받고 요양 중이던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조합원인 서재숙씨가 투병 3년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폐암이 발병하기 직전까지 17년간 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했다. 또한, 지난 4월에는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강원지부 조합원이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 또한 폐암이 발병하기 직전까지 19년 동안 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폐암으로 산재를 신청한 학교 급식노동자는 31명이라는 것이고, 이 중 14명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았으며, 1명은 불승인 그리고 다른 이들은 조사 중에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2022년에는 급식노동자의 산재 신청은 더 늘어날 것이다.

조리흄은 고온에서 기름을 동반한 가열 작업을 할 때, 지방 및 여러 성분들이 분해되면서 배출되는 물질이라, 튀김이나 볶음 요리를 할 때 주로 나온다. 국제 암 기구에서는 "발암성 가능 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조리가 끝난 후 조리기구와 뜨거운 솥을 닦을 때 사용하는 세제가 뜨거운 솥과 만나 수증기가 만들어지는데, 그 수증기 속에는 수산화나트륨이라는 암 유발 성분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노동부·교육부·교육청 그 어느 누구도 조리 시에 발생하는 조리흄과 세척 시에 사용하는 세제에서 나오는 수증기가 폐암을 발생시키는 원인이라고 알려주지 않았다. 그것을 알 리 없는 급식노동자들은 학생들을 생각하며 맡은 바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다 폐암에 걸린 것이다.

급식노동자들의 폐암 문제는 그리 오래된 문제가 아니다. 이전까지 학교 급식실은 초고강도 압축노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산재(화상, 근골격계, 베임, 넘어짐 등)에 노출되어 왔는데, 2021년 2월 폐암으로 돌아가신 학교 급식노동자가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으면서 직업성 암에 대한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후 노동조합에서는 대책마련을 촉구하며 기자회견, 면담, 집회, 토론회, 국회간담회 등 각종 투쟁을 진행했고, 그 결과 2021년 12월 노동부에서는 학교 급식실 환기시설 개선, 폐암 건강검진 등에 대한 권고안을 발표했다.

환기시설 권고 말고 위험요인 제거 필요 

늦게나마 권고안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는 환영할 일이지만, 노동부는 '임시건강진단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검진실시기준을 마련하고 지도할 계획, 표준환기 가이드를 개발해서 환기시스템 개선에 활용할 계획이라는 미온적 발표내용만 있었다. 노동부는 자기들의 권한을 다시 한 번 교육부와 교육청으로 넘겼다.

이에 현재까지(2022년 6월) 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 시·도교육청은 찾아보기 힘들다. 17개 시·도교육청 중 오직 경남교육청만 시범사업으로 기준을 정해 급식실 환기시설 개선사업을 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노동부는 제대로 된 검진과 환기시설 가이드라인이 적용될 수 있도록 지도·감독하고, 신속하게 검진이 진행되어 폐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단순히 환기시설만 개선하면 급식노동자의 폐암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환기시설 개선은 단순 공학적 대책이므로 폐암 발병률을 줄일 수는 있지만 멈추게 할 수는 없다. 폐암을 멈추게 하려면 조리흄을 유발하는 위험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인력 배치기준을 바꿔서 급식 노동자들을 더 충원하고, 조리흄을 유발하는 메뉴들을 조정하는 조치도 이어져야 한다.
 
한 중학교의 급식실 모습.
 한 중학교의 급식실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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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학교 급식실에서 약 17년을 근무한 급식노동자다. 매일매일 튀김이나 전요리를 하며 흡입한 일산화탄소, 고온의 기름에서 발생하는 유증기, 적응이 안 되는 고온작업에 어지러움과 구토증상이 몰려오곤 했다. 설상가상 폭염까지 겹치는 날이면 어지러움과 구토증상은 배로 몰려온다.

배식과 세척작업으로 들어가기 위해 휘청거리는 몸을 이끌고 잠시 찬 공기를 쐬면서 찬물이라도 한 사발 말아 삼키고, 때로는 그마저도 마시지 못하고 오후 작업을 들어가곤 했다. 우리가 쓰러지지 않고 일하는 이유는 '엄마'였기 때문이다. 내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것처럼 학생들 밥 한 끼가 중요했다. 아니, 사실 그보다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과 미친 듯 일하는 급식실에서 내 역할을 못하면 다른 누군가가 지쳐나가 떨어질 상황이기에 참고 견뎌야했다. 이것이 급식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전국에는 약 6~7만 명의 급식노동자가 있다. 오늘 이 순간에도 누구는 폐암에 걸려 투병을 하고 있을 것이고, 다른 누구는 폐암에 걸린다는 생각에 마음 졸이며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오래전에 암으로 돌아가신 급식노동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분들을 추모하며, 급식노동자의 건강을 희생양으로 만들어진 학교 급식은 더 이상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

베이고 화상 입고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할 지경이 되고, 암에 걸려가며 음식을 준비하고 만들고 제공하는 일을 누가 계속 할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죽지 않고, 배제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모두의 급식실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고 서재숙 급식노동자를 추모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사)김용균재단 이사이자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인 김영애 님입니다.


태그:#김용균재단, #급식노동자, #폐암, #김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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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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